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공천 파열음이 거세게 일고 있다. 2024년 2월21일 ‘비선 공천’ ‘유령 여론조사’ 논란 속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비명계(비이재명계) 의원들이 공천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당내 계파 갈등이 노골적으로 분출되는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며 리더십 위기에 봉착한 모양새다.
‘사천 논란’의 정점을 찍은 것은 ‘박용진 하위 10%’ 사태다.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박용진 의원이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평가 기준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 의원은 2022년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우며 경쟁했던 인물이다. 당대표 선거 당시 “박용진 후보도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이 대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박 의원 외에 김영주 의원이 하위 20% 평가에 반발하며 탈당했고, 대표적 비명계인 윤영찬 의원도 하위 10%를 통보받은 뒤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의 공천 잡음은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가 자초한 측면이 커 보인다.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은 2월6일 “‘윤석열 검찰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는 말로 친문계(친문재인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경기 광주을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문학진 전 의원에게 정체불명의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불출마를 요구한 것은 사천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당대표로서 공천 과정의 교통정리에 나설 수는 있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은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압박한 부분은 여러 의구심을 낳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당에서 논란이 된 ‘현역 배제 여론조사’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용역을 맡긴 업체에서 실시됐다는 보도가 나간 뒤 사천 논란은 더욱 짙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이 대표가 총선 승리보다는 당권 확보에 더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경쟁력과 무관하게 중진이나 친명 후보들을 재배치하고 있다”며 “(총선이 아닌) 마치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것처럼 지역위원장을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지역구 공천을 통해 지역위원장이 된 인물들을 친명계로 포진시켜 당권을 뒷받침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사천 논란이 잦아들게 하기 위해 이 대표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금씩 분출하고 있다.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월21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판을 뒤집으려면 이재명 대표가 총선에서 불출마하면 된다”며 “‘내가 (출마) 안 하겠다는데 어떻게 사천이 가능하냐’는 게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말했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2020년 총선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 뒤로는 아무도 그가 공천에서 자기 사람을 심는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며 “지금 민주당의 공천은 ‘찐명’ 공천, ‘방탄’ 공천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극심한 내홍에 휩싸인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의 공천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량감 있는 영입 인재나 중진 의원을 격전지에 배치하면서 필승 전략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간 우려했던 ‘윤심 공천’ 논란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대표적 여당 강세 지역인 부산 해운대갑에서 단수 공천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용산 출신 참모들은 대체로 험지에서 뛰고 있다. 당 지도부가 공천에서 배제된 이들의 반발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매끄럽게 관리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다만 그간 ‘윤심’에 앞장서왔던 친윤계(친윤석열계)가 양지에서 대거 공천받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월20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윤한홍·정진석·박대출 의원 등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친윤 초선 박수영·배현진·유상범 의원 등을 단수 공천했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한 차례 갈등을 겪은 이후 ‘윤심 공천’과 ‘한심 공천’ 사이에 암묵적 합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여당은 분칠을 잘하는 거로 보인다”며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 양쪽이 양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그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국민의힘 공천에 대해 ‘조용은 하지만 혁신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 탈락자들의 개혁신당행을 막기 위해 현역 의원 물갈이를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진행되지 않은 서울 강남권과 대구·경북 지역의 공천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지적과 맞닿아 있다. 이 지역의 현역 물갈이 폭이 얼마나 될지, 물갈이된 뒤 어떤 인물을 배치할지가 혁신 공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공천 작업에 나서면서 대진표가 확정된 격전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지역은 이재명 대표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맞붙는 인천 계양을이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로는 대체로 이 대표가 앞서고 있지만, 출렁이는 선거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 원 전 장관의 처지에선 선거에서 지더라도 유의미한 득표를 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더 넓어질 수 있다.
한강 벨트와 수원 벨트, 낙동강 벨트도 격전지로 꼽힌다. 특히 낙동강 벨트에선 국민의힘이 다른 지역에 있던 중진 의원들을 돌려막기하며 공세를 펼치고, 민주당은 현역 의원을 전진 배치하며 수성에 나서고 있다. 낙동강 벨트의 분위기에 따라 주변 지역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어 사활을 건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국민의힘이 영입 인재 중심으로 의석 탈환에 나선 수원 벨트 역시 수도권 전체의 민심을 가늠할 지역이니만큼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가 주목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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