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24일 저녁 7시30분께 인천 계양구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 앞. 파란 옷을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음악에 맞춰 일제히 춤을 췄다. 이들 뒤편 유세차량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가 내건 약속이 적혀 있었다. ‘계양을 제2의 판교로, 일하겠습니다. 1번 이재명’. 몇몇 시민은 이들을 등진 채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렸다. 더러 양쪽 귀를 막은 이도 보였다. 차량에 오른 윤환 민주당 계양구청장 후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잠시 뒤 이재명 후보가 유세차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께서 이재명을 죽이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천 계양을 선거구에 관심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가 25년째 지역에서 내과의사로 일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와 뜻밖에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판세는 최근 며칠 사이 확연히 바뀌었다. 5월18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후보는 50.8%, 윤 후보는 40.9%의 지지율이 나왔다. 그러다 21일 에스티아이 조사 결과(이재명 45.8%-윤형선 49.5%)를 시작으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보이는 조사가 잇따랐다. 불과 두어 달 전에 있었던 제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계양을에서 52.2%의 지지를 받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득표율은 43.6%였다.
민주당이 성추행 논란의 여파로 내홍을 겪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5월18일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과 함께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5월21~22일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치렀다. 이같은 중앙정치라는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하락하는 배경에 어떤 다른 지역 민심이 있는 걸까.
5월24일 오후 인천 계양구 임학사거리. 걸어서 1분 거리에 이재명, 윤형선 두 후보의 선거사무소가 있었다. 사거리에는 빨간 옷과 파란 옷을 입은 유세원이 삼삼오오 다녔다. 유세차량 스피커에선 연설 소리가 흘러나왔다. 건너편 공원에는 ‘범죄자·도망자를 구속 수사하라!’는 펼침막을 내건 보수단체 차량이 보였다. 사거리에서 만난 주민 노광석(67)씨는 “‘이재명이 되면 계양 사람은 자존심도 없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다음엔 떠날 사람”이라며 이 후보가 “명분 없는 출마를 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불출마 선언 뒤) 뛰쳐나간 지역구에 연고도 없이, 대선 패배에 대한 성찰도 없이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이를 의식해 “(당선되더라도 남은 임기를 마치고) 2년 만에 (계양을 지역구를) 나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역 구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떠날 사람’이 아님을 강조했다.
인천 북동쪽에 있는 계양구는 인천에서 유일하게 서울과 맞닿은 교통 요충지로,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송영길 전 대표는 2000년 제16대 총선 때 계양구에서 처음 당선됐다. 계양구가 ‘갑’ ‘을’ 선거구로 나뉜 뒤엔 계양을에서 네 번 더 당선됐다. 제21대 총선에서 송 전 대표가 58.7%를 얻어 당시 미래통합당 윤형선 후보(38.7%)를 넉넉히 이겼다. 제20대 총선 득표율도 송영길 43.3%-윤형선(당시 새누리당) 31.3%-최원식(당시 국민의당) 25.4% 순서였다. 한 지역민은 “(계양을에는) 열 명에 세 명꼴로 호남 출신이 산다”고 전했다.
최근 계양을의 민심 변화는 민주당 구청장과 구의원 등의 공천 과정에서 생긴 잡음으로 ‘집토끼’라 할 호남 출신 유권자가 이탈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계양구청장 경선에 호남 출신인 이용범 전 인천시의회 의장이 나왔지만 탈락하고, ‘송영길 측근’으로 알려진 윤환 계양구 의원이 구청장 후보가 됐다. 이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오래 한 이세영 기본소득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도 “석연찮은 경선 결과에 호남향우회에서 반발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거에서 계양을에 나온 민주당 쪽 시의원, 구의원 후보 다수는 송 전 대표와 가까운 인물들이다. 이한구 전 인천시의회 의원은 “송 전 대표가 자기 사람들을 후보로 넣어놓고 사과도 없이 서울시장이 되고자 떠나버렸다. 이재명 후보는 송영길에 대한 지역민의 배신감을 안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항철도역과 인천지하철 1호선이 교차하는 ‘더블 역세권’인 계양역 주변엔 밭과 산이 보인다. 역 건너로는 아라뱃길이 뚫려 있다. 이세영 상임대표는 “계양구는 도시와 농촌이 섞이다보니 동네 입소문이 강하다. 이재명 후보는 낮에 전국을 다니고 밤에 계양 도심을 주로 다녔다. 멀리서 찾아온 열성 지지자를 더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최근에야 지역 사람과 직접 만나는 일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대선 후보라는 타이틀이 이 후보에게 오히려 짐이 된 셈이다.
5월24일 저녁 8시 계산역에서 이 후보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시민 200여 명이 몰렸다. 이들은 연신 사진 찍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지지를 보이는 이도 많다. 계양구에 사는 50대 여성 ㄱ씨는 “대대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사우나에서 아주머니들이 ‘이재명 꼭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명이 되면 인천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후보 캠프는 5월23일부터 열성 지지자보다 현지 유권자를 더 만나려 ‘잠행 유세’에 나섰다. 5월26일 오전 9시30분에는 계양 주민과 비공개로 간담회를 하고 오전 11시30분에는 장소를 알리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타며 유권자를 만났다.
연거푸 두 번이나 계양을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대선 후보 출신 거물급과 경쟁하는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는 중앙당의 집중지원을 받고 있다. 윤 후보는 “25년간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며 계양의 발전을 고민했다. 국민의힘에서 나경원, 안철수, 정진석 등 최고지도부가 모두 나와 (이재명을 떨어뜨리려) 지원해주고 있다”며 한껏 고무돼 있었다. 5월26일 윤 후보는 새벽 4시30분부터 인력시장을 찾고 저녁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동행유세를 진행했다.
6·1 지방선거 투표일까지는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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