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자리 중 17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맡게 됐다(상임위원에 대한 교섭단체 대표 추천이 명문화된 정보위원회 위원장은 공석이다). 원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는 동안에도 국회 안팎에선 ‘설마 그렇게 되겠느냐’는 기류가 지배적이었지만 ‘그렇게 됐다’.(제1318호 이슈 ‘국회 법사위 전쟁… 민주당은 이긴 걸까’ 참조)
“과반 정당이 책임 있게 운영”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서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어느 한쪽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발단은 찾아볼 수 있다. 5월26일 여야가 원구성 협상을 시작해 첫 만남을 가진 뒤 김성원 통합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을 전하면서 ‘상임위원장 자리는 11 대 7로 나누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다음 날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21대 국회에선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갖고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라며 “절대 과반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가지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3~20대 국회 운영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그동안 발목잡기와 동물국회, 식물국회가 되는 그릇된 관행을 뿌리 뽑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상임위원장을 누가 갖느냐는 협상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통합당이) 과거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11 대 7로 자기들과 나눌 거라고 얘기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압박용’이겠지만 발언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이 발언은 이후 오히려 민주당 발목을 잡았다.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제1야당이 무책임하다’는 식의 비판이 잘 안 먹혔다. 만약 통합당이 과거처럼 장외로 나가거나 ‘태극기 부대’ 등과 손잡고 이념 공세를 펼친다면 여당이 운신할 폭이 더 넓어졌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추경예산 조속 처리를 연일 강조하며 여당을 압박했고, 결국 (사실상) 단독 원구성이 돼버렸다. 민주당 안팎에선 추경예산 처리 이후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사퇴해서 통합당에 다시 넘기는 시나리오 등이 나오지만 그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입법부 확대의 상징인 상임위 ‘나눠먹기’
그렇다면 ‘뉴노멀’이다.
원구성만 보면 12대 국회로 돌아갔다. 한국 정치는 13대 국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3대 국회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 국정감사가 부활했고 청문회가 도입됐다. 상임위가 활성화됐고 각종 특위와 상임위 위원장 자리는 의석수에 따라 배분됐다. 국회부의장 2석은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이 나눠 맡았다.
정부 법안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도 종종 생겼고,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13대, 14대 국회도 의원 발의 건수는 매우 미미하다.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은 15대 국회부터다. 말이 입법부지 13대 이전에 한국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정부가 만든 법을 통과시키거나 결사 저지하는 곳이었다.
여야 간 대립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X축에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라는 Y축이 교직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지금 우리 국회의 여러 제도와 관행은 이때의 것이 조금씩 수정, 보완돼온 것이다. 13대 이전의 국회는 청와대 뜻을 받들어 정부 정책을 구현하는 여당 의원과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야당 의원이 대립하는 장이었다면, 13대부터 (여야 대립은 기본이지만) 행정부와 입법부의 경합과 견제가 시작됐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자리에 대한 국회의 인준/동의 투표도 확대됐다. 그 변화, 입법부 확대의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상임위 ‘나눠먹기’였다. 그러니 “13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는 건 실은 무서운 이야기다.
그럼에도 막상 현 상황, 여당의 상임위 독식에 여론의 반응은 미미하다. 잘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안 들리지만 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조차 ‘결사 항전’ 분위기는 아니다.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먼저 그간 국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는 점, 둘째는 아무리 그래도 13대 이전으로 국회와 한국 정치가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글을 쓰는 필자조차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가보지 않은 길의 초입에 서 있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
‘미국에서도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다 맡는다. 그것이 책임정치다’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다. 미국 백악관과 여당의 관계와 한국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뉴욕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당·정·청 협의, 백악관 민정수석과 여당 법사위원의 검찰개혁 논의, 현역 여당 의원의 입각 같은 건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의 완벽한 단일대오의 미래
그리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 여권은 더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당청의 일체감이 너무 강하다. 권위주의 시절처럼 청와대가 하드파워(공천권과 정치자금)로 여당을 틀어쥔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파워가 너무 강하다. 높은 대통령 지지도, 강력한 대통령 지지층 앞에서 여당이 매우 약하다.
세고 독하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지만 청와대가 밀었던 국회의장 후보, 당대표 후보, 원내대표 후보가 모두 당내 경선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그 역시 과한 사례였지만 지금 민주당은 정반대다. 거의 완벽한 단일대오다.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라며 비주류로 분류되는 그룹이 있지만, 재선 의원 둘, 전직 의원 둘의 단출한 모임이다.
여야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당의 상임위 독식이 책임정치라는 주장에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 차원에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대신 질문과 우려만 꼬리를 문다. 상임위당 짧게는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진행됐다는 이번 추경예산 심사는 특이한 사례일까? 이 역시 ‘뉴노멀’의 서막일까? 도덕성 문제는 비공개로 한다는 인사청문회, 전부 여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을 텐데 더 내실 있게 진행될까? 앞으로 당정협의가 더 강화돼서 그 결정이 바로 국회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정권이 바뀌면, 다수당이 바뀌어도 이대로 가면 되는 것일까? 지난 30년의 관행이 깨진 판에 새로운 관행이 정착되기까진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갈등이 필요할까?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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