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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기득권층 대변자 된 86, 맞는 말”

대선 뒤 86세대 중 처음으로 정계은퇴 선언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인터뷰
등록 2022-05-01 10:49 수정 2022-05-01 19:10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86세대 정치’는 최근 몇 년 사이 비판적 담론으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86세대’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뜻한다. 이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쟁취라는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다.

최근 86세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86세대 맏이 격인 김영춘(60)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하 직함 생략)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2022년 3월21일 “저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며 86세대 중 처음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어 4월6일 최재성(57)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소명이 필요하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대선 패배 이후 86세대가 정치무대에서 잇따라 퇴장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86세대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처리를 위해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을 감행한 민주당을 겨냥해 4월21일 조정훈(50) 시대전환 대표는 “어떻게 보면 이게 입법 독재다. 민주화를 이룬 (86세대) 선배들을 우상처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우상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앞서 2020년 9월16일 장혜영(35) 정의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87년 청년 정치인이 87년 청년들께’라는 5분 발언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한때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어느새 시대의 기득권자로 변해 말로만 변화를 이야기할 뿐 사실은 그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81학번인 송영길(59) 전 민주당 대표가 ‘86세대 용퇴론’을 제기한 뒤 두 달여 만에 6·1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하산 신호를 내린 기수가 갑자기 나홀로 등산을 선언했다”는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25일 “586세대가 기득권이 됐다는 당 내외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가 원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이지 기득권이 아니다”라며 차기 국회의원선거 불출마 선언을 했다.

20대 총선의 감격과 21대 총선의 충격

이런 상황에서 김영춘의 정계은퇴 선언이 ‘86세대 용퇴’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4월15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 있는 ‘메가시티 포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영춘은 이날 정계은퇴 이후 ‘인생 이모작’을 구상하기 위해 전날까지 사흘간 제주 올레길과 오름을 걷고 돌아온 참이었다. 이후 전화 인터뷰도 추가로 진행했다. 그는 “세대가 아닌 개인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쉬는 날 없이 나름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1987년 25살에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지 35년 만에 정계은퇴를 선언 했다.

“사실 소년 시절의 꿈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인이었다. 시절을 잘못 만나서 엉뚱한 길을 평생 걸어왔다.(웃음) 시원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인생으로 이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시원함이 있다. 반면에 아직 우리 정치가 국민이 보시기에 좋은 정치는 아니지 않나. 못다 한 일이 참 많다는 면에서 섭섭함도 있다.”

김영춘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광진갑에서 처음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2000년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16대 총선에선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때부터 86세대 정치인의 등장이 본격화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 피 수혈론’을 내세우며 학생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이에 맞불을 놨다. 이렇게 해서 새천년민주당에선 송영길(연세대 81학번), 임종석(한양대 86) 등이, 한나라당에선 오세훈(고려대 79), 원희룡(서울대 82) 등이 원내에 입성했다. 또 다른 86세대 대표 정치인인 윤호중(서울대 81), 우상호(연세대 81), 이인영(고려대 84) 등은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했다.

더는 가슴이 뛰지 않아 정치를 그만둔다고 했는데. 정치하는 동안 가장 가슴이 뛰었던 때는.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역시 1987년 민주화였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마치고 부산에 돌아와 선거에서 실패하다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됐을 때가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김영춘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그동안 재선을 했던 서울 광진갑이 아니라 자신의 고향이지만 민주당 후보로서는 ‘험지’인 부산의 부산진갑에서 출마했다. 정치 궤도의 대전환을 꾀한 것이다. 지역주의 해체, 정치개혁, 지역발전 등의 명분을 담은 “노무현 이어달리기”를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벽은 높았고, 그는 낙선했다. 실패를 딛고 4년 동안 꾸준히 부산진갑에 공을 들여 마침내 2016년 총선에서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2019년 당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당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왼쪽)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울경 메가시티’에 힘 보탤 예정

가장 아쉬움이 남은 때는.

“천국과 지옥은 바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20대 총선 당선이라는 천국 뒤에 21대 총선 낙선이라는 지옥이 왔다. 20대 국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했고,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면서 무너진 부산의 해운산업을 재건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21대 총선에서 뜻밖에 낙선했다. 굉장히 충격이 컸다.”

대선 패배 12일 만에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할 줄 알았는데. 정계은퇴는 언제부터 생각했나.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부터다. 2011년 부산으로 올 때 부산 정치를 바꿔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절반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이제는 부산에서도 국민의힘이 공천받는다고 무조건 당선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또 모든 걸 서울이 빨아들이는 ‘서울공화국’에서는 서울에서 멀면 멀수록 점점 몰락해가는 것이 지방의 현실이다. 부산 혼자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내가 시도한 게 ‘부울경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많은 분과 협력해 실행시켰다(국내 최초 특별지방자치단체인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이 2022년 4월19일 출범했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르면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도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했다. 이런 목표가 있을 때는 도전하는 과정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더는 가슴이 뛰지 않고, 의미나 가치 없이 선거 때마다 나가는 직업정치인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하게 됐다.”

가덕도 신공항의 경우,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가 타당하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건 철저하게 서울 패권주의식 논리다. 그렇게 따지면 서울에서 먼 지방일수록 인구가 적고, 그러면 예타를 통과할 사업이 하나도 없다. 그런 기준으로라면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가속화되고, 서울에서 먼 부울경 지역이나 호남 지역은 이대로 말라죽어가는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에서 독립을 추진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대담론의 시대는 가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고 얘기했는데.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나 모두 국회의원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었다. 그걸 보면서 이 시대는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생활정치 시대구나,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시·도민이 원하는 걸 시원하게 잘 해결해준다고 인정받은 분이다. 민주주의, 통일 등 거대담론으로 정치를 한 나 같은 사람의 시대가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본인의 정계은퇴가 86세대 퇴장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해석할까봐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페이스북 글에서도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정치를 해온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달라’고 적었던 거다. 86세대 정치인은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다는 공통점 외에는 동질적인 정치인이 아니다. 운동권 성향이 남아 있는 사람부터 생각이 달라진 사람까지 매우 다양하다.”

‘86세대가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86세대를 포함해 모든 국회의원은 이미 다 기득권층이다. 과거에 부르짖던 정의, 평등 등의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입장이 됐는가 비판하면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유효한 2013년의 ‘줄서기’ 비판

김영춘은 2013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5월호에 “민주당 386세대 정치인들은 과거 운동정신을 망각한 채 각기 다른 지도자들을 추종한 속물적 계파정치에 매몰됐다. 수년간 정치적 견해에 따른 정파활동보다는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줄서기, 줄 잡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불공정한 특권구조의 해체와 사회경제적 약자의 대변이라는 소명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참회의 반성문을 쓴 적이 있다.

어떤 맥락의 비판이었나.

“열린우리당 몰락의 경험에 나온 86세대에 대한 자기비판이었다. 나는 2000년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줄서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다. 그 권력을 국민을 위해 써야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파당을 짓고, 줄서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방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그런데 옆을 쳐다보니 끊임없이 친노(친노무현) 줄서기를 하다 그게 잘 안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호남 줄서기를 하더라. 열린우리당 창당 때 전국 정당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하자는 정신은 다 어디 갔나. 젊은 초·재선 중심의 86세대는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 비판이 지금도 유효한가.

“지금도 비슷하다고 본다. 이제는 친노에 친문(친문재인) 그룹, 거기다가 팬덤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줄서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이나 당의 주류에 대해 비판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되는 문화가 생겼다. 대통령 팬덤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국민도 민주당에 기대하는 게 있는데,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되는 거다. 민주당 의원들은 늘 강경하고 일방적인 목소리를 내는 친문 팬덤 눈치만 보니까. 그러면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이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정치가 돼버렸다. 그게 결국은 민주당에도 독이 돼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또 과거 열린우리당은 너무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어서 배가 산으로 갔다. 반면 지금 민주당은 그런 토론이 제대로 안 되는 문제가 있다. 항상 우리가 열탕과 냉탕을 심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게 문제다.”

민주당에서 한때 ‘20년 집권론’이 나오기도 했는데,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게 됐다.

“20년 집권론 떠들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주인인 국민이 보기에는 머슴인 정치인이 ‘우리가 20년 집권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제대로 된다’는 식으로 말하면, 주인 입장에서는 내쫓고 싶어지는 거다. 그러한 오만불손해 보이는 태도의 문제, 실패한 부동산 정책, 내로남불 등이 종합돼 우리가 패배한 거다.”

그 0.73%포인트 차이의 패배로 민주당 내에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가 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싸워서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그렇게 교만하게 보이고 반성 없는 마이웨이로 간다면 7%, 17% 차이로 계속 벌어질 수 있다.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대선을 며칠 앞두고 ‘뒤늦게’ 정치개혁 공약을 했다. 정치개혁을 화두로 정치를 계속해온 입장에서 정치개혁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지금의 대통령 중심제는 51%를 이기는 쪽이 전부를 다 먹는 승자독식 게임이다. 반면 내각책임제에서는 다당제를 기초로 해서 30% 이긴 정당이 21% 이긴 정당과 연합해 집권하는 등 다양한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가능하다. 이처럼 다당제가 가능한 선거제도 개혁과 내각책임제 개헌을 같이 묶어서 정치개혁을 하는 것을 적극 고민할 때가 됐다고 본다. 그런 제도 변화가 지금의 적대적 정치 현실을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계복귀? 후배들과 싸우는 게 싫다

정계은퇴 페이스북 글에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고 썼다. 향후 계획은.

“하고 싶은 게 많다. 우선 2021년부터 ‘메가시티 포럼’을 시작했다. 4월19일 출범한 부울경특별연합은 껍데기가 만들어진 것이고 이제 그 알맹이를 충실히 채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메가시티 포럼을 통해 그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도 관심이 많은데 관련 분야 전문가와 청년을 연결하는 멘토링 네트워크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향후 정계복귀 가능성도 열어두는 건가.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정치는 냉혹한 현실의 게임이기 때문에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를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한다.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혈기가 남아 있어 사명감에 차오르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싸우는 게 싫다. 또 많은 경우엔 후배들과 싸워야 하니까. 이런 것도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더는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포인트이다.”

부산=글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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