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6월16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선임기자
최근 급박한 남북관계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정치권 최고 이슈는 21대 국회 전반기 원(院) 구성이다. 진도는 절반까지 왔다. 6월18일 현재 국회의장과 여당 몫 부의장이 선출됐고 미래통합당이 참여하지 않은 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등 6개 상임위 위원장이 선출됐다.
이에 통합당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사실상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대로 뇌관은 법사위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통합당에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법사위원장이 바뀔 일은 없다.
법사위는 국회 갈등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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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구성 지연은 말 그대로 다반사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분기점으로 꼽는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단 한 번도 원 구성 법정시한을 지킨 적이 없다. (21대 국회도 법정시한을 넘기고 있다.) 3당 합당 직후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4대 국회에선 무려 125일 지연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직후 81석으로 쪼그라든 민주당이 결사 항전했던 18대 원 구성은 88일 걸렸다. 반면 최악의 국회라 평가받는 20대 국회는 겨우 14일을 기록해 ‘최우등’을 기록 했다.
그런데 원 구성과 관련된 진통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12대 국회까지 ‘원 구성 진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국회의장은 대통령 임명직이나 다름없었고 모든 상임위원장은 여당 몫이었다. 의원들 상임위 배정 역시 여당은 대통령, 야당은 총재의 뜻을 받들어 ‘원내총무’들이 통지하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13대 국회에서 여소야대 4당 체제가 펼쳐지면서 그리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인 16대 국회부터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국회, 여당과 야당 간 다양한 힘겨루기가 진행됐다. 이와 함께 법사위도 ‘괴력’을 발휘하는 뇌관으로 떠올랐다. 물론 제헌 국회 이래 법조인이 다수 포진했고 일반 법률 체계, 자구 심사권을 지닌 법사위가 ‘상원’으로 여겨지긴 했다. 하지만 당시 법사위는 청와대 또는 법조 이너서클과 호흡을 맞추는 곳이었기에 대중적 관심을 끌어모으진 못했다. 법사위가 지금과 같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무엇을 하게 하는 힘이 아니라 무엇을 못하게 하는 힘, 즉 비토권을 가지면서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은 16대 국회 때부터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 펼쳐졌다. 여야가 논의해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증권집단소송법과 기초생활보장법, 행정수도이전특별법 등 주요 법안들이 법사위 앞에서 멈춰섰다. ‘법안 저지’ 외에 ‘현안 질의’도 법사위의 강력한 무기로 등장했다. 법과 관련되지 않는 공무원, 장관이 있을 수 없다. 일이 있으면 부르면 된다. 그러다보니 전쟁터가 됐다. 16대 국회 법사위 위원 사·보임(상임위 위원 교체) 횟수는 217번에 이른다. 첨예한 여야 대치 국면과 현안 발생시 ‘당일치기 저격수’ ‘쟁점별 지원군’ 같은 용병 투입도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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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의 힘이 확인되자 17대부터는 항상 법사위가 원 구성의 쟁점으로 주목받았다. 열린우리당이 법사위를 회수하려 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은 사수에 성공해 ‘4대 개혁 법안’을 중심으로 연일 혈투가 벌어졌다. 여야와 1, 2당이 바뀌어도 18대, 19대에도 ‘관행’은 유지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지만 법사위는 지켜냈다. 4년 동안 법사위로 넘어온 188개 타 상임위 소관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법사위에선 법안 기습상정이 아니라 기습부결이 횡행했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장들이 5차례에 걸쳐 법안 60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고 미디어법 등은 결국 처리됐다. 하지만 법사위원장 명패가 없었다면 야당이 그 정도나마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기톱, ‘빠루’(쇠지렛대), 해머 심지어 최루탄까지 등장한 것이 18대 국회다.)
무엇을 못하게 하는 힘
19대 국회 원 구성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중 원하는 것 하나를 줄 테니 법사위원장을 넘기라고 민주당을 압박했지만 야당은 또 이겼다. 19대 국회부터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을 법사위원장 개인 ‘소신’으로 막아서는 일이 발생했다. 19대 국회 전반기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여야 지도부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 때문에 예산안까지 해를 넘겼다.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20대 국회 임기 중 3년을 법사위에서 활동한 검사 출신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최근 ‘일하는 국회 추진단’ 회의에서 “법사위에 있는 동안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암에 걸리겠다’는 것”이라며 “솔직히 말씀드리면 법사위는 따로 그날 회의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신문에 헤드라인 나온 거 쭉 훑어보고 공격 포인트 잡은 다음 그거 가지고 하루 종일 싸우고, 또 각 장관들 나오면 그저 당리당략에 따라 가지고 정말 하루 종일 싸우다보면 소기의 역할을 다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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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훑어봤지만 지난 20년간 법사위는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법사위를 없애든가 최소한 힘이라도 빼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힘겨루기 끝의 대화와 타협, 합리적 관행의 도출과 적용이 정착되지 못한 것이 문제지 ‘법대로’ ‘잡음 없는 일사천리’로 돌아가는 것이 해법은 아닐 것이다.
의외로 모범 사례는 가까이 있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그랬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패배, 제1야당인 민주당의 선전, 제3세력인 국민의당 약진 등으로 힘의 균형 속에 출발한 20대 국회는 야당이 국회의장을 맡는 대신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뉴노멀’이었다. 그리고 촛불과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 법사위는 대체로 의회 다수의 기류와 민의를 따랐다. 권성동 당시 법사위원장(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으로서 책무를 충실히 다해 민주당 의원들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당의 ‘일’과 야당의 ‘견제’
좋은 관행이 정착될 기회였다. 하지만 20대 국회 법사위는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것은 선거법 패스트트랙,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대표되는 후반기 법사위 모습이다. 냉정히 보면 향후 4년간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지금 여당이 내세우는 ‘일’과 야당이 내세우는 ‘견제’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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