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 가난하다고 조롱한 작가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에는 16만 명 넘는 사람이 동의를 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왜곡한 외국 교수(미국 하버드대 마크 램자이어 교수)에 대해서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규탄이 이어졌다. 이런 국민적 공감대를 보면, 역사왜곡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충분히 고민해볼 문제로 보인다.
같은 고민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김용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5월13일 대표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안’의 취지에도 공감할 법하다. 이 법안은 “공연히 3·1운동, 4·19민주화운동, 일본 제국주의의 우리나라에 대한 폭력적·자의적 지배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역사를 왜곡한 자에게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며, 금지행위 위반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해서는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나서서 위헌적인 법안이라며 철회를 촉구하는 등 법조계와 학계에서 비판이 거세다. 여러 비판 의견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점이다. 정말 이 법에 그렇게 문제가 많을까.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람의 사상이 서로 부딪치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발전하기에, 민주사회라면 시민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떠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면서 국가에 의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한다. 원칙적으로 시민은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을 떠들고 다녔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해를 끼치는 행동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헌법 제21조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그 한계도 함께 정한다.
역사왜곡 행위는 사건의 당사자나 유가족의 명예와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역사왜곡 행위는 헌법에서 정한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표현에 해당한다. 그러한 역사왜곡 행위를 법으로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규제하려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국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사회적으로 해악이 큰 영역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면 혼이 나는지’를 법으로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이제 시민은 ‘특정해서 금지된 부분’만 조심하면 국가 눈치를 보지 않고 내 생각을 떠들 수 있다. 법적인 표현으로 정리하자면, ‘공공질서에 직접적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표현’에 대해서는 제한을 가할 수 있으나 법률로써 표현의 자유를 미리 규제하려면 ‘그 규범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왜곡방지법은 ‘사회적으로 해악이 큰 표현’을 ‘명확한 규범’으로 규제하고 있을까. 사실 법안의 문제점은 규제 내용의 명확성 면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이 법안은 △3·1운동 △4·19민주화운동 △일본 제국주의 지배 △독립운동 등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역사적 사실은 모두 전국적인 범위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났다(심지어 3·1운동과 독립운동은 해외에서도 이루어졌다). 아직 역사학계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이렇게 광범위한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자세히 알아야만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법안을 아무리 열심히 살펴봐도 ‘역사왜곡 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법안은 ‘진실한역사를위한심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정하고, 어떤 표현이 역사왜곡에 해당하는지는 해당 위원회 심리에 따라서 결정한다. 시민은 역사적 사실을 표현하고 나서 위원회로부터 심사를 거친 뒤에야 자신의 표현이 처벌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시민은 처벌을 걱정하면서 선뜻 표현하기를 자제할 것이다. 결국 역사적 사건에 관해서는 시민사회 전반적으로 표현이 위축되고 사상의 다양성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진실한역사를위한심리위원회’ 구성원 절반 이상이 대통령과 국회의장 지명으로 임명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위원회 구성에 역사학계보다 정부와 국회가 더 많은 힘을 가진다면, 결국 역사학계가 아닌 국가가 역사적 진실을 정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바뀌면 위원회 구성이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 역사왜곡 심사 기준도 바뀔 수 있다. 시민으로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을 더욱 조심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민주주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 않은가.
누군가 유럽에서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집단학살) 범죄를 부정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실제 유럽에는 나치 정권에 의한 유대인 학살 범죄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이를 찬양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는 역사적 사실이기보다는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과 학살 범죄의 성격이 크다. 따라서 홀로코스트 범죄에 대한 찬양은 역사왜곡일 뿐 아니라 그 피해자인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선동이다. 홀로코스트 부정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선동을 금지하려는 목적이 더욱 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차별금지법을 도입하기 위해 참고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역사왜곡방지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역사왜곡 행위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최소한의 법적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존엄을 유지하고 국민의 역사인식 고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이 누구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는지 고려하지 않았고, 결국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했다.
회초리로 역사 가르치려 든다면대부분 국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3·1운동, 4·19민주화운동을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당연한 사실에 대해 국가가 회초리를 들고 국민을 가르치려 든다면 그로 인해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의 품격이, 국가의 존엄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권태윤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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