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2년 2월22일 인천시 남동구 로데오거리광장에서 열린 인천 집중 유세에서 청년들의 공약 부케를 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였던 요기 베라(뉴욕 양키스)가 남긴 이 말이, 2022년 대한민국 대선판을 관통하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3월3일부터)와 사전투표일(3월4~5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지만, 여론은 아직 혼조세다. 여론조사에선 양강 후보가 여전히 예측불허의 박빙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상징하듯, 꺼져가는 듯했던 후보 단일화도 여야 양쪽에서 불씨를 살려두고 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 표심도 마지막까지 구애 대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야권 단일화 제안 철회(2월20일) 직후인 2월21~23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이하 ‘전국지표조사’, 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004명에게 전화면접 100% 방식)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37%,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39%로 두 후보가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전 같은 조사에선 이 후보 31%, 윤 후보 40%로 오차범위 밖에서 윤 후보가 9%포인트 앞섰지만, 일주일 새 오차범위 내 박빙으로 흐름이 바뀐 것이다.
또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2월20~23일 조사한 후보 지지도(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2038명에게 전화면접 40%·자동응답(ARS) 60% 혼용 방식)에서도 이 후보 40.5%, 윤 후보 41.9%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 안에서 초박빙 승부를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1.8%포인트) 밖에서 윤 후보 우세였던 일주일 전 같은 조사보다 이 후보는 1.8%포인트 올랐고, 윤 후보는 1%포인트 내려 오차범위 안으로 두 후보의 격차가 좁혀졌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변화한 민심의 가장 큰 원인은 안 후보의 야권 단일화 철회라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2월17일 전국지표조사에서 이 후보가 윤 후보에게 9%포인트 차로 열세인 결과가 나오자,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안 후보가 던진 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가 국민의 관심사가 됐기 때문이다. 단일화 이슈의 결론이 나오면 다시 여론조사 수치의 흐름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분석이 타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여전히 후보 단일화다. 특히 안 후보가 야권 단일화 제안을 거둬들인 뒤, 단일화 결렬 책임과 관련해 양당이 아슬아슬한 폭로전을 벌이면서 야권 단일화 트랙에선 ‘신의’ 문제가 불거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2월22일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로부터 빨간 목도리와 꽃다발을 받은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월23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 후보가 (대선을) 접게 만들겠다’는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고 말한 게 갈등의 불쏘시개다. 국민의당에 ‘내부 배신자’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어서다. 그러자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이 대표가 ‘안 후보가 깔끔하게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고 합당하면 향후 (지방선거) 공천심사위 등에 참여하도록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안 후보를 종로 보궐선거에 공천할 수 있고, 부산시장 선거도 나갈 수 있다는 제안도 했다”고 폭로했다. 양쪽이 막후 대화를 무대 위에서 거침없이 공개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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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정치학자는 “윤석열 후보에게 단일화를 반드시 하겠다는 ‘절박함’이 안 보인다. 지지율이 박빙 상황임에도, 단일화 없이 이길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꺼져가는 단일화 불씨를 살리려 부심하는 모양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2월24일 선대본 회의에서 “당대표를 비롯해 우리 모두 사감이나 사익은 뒤로하고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할 때”라며 이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윤-안 후보 간 극적인 담판을 통해, 투표용지 인쇄일(2월28일)을 앞둔 주말이나 사전투표일(3월4~5일) 전에 단일화할 가능성 등도 국민의힘 한편에서 나오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번주 후반이나 다음주에 나오는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이 후보에 대해 경합 우세인 현재의 상황이 뒤집힌다면 윤 후보가 단일화에 적극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후보의 야권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닫힌 듯했던 여권과의 단일화 문도 다시 열렸다. 민주당은 다시 적극적으로 안 후보를 포함한 제3지대 후보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정치개혁’이 담보물이다.
이재명 후보는 2월24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능한 연합세력들이 역할을 나눠서 일하는 통합정부, 연합정부를 꼭 해야 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제외하고 진짜 국민의 삶을 개선하자는 모든 정치세력이 가능한 범위에서 협력하는 길을 찾자”고 밝혔다. 윤 후보의 ‘정권교체’에 맞서 ‘정치교체’를 고리로 제3지대 연대를 통해 중도층 표심을 흡수하면서 ‘민심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시대적 요구를 담아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마련했다. 안철수 후보의 새로운 정치, 심상정 후보의 진보정치, 김동연 후보의 새로운물결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3지대 후보들을 향한 구애에 발맞췄다. 그러면서 송 대표는 △비례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도를 새 정부 출범 6개월 이내에 개혁하고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을 위한 개헌을 새 정부 출범 1년 이내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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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상대편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의 정치교체 약속을 두고 “(이 후보와 민주당이)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을 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정치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약속이나 (민주당이) 배신한 게 문제다. 선거와 연동해서 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이행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이런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선거제 개혁을 국민의힘과 함께 무력화했던 게 민주당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내놓은 통합정부론은 진지한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박빙 선거 상황에서의 고육지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의 통합정부론에 대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게 진실이라면 이 후보가 된다는 전제하에 장래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긍정평가했다.
양강 후보 모두 확고한 1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거 당일 당락을 가르는 표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지층 결집은 기본이고 상대의 표를 잠식하는 ‘땅따먹기’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제시한 ‘통합정부론’도 안 후보와의 단일화 전략을 넘어, 그 자체로 중도층에 소구하기 위한 메시지다.
국민의힘은 호남 표심 포섭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2월23일 보수 정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 윤 후보는 이곳에서 “국민의힘은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에 가깝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김대중 정신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며 호남 표심을 파고들었다. 이는 비단 호남을 넘어 중도층을 향한 전략이기도 하다. 엄경영 소장은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는 말처럼, 윤 후보가 이렇게 호남을 공략해서 수도권 중도의 표심을 파고들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윤 후보는 충남 당진·서산·홍성·보령 유세(2월21일)에서도 “부정부패에 연루된 사람을 후보로 미는 민주당이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인가. 차기 정부를 담당하게 되면 김대중·노무현의 민주당에서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던 양식 있는 정치인과 협치하겠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가운데 이 후보가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후보는 2월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게 정치적으로 가장 아픈 부분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님을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을 온전히 안지 못한 것이다. 2017년 경선에서 지지율에 취해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과도하게 문재인 후보님을 비판했다”며 ‘반성문’을 올렸다. 지지층을 결속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다 이탈해 다른 후보를 지지하거나 무당층에 머물고 있는 민주당 이탈층에 호소하기 위한 메시지로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중도층의 표를 얻기 위해)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확실히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차별화를 하면 굳건하게 결집돼 있지 않은 기존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 생길 수 있는 딜레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표일(3월9일)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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