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포인트.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47.74%)이 4월15일 치른 제21대 국회의원선거 때 부산 연제구에서 이주환 미래통합당 당선자(50.95%)에게 패한 득표율 차이(4070표)다. 공교롭게도 4년 전 20대 총선에서 김 의원(51.6%)은 같은 3.21%포인트 득표율 차이(3224표)로 당시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48.39%)을 누르고 당선됐다. 연제구에서 똑같은 득표율 차이로 지난번 선거에선 ‘신승’, 이번 선거에선 ‘석패’한 셈이다. 당론과 다르더라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해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 그의 낙선에 누군가는 ‘지역주의 벽’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지역색 탓할 순 없지만 지역구도 강화 조짐도”
4년 전 부산 연제구에서 민주당 소속 후보가 사상 처음으로 당선된 것은 이변이었다. 39살로 민주당 최연소 당선자였던 김해영 의원은 가난과 부친 병구완 등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흙수저 성공 신화’를 보여준 청년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4년이 흐른 뒤 연제구민들의 마음은 바뀌었다.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겨레21>은 5월6일 오전 민주당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막 마치고 돌아온 김 의원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후보인 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부산 지역구에서 한참 낙선인사를 다니다 서울에 온 그는 자연스레 몸을 낮췄다. 하지만 애초 쉽지 않은 선거였다. 민주당 소속인 김 의원이 부산 연제의 현역 의원이고 2018년 지방선거 때 부산의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회에서 모두 민주당이 압승해 부산이나 연제구가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이는 착시현상이다. 부산은 여전히 민주당에 온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 곳이다. 시청과 시의회, 부산지방경찰청이 모여 있는 부산의 행정중심지 연제구 역시 민주당에 만만치 않은 곳이다. 연제구는 1995년 동래구에서 분구된 이후 예외 없이 미래통합당 계열 보수정당 국회의원 후보만 당선됐다. 2010년,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구청장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 부산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이 6명이 된 것은 말 그대로 이변이었다. 부산 민심이 바뀌었다고 판단한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6+알파(α)’ 당선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토막인 3석에 불과했다.
기대에 못 미친 총선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 의원은 “낙선자 입장에서 지역색을 탓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지역구도가 강화될 조짐이 없지 않다”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총선 결과에 따라온 “주류가 교체됐다” “지역주의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등의 분석과 다른 시각이다. 현장에서 선거라는 전쟁을 치른 정치인은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지역구도 강화 조짐은 의석수(6석→3석)가 말해주는 거라고 본다. 물론 민주당 후보 18명의 평균 득표율이 44%로 작지 않아 선전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라는 측면도 함께 있다.”(김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부산에서도 제3당인 국민의당 바람이 불어 표가 분산됐기에 20대 와 21대 총선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산이 과거처럼 미래통합당 손을 무조건 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직 평형을 찾은 건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자 비중이 높은 부산에서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점, 민주당 압승 예상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막판에 작동한 점, 2018년 지방선거 때 지방권력을 민주당에 맡겼음에도 체감할 변화가 부족했던 점….”
지역에 밀착해 조직 만들려
주요 낙선 요인 가운데 김 의원이 꼽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이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혜광고 출신인 조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민주당은 지역 경기 악화로 싸늘해진 부산 민심의 반전 카드가 되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공정성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며 여러 여론조사에서 되레 부산의 민주당 지지도는 하락세를 탔다. 선거를 앞두고 더 차갑게 식어버린 부산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려 민주당 부산시당은 온힘을 쏟았다. 이에 대한 생각을 김 의원에게 물었지만 “민주당 일원으로서 말하기 어렵다”는 조심스러운 답변만 돌아왔다.
물론 낙선의 최종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김 의원은 패배 원인을 곱씹는 중이다.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해 지역에서 조직을 만드는 일을 꺼렸는데, 연제구는 부산에서도 보수세가 있는 지역이니만큼 조직을 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부산에서 당선된 우리 당 의원 세 분(박재호·전재수·최인호)은 모두 오랜 기간 지역에서 밀착한 분들이어서 부산 경제의 어려움,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 등 세게 불어닥친 미래통합당의 바람에도 버텨낸 걸로 본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지역 밀착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옛날 방식’이라는 그의 말 속에 ‘흙수저·청년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 했던 지난 4년의 궤적이 묻어 있다. 그는 주요 이슈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향해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인사청문회에서 진실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 지난 1월 지역구 세습 논란이 일었던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석균씨에 대해 “지역구 세습을 넘어 전체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 2월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 논란과 관련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 등이 대표 사례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누군가에게 찬사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았던 그는 당 안팎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쓴소리를 계속했다.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되도록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당에서 청년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정무적인 고려보다는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의견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리 당 권리당원이 80만 명인데, 예민한 주제를 두고는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는 20~30% 당원이 존재한다. 이 의견을 대변할 당 소속 의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 의원의 정치 행보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고모집에서 자란 그는 가출과 유급으로 고등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고3 때는 직업반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석 달여 앞두고 친구의 권유로 학원에서 수능특강반을 수강했다. “운이 좋아 실력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서” 부산대 법대에 들어갔다.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은 이때 찾아왔다. “대학 졸업 무렵 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을 받아 5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내가 보호자로서 전담해 돌봤다. 돌봄과 사법시험 준비,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아버지는 투병 중에도 ‘자랑스러운 법대생’ 큰아들의 사법시험 합격증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두 달여 만에 사법시험 1차에 붙었고, 이듬해 2차에도 바로 합격해 아버지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합격증을 산소에 놓아드렸다. “그때 ‘어려울 때 마음이 꺾이지 않고, 상황이 좋을 때 들뜨는 마음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는 인생관이 확립됐던 거 같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고.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도 좋아하게 됐다.”
주요 현안에 분명한 의견 밝히는 게 책무
김 의원은 2014년 말 민주당 연제구 지역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곳은 험지라는 이유로 1년8개월 동안 지역위원장이 공석으로 있던 ‘사고 지역위원회’였다. 당시 정치를 시작한 이유를 김 의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이 이후 한 인간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기성세대로서 뭔가 개선책을 마련해야 했다.”
김 의원이 정치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결단했다는 ‘공정’ ‘정의’의 가치는 2018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할 때 그의 연설로 전당대회장에서 울려퍼졌다. “저는 이런 세상을 꿈꿉니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소득으로 대물림되지 않는 세상, 청년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세상, 성실하게 땀 흘린 사람이 보상받는 세상. 제가 최고위원이 되어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조국 전 장관, 비례위성정당 등을 놓고 민주당이 내린 선택은 애초부터 그의 생각과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내 청년정책 컨트롤타워인 청년미래연석회의 공동의장이다. 낙선했지만 민주당 ‘청년정치’는 이어진다. 20대 국회에서 40살 미만 청년 국회의원이 그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는데 21대 국회에선 13명으로 늘었다. 김 의원은 전용기 더불어시민당 당선자 등 청년정치인들의 롤모델로 많이 꼽힌다. 그가 그리는 청년정치란 무엇일까. “청년정치의 핵심은 우리 사회 기득권에 비판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21대 국회에서 활동할 청년정치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국회의원은 초선이든 다선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 국민의 대표라는 점을 잊지 말아달라. 그래서 중요한 국가 현안에 대해 분명하게 의견을 밝히는 게 국회의원의 책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적으로’ 자기 이름을 걸고 일해야 한다는 점 또한 기억해주면 좋겠다.”
김 의원은 5월29일로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원외위원장으로 지내야 한다. 장기 계획을 세웠을까. “민주당이 부산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도록 역할을 하면서, 정치 콘텐츠도 채워나가겠다. 변호사로서 공익 활동도 하고, 어린 세 아이와 시간도 좀더 많이 보내고 싶다.”
“세 아이와 좀더 많은 시간 보내고파”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면 김 의원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고 했다. “5년 뒤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과 관련한 공교육 내실화, 대입 정시 확대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 2차 공공기관 이전과 재정 분권화 관련 국가균형발전 도모….” 그의 비전이 쏟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 달라져야지요”. 국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는 변화를 다짐했다. 청년정치인 김해영은 그만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
글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ryuw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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