4·10일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잡음이 좀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친문계(친문재인계) 핵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컷오프되며 계파 갈등의 정점을 찍었던 민주당은 임 전 실장이 고심 끝에 당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명문(이재명-문재인) 충돌’ 위기를 잠시 넘어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권향엽 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과 관련한 ‘사천 논란’이 불거지고, 비이재명계(비명계) 현역 의원들이 무더기 공천 탈락으로 ‘비명횡사’하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제기되는 불공정 공천 문제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임 전 실장은 컷오프된 이후 탈당하는 방안을 중심에 두고 이낙연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 입당, 무소속 출마 등 여러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그는 2024년 3월4일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며 잔류를 선언했다. 탈당할 경우 ‘반윤석열 전선’에 균열이 생기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떠넘겨질 수 있다는 점, 선택지 가운데 하나인 새로운미래의 파급력이 한계에 부딪힌 점 등이 임 전 실장의 발목을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새로운미래의 동력이 떨어지는 등 탈당 뒤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며 “잔류 결정으로 당을 깨고 나가지는 않았다는 명분도 챙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임 전 실장의 잔류 결정에 이재명 대표는 “정권심판이라는 현재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 힘을 합쳐주시면 더욱 고맙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 대표가 임 전 실장에게 선거대책위원장 등 중책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임 전 실장 쪽은 개별 후보들이 유세 지원을 요청하면 돕겠다는 입장이지만, 컷오프에 대한 모멸감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임 전 실장이 절치부심을 겪은 뒤 2024년 8월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 본다. 민주당이 공천 공정성 논란으로 총선에서 만족스러운 의석수를 얻지 못할 경우 ‘비명횡사’의 중심에 있던 임 전 실장이 ‘포스트 이재명’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총선에서 패배하면 책임을 이재명 대표가 지게 된다.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임종석 전 실장은 분당 사태를 막은 일등 공신이 되는 것”이라며 “이번 당 잔류 결정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임 전 실장한테 신뢰를 보낼 수 있게 됐다. 선거 유세전에 뛰어들면 인지도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의 잔류 결정이 ‘당권 도전’으로 해석되는 사이 이재명 대표는 ‘권향엽 사천’ 문제로 공천 불공정 논란의 정점을 찍으며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배우자실 부실장을 지낸 권향엽 소장을 민주당이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지역구에 전략공천한 것이 화근이었다. 민주당이 이 지역구를 이번 공천에서 유일하게 여성전략특구로 지정한 뒤 권 소장을 단수 공천한 것을 두고 ‘배우자 측근 챙기기용 사천’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후 민주당이 전략공천을 철회하고 권 소장과 해당 지역구 현역 의원인 서동용 의원을 100% 국민경선에 붙이기로 하면서 사태를 수습했지만, 애초에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이재명 대표가 경선 중인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사천 논란은 잦아들지 않는 모습이다.
게다가 3월6일 민주당 경선 결과 박광온, 윤영찬, 강병원 의원 등 비명계 의원 6명이 무더기로 탈락하고 그 자리를 친명계 후보들이 채우면서 무더기 ‘비명횡사’가 현실화했다.
이재명 대표의 거친 리더십도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다. 2월28일 이 대표는 공천 과정에 반발하며 탈당이 잇따르는 상황에 대해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라며 “경기를 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경기 안 하겠다는 것은 국민들 보시기에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통합 메시지와는 거리가 먼 발언이었다. ‘명문 갈등’ 속에서 별다른 명분 없이 임 전 실장을 컷오프한 것을 두고도 ‘싹 자르기’를 통해 오히려 경쟁자의 체급만 키워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의 당권 도전은 사실 본인의 바람일 뿐이었는데 (이 대표가 컷오프를 통해) 그를 친문의 핵심으로 끌어올려주면서 오히려 몸집을 키워놓은 꼴이 됐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차기 리더십의 향방은 총선 결과에 달려 있다. 총선 승패도 중요하지만 친명과 비명의 의석수 구도가 어떻게 되느냐도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불공정성 논란 속에서도 공천장을 거머쥔 친문이 얼마나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친명 당선자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당내 권력관계가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친명계의 의석수가 더 많더라도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 등 리더십 한계에 봉착할 경우 이들이 이 대표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어느 정도 대비해놨겠지만 정치의 속성이라는 게 원래 (권력의 방향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 아니겠냐”며 “총선 뒤 리스크가 본격화돼 이 대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가 오면 의원들이 이 대표를 과연 ‘밟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다만 임종석 전 실장이 ‘포스트 이재명’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리더십의 발판이 되는 팬덤이 형성되지 않은데다 공천 과정에서의 ‘비명횡사’로 당 구성원을 세력화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창렬 교수는 “현재로선 그가 당권에 도전할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임 전 실장이 당권에 도전할 수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며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이 대표는 친명 체제를 굳건히 할 것이기 때문에 임 전 실장이 세력화에 나서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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