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7·10 부동산대책’ 후속 법안을 비롯해 총 18개 법안이 처리됐다. 코로나19 대응 차원인 감염병예방법, 질병관리청 승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이른바 ‘최숙현법’이라는 국민체육진흥법은 이견이 없었다. ‘부동산 3법’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3법’ ‘임대차보호 3법’ 등은 야당이 반대했지만 통과됐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20여 일 만에 ‘쟁점 법안’이 모두 통과된 셈이니 엄청난 속도전이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지도, 거친 육두문자가 오가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일하는 국회’가 시작된 것인가?
사실 이 글은 21대 국회 초입에 대한 트릴로지(삼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국회 ‘법사위 전쟁’… 민주당이 이긴 걸까”(제1318호)가 1부, “국회 상임위 민주당 독식, 도로 12대 국회?”(제1320호)가 2부였다. 그러니까 이 트릴로지는 ‘총선에서 압도적 의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이 관행을 깨고 법사위 쟁탈전에서 이겼고, 그 여세를 몰아 전 상임위를 독식했고 쟁점 법안도 빨리빨리 처리했다’로 정리된다.
단독, 단독, 단독… 쟁점 법안 속도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 법안은 매우 중요한 민생(개혁) 법안”이라며 국회에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시한 제시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한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었다.
청와대의 재촉이 강해질수록 야당의 반대도 거세졌고 ‘대통령 관심 법안=쟁점 법안’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여당 지도부, 특히 원내대표는 청와대 눈치를 살피면서도 밀어붙일 시점을 조심스레 살폈다. 여론에 의해서건 피로감에 의해서건 야당의 저항이 꺾일 시점을 내다보고, 국회의장에게도 최소한의 명분을 주려는 정지작업을 진행한 뒤에야 ‘디데이’를 잡았다. 몇 달이 걸리는 것은 다반사였고 해가 넘어가거나 아예 무산되기도 했다.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야당 반발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면 청와대가 재송부 일정을 지정해 여론을 살피고 냉각기를 갖다가 임명장을 줬다. 낙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선 법안은 청와대가 제시한 시한을 넘기지 않았고 인사청문회는 종료 뒤 여당 단독으로 보고서가 채택됐다. 무리수가 없진 않았다. 각 상임위원회의 소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지만, 쟁점 법안이 상정되고 처리됐다. 미래통합당의 반발과 퇴장은 변수가 못 됐다. 민주당이 당론 1호로 발의한 ‘일하는 국회법’도 이 과정에서 무너졌다. △소위원회 설치·개회 의무화, 횟수 확대 △회부된 순서에 따라 안건 심의(선입선출) 원칙 등이 지켜지지 않았다. 정의당조차 이런 속도전에 반발하고 통합당은 이런 상황을 ‘입법 독재’로 규정했다.
차기 당대표 후보들은 ‘협치’ 강조
야당은 법도 잘못됐고 절차도 잘못됐다고 주장하지만 제3자들은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라는 전제조건을 붙이고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여당 의원 상당수도 절차적 문제점은 인정하지만 부동산법 조기 통과 필요성에 대해선 당·청의 공감대가 강하다. 언론마다 논조가 다르고 여론조사 결과도 조금씩 다르지만 부동산법 자체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그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사람들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상당히 공감하는 상황이다.
주로 사석에서 “이번은 정말 특수한 상황이다. 계속 이럴 수야 있겠느냐”고 말하는 여당 의원도 상당수다. 8월 말 전당대회에서 새 여당 지도부가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워낙 소신이 강한 강경파인데다 정계 은퇴를 예정해 남 눈치 볼 일이 없는 이해찬 대표와 대권 도전 등 다음 정치 일정을 내다보는 차기 대표의 셈법이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당권 후보들은 8월4일 본회의에 대해선 ‘불가피론’과 ‘야당 책임론’을 내세우면서도 ‘앞으로는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가 금방 바뀔 것 같진 않다. 부동산 다음에는 공수처가 기다린다. 야당은 추천위원 선정에서 1차 방어선을 치고 있다. 여당은 ‘룰’을 일부 개정해 야당을 압박한다. 이해찬 대표가 시한을 제시했지만 통합당이 이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추천위원이 선정되면 오히려 야당은 ‘보장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때는 ‘룰’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 검찰과 법무부의 극한 갈등 등도 따지고 보면 공수처에서 비롯됐다. 이미 적잖은 비용을 치렀는데 그걸 매몰비용으로 돌릴 순 없는 일이다.
부동산 널뛰기·검찰과 힘겨루기 계속된다면…
압도적인 의석수라는 물리적 조건, 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와 여론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핵심 지지층의 존재라는 구조적 조건이 겸비된 이상 국회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흔들린다면? 대선 국면까지 물리적 조건에 변화가 올 가능성은 제로다. 지금으로선 구조적 조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관건은 결국 민심이다. 부동산법이 통과된 만큼 부동산 상황이 좀 안정돼야 한다. 공수처 설치법이 통과된다면 검찰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척결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널뛰기하고 신생 공수처가 검찰과 힘겨루기만 한다면 민심이 요동칠 것이다. 민심이 요동치는데 여당이 수적 우위를 계속 활용한다면 민심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와 대선 후보 경선 국면을 맞게 된다면? 변화가 강제될 수밖에 없다. 구조적 조건에 금이 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레임덕이다. 의석은 많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바로 그 이유로 이번에 여당의 속도전이 벌어진 것이겠지만.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