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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 도장 찍기도 전에 피곤하다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들 “편향된 이념 교육 심판”… 중앙정부 교육철학 보이지 않는데 교육감 선거마저 토론 없이 ‘이념’만 난무해
등록 2022-05-31 02:58 수정 2022-05-31 11:39
2022년 5월1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연대’가 ‘전교조 OUT(퇴출)’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5월1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연대’가 ‘전교조 OUT(퇴출)’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여, 혐오스러운 교육부터 중단하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조전혁 후보는 2022년 5월25일 ‘혐오표현을 중단해달라’는 전교조의 요구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6월1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서울 곳곳에 ‘전교조 교육 아웃(Out·퇴출)’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내걸었다. 조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지금 교육을 ‘좌파 교육 권력의 폭주와 실정’이라며 “이념과 진영 논리가 교육 현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치 구호에 욕설·비방도

교육감 선거에서 색깔론에 매몰된 건 조 후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5월1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선 조 후보를 포함한 10명의 교육감 후보(경기 임태희, 대구 강은희, 인천 최계운, 세종 이길주, 충북 윤건영, 충남 이병학, 강원 유대균, 경북 임종식, 경남 김상권)가 ‘반지성·반자유·전교조 교육 아웃’을 구호로 내건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연대’ 출범식을 열었다. 연대는 “이번 교육감 선거는 편향된 이념을 앞세워 마구잡이식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재단한 전교조 교육감들에 대한 심판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교조는 이들을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유권자는 정치적 구호로 가득 찬 교육감 선거가 답답하다. 6살 자녀를 둔 서울 관악구의 남아무개(37)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우리 세대와 어떻게 다른 교육을 받을지 궁금한데, 홍보물 공약을 봐도 어떤 교육철학으로 임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의 고등학교 국어교사 김현수(33·가명)씨도 “큰 의제나 방향에 대한 토론은 없고 부분적 공약만 얘기해 교사들도 관심이 별로 없다”며 “교육정책은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는 게 아니어서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하는데, 정치 논리에 따라 정책이 또 쉽게 바뀌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선 욕설·비방전까지 벌어졌다. 보수 진영 조전혁·박선영·조영달 후보의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조전혁 후보는 박 후보를 ‘저 미친×’라고 지칭했고, 박 후보는 이 녹취록을 폭로했다. 조전혁 후보는 해당 전화를 녹취한 조영달 후보를 겨냥해 “나는 대화를 몰래 녹취하는 자를 ‘인간말종’으로 본다. 인생 밑장까지 다 떨어진 자. 네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하마”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선거를 외면하기엔, 교육감들의 권한이 너무 크다. 이번에 선출되는 교육감들은 2022년 배정된 약 65조원의 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다루고, 교원 인사 권한, 교육기관 설치·이전·폐지 총괄 권한 등을 갖는다. <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인 이범 교육평론가는 “보수·진보가 차별성을 내기 힘들어진 시대적 상황이라면, 어느 진영 후보가 교육 가치에 역행하는 일을 덜 하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고교학점제 뭇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후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공약이 있다. 대부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개인맞춤형 학습을 강조하고,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방과후 돌봄 지원을 공약했다. 교사의 행정 부담 축소, 학급당 학생 수 줄이기, 무상교육 지향 등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기초학력 격차’에 대한 해법은 갈린다. 서울·부산·울산 등 지역의 보수 진영 후보들은 ‘좌파 교육감들이 시험을 없애 기초학력이 하락하고 있다’며 학력평가 도입을 공약했다. 초등학생과 중학교 1학년생이 시험 성적표를 받아보는 식의 학력 진단 기능이 사라져, 사교육 시장만 확대됐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이범 평론가는 “초등학생 학업성취도 평가를 완전히 폐지한 건 박근혜 정부”라며 “핀란드도 일제고사가 없는데 세계 최고 수준 학력이 나오는 배경은, 일상적으로 학습이 느린 아이들을 모아 피드백하고 점검하는 체제가 갖춰져 있어서”라고 말했다.

서울의 조전혁·박선영·조영달 후보를 비롯해 충남의 이병학·조영종 후보 등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이들 보수 진영 후보는 교실 현장의 교권 추락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박선영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학생인권조례를 ‘전교조가 해온 적폐’로 규정하면서 “학생의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12년 1월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이후 체벌이 사라지고 두발·복장 자율화 등 학칙이 생겨났다. 학생들도 학칙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2025년 전체 고교에서 본격 시행될 예정인 ‘고교학점제’에 대해서도 보수 진영 후보들은 대안 없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고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고교학점제를 비판하는 논리 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 현장과 맞지 않는 정책”이란 주장이다. 보수 진영 후보들은 ‘수능과 괴리된 제도다’ ‘학교 간 선택과목 격차가 심할 수 있다’ ‘현장에서 강사를 구하기 힘들다’ 등을 언급한다. 하지만 경기도 부천의 한 교사는 “변화엔 어려움이 따른다. 현장에선 변화가 많고 정규직 교사가 아닌 다양한 과목 강사가 유입되기 때문에, 방향성이 옳아도 부정적 반응을 많이 보일 수밖에 없어 이를 고려하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없고 이념 비판만

애초 당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교육전문가가 없어 교육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온 가족 풀브라이트 장학금 특혜 의혹’ ‘제자 논문 짜깁기 의혹’ 등이 쏟아져 나와, 결국 자진 사퇴했다. 중앙정부의 교육철학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감 선거마저 제대로 된 토론이 없자 시민사회에서도 ‘답답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교육감 후보들이 토론회에서 ‘현장, 현장’ 하는데 사실 현장을 아는 교육계 출신 교육감 후보가 얼마나 있냐”며 “교육 현장을 고려할 때 우려스러운 지점이 무엇인지 얘기하면서 그 보완점을 토론해야 할 때인데, 이념적 비판만 나오고 있다. 후보들이 교육부의 종합 추진 계획이나 연구성과 보고서 등을 보면서 선거를 준비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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