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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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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에선 새벽에 아이가 아프면 부산까지 간다”

이장우 울산 동구 국회의원 후보(노동당)가 “노동자의 도시엔 노동자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
등록 2024-02-23 20:26 수정 2024-02-27 18:15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이 지역 주민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만든 울산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 중인 이장우 노동당 후보. 이장우 캠프 제공

노옥희 전 울산교육감이 지역 주민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만든 울산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 중인 이장우 노동당 후보. 이장우 캠프 제공


‘노동자의 도시’ 혹은 ‘현대공화국’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등 조선업 노동자가 밀집한 울산 동구다. 이 지역구에선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5선을, 정 전 의원을 보좌한 현대중공업 출신 안효대 전 새누리당 의원이 2선을 했다. 진보 단일화로 김종훈 전 의원(현 울산 동구청장·진보당)이 2016년 당선된 경우를 제외하면, 지금도 정몽준계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자리잡고 있을 만큼 정 전 의원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다.

여야 합의한 ‘꼼수’ 법안과 ‘예산 유치’의 허상

이런 곳에서 “노동자의 도시엔 현장을 아는 노동자 정치인이 필요하다”며 총선 출사표를 던진 정치인이 있다. 이장우(57) 전 울산대학교병원 노동조합지부장이다. 이장우 노동당 울산 동구 총선 예비후보는 거대 양당이 각각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 김태선 전 청와대 행정관(더불어민주당) 단수공천을 확정한 상황에서 “신물 나는 양당정치는 울산 동구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현장 정치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대공화국’이란 별칭에도 노동자가 주민 다수인 이곳은 ‘진보정치 텃밭’이기에 소수정당 후보임에도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2024년 2월16일 그가 선거운동 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을 찾았다.

―지역 특색이 뚜렷하다. 거리에 정형외과가 줄지어 있고 폐암·난청 등 산업재해 상담 홍보문구가 많이 보인다.
“지역 경제가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울산 동구에선 정치인들이 주로 먹고사는 ‘돈 문제’만 얘기하지만, 나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폐암 환자를 많이 봐왔다. 울산은 폐암 사망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특히 울산 동구 여성의 기대수명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원인은 유해물질로 추정된다. 현대중공업 페인트 분진, 즉 배에 페인트칠할 때 발생한 가루가 공기 중으로 날아와 호흡기에 들어간다. 이를 막기 위한 법제화는 이미 돼 있음에도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페인트를 분사할 때 실내에서 하지 않고 야외에서 한다거나, 정화하는 장비를 구비하지 않는다거나, 친환경 페인트를 써서 규제를 피해가는 식이다. 페인트는 기본적으로 중금속이 많아 유해물질 측정소를 늘리고 감시 강화가 필요하다. 지금 유해물질 측정소가 동구에 단 한 곳(전하2동 주민센터 옥상)뿐이다. 거대 기업체와 산업단지의 유해화학물질 배출 관리감독을 더욱 철저히 하는 건, 현행 법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안 한다.”

―양당이 울산 동구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2023년 12월 <한겨레>가 보도한 ‘지역균형투자촉진특별법안 국회 산자위 가결’ 뉴스를 보고 놀랐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곳(지방자치단체장 신청, 심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정)은 각종 규제를 완화해준다는 내용인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가 함께 이를 가결 처리했다. 노동자들은 전혀 몰랐다.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울산 동구가 특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럼 우리 노동시간은 악화하고 중대산업재해 발생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 조항(제6조)도 피해갈 가능성이 있다. 권명호 의원이 산자위 위원 중 한 명인데 이런 법이 가결되다니 안타깝다. 국민의힘은 선거 때면 ‘예산 확보했다’는 얘길 하는데 그게 우리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조선업과 관련한 예산이 확보되면 조선업 종사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긴 하지 않나.
“2014년부터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으로 하청 2만6천여 명, 정규직 1만여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그 여파가 마트·식당·병원 등 자영업 하는 동구 주민 전체에 전가됐다. 여기에 대응한다고 정치권이 동구를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선정해 2018년 4월부터 4년4개월간 1조8334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지원됐다. 그런데 주민이 체감하는 건 거의 없었다. 사용내역을 보면, 전체 1조8334억원 중 도로 인프라 조기 추진에 무려 1조5523억원이 들어갔다. 이게 해고당한 주민과 당장 소비가 급감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 게 맞느냐. 이런 예산에 유착관계는 없었는지 국회의원이 된다면 꼭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2024년 2월16일 저녁, 전 울산대학교병원 노동조합지부장인 이장우 노동당 울산 동구 총선 예비후보가 울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장우 캠프 제공

2024년 2월16일 저녁, 전 울산대학교병원 노동조합지부장인 이장우 노동당 울산 동구 총선 예비후보가 울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장우 캠프 제공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구호는 현실 모르는 10년 전 의제

―민주당 후보가 현수막에 내건 ‘정규직 전환’은 하도급 문제가 심각한 울산 동구에 필요한 의제 아닌가.
“안타깝지만 그건 10년 전 의제다. 이미 비정규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이제는 그 비정규직마저 이주노동자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노동 과제는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닥쳐올 큰 변화인 ‘이주노동’ 문제다.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의 차이는 엄청나다. 거의 ‘인간’과 ‘인간 아닌 사람’ 정도의 차이다. 예를 들면 굉장히 뜨거운 여름날 정규직은 여름휴가를 보름 가까이 갈 수 있다. 하청 노동자는 3일 정도 갈 수 있다. 기온이 극도로 높은 날의 노동은 하청 노동자가 하란 거다. 이번 설 연휴 때 큰 구조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사망한 현대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도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이 사고는 올해 발생한 5번째 조선업계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다.”

―오토바이 타고 줄지어 퇴근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향해 ‘9시간 1공수 폐지’를 외치는 모습을 봤다. 어떤 내용인가.
“임금 삭감 문제다. 보통 다른 곳은 8시간 일하면 하루 일당을 쳐주는데 울산 현대중공업 물량팀은 9시간 일해야 하루 일당을 쳐준다. 여기서 ‘9시간 1공수’란 현장에서 이런 의미다. 일하는 사람이 집안일이 생겨 8시간 일하고 퇴근하면 1시간 임금만 깎는 게 아니라 하루 일당의 80% 정도만 준다는 의미다. 게다가 물량팀은 하청의 하청이라 ‘업무량을 하루에 얼마씩 쳐내라’는 식이기 때문에 일하면서 거의 쉬지 못한다. 물량팀이 일반 하청보다 하루 버는 돈은 좀더 많아 보이지만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단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 하청과 물량팀 하청 속도 차이가 거의 1.5배 차이 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까. 이는 임금 체불 문제와도 연관된다. 불황 때 노동자를 대거 구조조정하면서 임금체불 업체가 많아졌는데 그 뒤 뜸하다가 최근 다시 하나씩 나오고 있다. 하청업체가 원청과 계약할 때 경쟁이 붙어 너무 값싸게 계약하다보니 못 버티고 도산해 임금을 못 주는 거다.”

주민이 가장 원하는 ‘하청 노동자 기본급 인상’

―노후 선박 교체 등 이슈로 조선업이 다시 호황을 맞았는데, 노동환경이 좋아질 가능성은 없나.
“하청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을 고착화할 새로운 문제가 오고 있다. 이주노동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1월 울산 조선소를 방문하지 않았나. 그때 적시에 필요한 인력이 공급될 수 있는 비자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게 울산 동구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외국인노동자가 조선소와 세전 월급 270만원 정도로 계약하고 들어온다. 그런데 6인 1실 기숙사비로 몇십만원 떼가고 밥값으로 또 얼마 떼가고, 그러다보면 노동강도는 굉장히 센데 이 사람들이 실질적으론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는 셈이다. 노동환경이 좋지 않아 일하려는 사람이 없으면 노동환경을 좋아지게 만들거나 임금을 높여줘야 하는데 ‘최저임금 수준 외국인 들여오면 된다’는 식으로 해결하는 거다. 결국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는 고착화한다.”

―이주노동자 유입에 대한 주민들 생각은 어떤가.
“2023년 10월 ‘울산 동구 살리기 주민대회’에서 주민투표를 했는데, 주민들이 가장 바란 동구 살리기 방안 1위가 ‘하청노동자 기본급 30% 인상’(총투표수 1만8007명 중 7658표)이었다. 무분별한 저임금 이주노동자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권 보장과 차별 해소 없이 비숙련 이주노동자를 급격하게 확대하는 정부·여당 정책은 이주·정주 노동자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다. 2023년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에 들어온 이주 노동자 수는 6300여 명이고, 2024년 상반기 중 1700여 명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여기에 새 비자 정책이 더해지면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굉장히 급작스럽게 이주민이 늘어 주민들이 당황하고 있고 인종 갈등, 문화 갈등 등 사회문제도 드러날 거다. 결국엔 이런 의식의 문제, 또 행정의 문제를 정치권에서 풀어나가야 하는데 지금 뭘 하고 있나?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사회문제가 예상되는데 아무 대책이 없다."

‘지역 소멸’과 엮인 버스노선·어린이병원 등 문제

―‘지역 소멸’과 관련해 울산 동구에서 드러나는 주민 실생활 문제는 뭔가. 
“필수 의료인력 부족 등으로 울산 동구에선 새벽에 아이가 심각하게 아프면 부산까지 간다. ‘달빛어린이병원’(야간 운영 어린이 전용 병원)이 시행된 지 10년 됐는데 그간 울산엔 단 한 곳도 없었고, 계속된 지적 끝에 올해 생기게 됐다. 필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울산대 의대와도 연관돼 있다. 울산에 있어야 할 울산대 의대가 불법적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울산대 의대는 1988년 다른 지역 의대 정원을 줄이면서까지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인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교육부의 불법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본과 1년만 울산에서 운영하겠다는 꼼수로 일관하고 있다. 울산대 의대는 본과 전 학년을 비롯해 의과대학원과 연구시설까지 모두 온전히 울산으로 환원돼야 한다. 대중교통 문제도 있다. 울산시는 현행 183개 노선 가운데 30개 노선을 폐선하고 32개 노선을 단축, 20개 노선을 신설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동구 주민들은 삼산동에 가기 위해 더 비싼 좌석을 타거나 30분 이상 더 걸리는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공공성 논리가 아닌 수익성 논리에 따른 개편안이 나오면서 발생한 문제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이렇게 정치인이 된 배경이 궁금하다. 또 왜 다른 당이 아닌 노동당인가.
“내게 정치는 노조 활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보건전문대 임상병리과에 입학한 뒤 해군특수전부대(UDT)에 입대했는데, 부대 동기 중 현대공고를 나와 현대중공업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이 ‘노동자 투쟁하는 애들은 다 빨갱이’라는 거다. 나도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제대하고 이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완전히 변해 있는 거다. ‘노조는 엄청 좋은 것’이라고 홍보했다. 군대 가기 전 월급이 8만∼9만원이었는데, 제대하고 나니 노조 덕에 월급이 30만원이 됐다는 거다. 게다가 발로 걷어차는 것도 없어지고, 저녁 8시까지 일하면 빵과 우유도 준다고 자랑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호기심에 내가 입사한 울산대병원(당시 해성병원) 노동조합에 들어갔다. 병원이야 조선소보다 인권적이지만, 그래도 폭력과 술·담배, 성추행 문제가 많았는데 노조 덕에 하나씩 사라져갔다. 식당 노동자 정규직화도 이뤘고, 청소 노동자는 용역으로 유지됐지만 처우 개선 요구를 계속한 결과 성과가 있었다. 이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노동조건은 언제든지 퇴보할 수 있다. 노동자가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울산=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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