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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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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동지 문재인의 의뢰인

4·3 창원 보궐선거서 승리한 여영국이 국회 입성하던 날 동행해보니
등록 2019-04-13 10:53 수정 2020-05-03 04:29

4월9일 오후 3시께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510호가 열렸다. ‘노회찬’이라는 문패를 ‘여영국’으로 바꿔 단 뒤 새 주인을 처음 맞은 날이다. 사무실은 휑했다. 노회찬 의원실 관계자가 미처 회수하지 못해 남겨진 듯 ‘의원실 행사 사용경비 내역’ ‘보좌관 임금 지급 현황’ 등의 자료에 더께가 묻어났다.

당선 일주일, 보좌진 없이 창원 ~ 국회 오가

“들어갑니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사진)이 국회 입성을 알린 지 엿새 만이다. 여 의원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시절부터 함께한 30년 동지 심상정 의원과 함께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사진을 들고 들어섰다. 당직자 네댓 명이 박수를 쳤다. 여 의원이 사진을 탁자 옆에 내려놓고 쑥스러운 듯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은 이날 여 의원의 일정에 함께했다. 주말 내내 경남 창원 성산 지역구 주민들에게 당선사례를 하고 의정활동을 위해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게 아침 8시였다. 여 의원은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마자 흡연실부터 찾았다. 끝이 뭉개진 담배에 급하게 불을 붙였다. 서울과 창원을 오가는 일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금귀월래’(금요일에 지역구로 내려가고 월요일에는 의정활동을 위해 국회로 복귀하는 것) 시작인가.

창원이 지금 많이 어렵다. 산업단지 노동자나 자영업 하는 시민들 모두 힘들다. 권영길·노회찬이라는 진보정치인을 당선시킨 자부심도 있지만, 의원들을 지역에서 자주 못 보는 아쉬움이 컸다. ‘테레비 정치’ 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되도록 창원에 자주 내려가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의원을 수행할 보좌진을 꾸리지 못했다. 이동 차량도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정을 챙기는 문제부터 행정 업무까지 어수선해 보였다.

0.54%포인트(504표) 차이가 말하듯, 4·3 보궐선거는 선거기간 내내 쉽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정권 심판’ 프레임으로 승부를 걸어 판을 키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한 손에 색깔론, 다른 손에는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쥐고 맹공을 퍼부었다. 황 대표는 선거기간 내내 “대통령이 신경 쓸 곳은 개성공단이 아니라 창원공단”이라고 외쳤다(강기윤 자유한국당 후보 펼침막 구호이기도 했다). 창원 경제의 어려움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지역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논리까지 동원했다. 창원공단 내 대기업인 두산중공업의 주력 업종이 원전 설비라는 이유만으로도 자유한국당에는 날 선 공격의 소재가 됐다. 여기에 황 대표는 ‘강찍황’(강기윤을 찍으면 황교안은 대통령이 된다)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단일화를 하면서 여영국 후보가 사실상 여권 후보라는 점도 주효한 듯했다.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보수 표심의 결집이 눈에 띄었다. 황 대표가 총리이던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창원공단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여 후보의 말은 좀처럼 먹히지 않는 듯 보였다.

황교안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서 선거가 어렵지는 않았나.

선거는 양면적이다. 황 대표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됐고, 저쪽 (강기윤) 후보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 지역 일꾼을 원하는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황 대표가 중심이고 후보는 수행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이라면 크게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선거 후반으로 가면서 청와대 대변인 논란, 장관 후보 낙마 등 여권의 악재가 겹치면서 본격화됐다. 막판에 분위기가 뒤집히면서 100표 남짓 박빙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자와 의원을 싣고 공항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이동하는 승합차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아침 8시30분이 넘어서면서 정체는 절정에 이르렀다. 급출발, 급정거를 반복하는 운전자에게 여 의원은 연신 “괜찮다”며 웃었다. 1년 임기도 남지 않은 초선 의원, 그것도 원내 의석 6석의 진보정당 구성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당장 시민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일부터 내년 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상대는 절치부심을 할 텐데.

먹고사는 문제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니 단박에 활성화는 어렵더라도 창원을 산업 위기 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해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1년 동안 모색해보겠다. 당장 숨통이 트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공약(창원 상생화폐, 특별지역 지정 등)을 이행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노회찬 의원이 있을 때부터 제기된 문제고, 내가 도의원일 때부터 숙제였다. 그 연장선상이다.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 준비 기간이 꽤 오래됐던 만큼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 이력만 아니라 경남도의원으로서도 강성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방식으로 여의도 정치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난 정의당 후보이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해 치른 선거였다. 그게 아니라도 집권여당으로서 창원의 현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당장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해관계는 일치할 것으로 본다.

국회로 향하던 차는 한강변 올림픽도로에서 꽉 막힌 채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화제는 돌고 돌아 다시 노회찬이라는 이름에 닿았다.

노회찬 이름이 나올 때마다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정치인 개인으로서도 노회찬은 되도록 빨리 넘어서야 하지 않나.

(한참 뜸 들이다) 노회찬요. 하…, 노회찬을 넘어선다, 라….

보궐선거 일주일 만에 묻기에는 때가 일렀을까. 지역을 비롯해 정국 현안에도 막힘이 없던 그가 노회찬에 대한 질문에는 더듬거렸다.


선거기간 내내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눈물을 보였다. 원래 잘 우나.

잘 운다. 특히 그 이름은 듣기만 해도 이상하게 말을 잇지 못하겠어서. 선거 막판에는 언급을 잘 안 하려고 했다.

이유가 있나.

내가 의원님을 (창원으로) 모셔왔기 때문에…, 원죄 같은….

여 의원은 여전히 마음의 빚을 떨치지 못한 듯했다. 당시 정의당 경남도당위원장이던 여 의원이 노 전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는 2016년 초. 같은 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노 전 의원은 서울 노원병 지역에 이미 선거 준비팀을 꾸린 상태였다.

4월9일 열린 정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여영국 의원의 모습.

4월9일 열린 정의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여영국 의원의 모습.

변호사 노무현 집에서 엠티하던 노동자 그때 왜 노회찬이 필요했나.

창원은 진보 진영의 심장 같은 곳이다. 강기윤 후보에게 19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로 진보 벨트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정의당에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그 자리를 강 후보에게 뺏길 가능성도 컸다. 딱 노회찬뿐이었다. 노 의원에게도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창원은 진보 진영에 특별한 곳이었다. ‘전설처럼 남은 1987년 영남 지역 노동자대투쟁을 이끈 조직은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이다. 마창노련은 전노협, 민주노총으로 이어진다. 특히 창원 성산구는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인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를 17~18대 의원으로 연거푸 당선시킨 곳이기도 하다.

“창원으로 가겠습니다.”

2016년 1월30일 오후 한 통의 문자로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 의원은 노 전 의원이 창원 출마를 결심한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딱 그 한마디만 보냈더라고요. 보이는 것이랑 다르게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었어요.”

여영국이 누구길래 노 전 의원은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방향타를 급히 되돌렸을까. 자신을 설득하러 만난 여영국에게서 노회찬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1983년 열아홉 나이로 통일중공업에 입사한 뒤 36년 동안 창원을 떠나지 않은 지역 활동가, 40대가 돼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하며 바닥부터 표를 다진 지역 정치인의 진심이었을까.

여영국의 이력에 새겨진 이름에는 노회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 ‘문 형’ 이렇게 불렀죠. 나이는 열 살도 더 많았지만.”

입사한 지 다섯 달 만에 근무 중 조퇴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한직 부서로 쫓겨났다. 거기서 30대의 문성현(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문성현은 이른바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학력을 속여 위장 취업을 한 학생운동 출신이었다. 조합 사무실에 ‘놀러 다니던’ 열아홉 청년은 그로부터 3년 만인 1986년, 동료 둘과 함께 공장 식당에서 노조활동을 보장하라는 유인물을 돌리다 해고당했다. 거리에 나앉은 그의 복직 소송을 맡겠다며 나타난 인연이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노무현·문재인 변호사였다(여 의원은 “변호의 주무를 맡은 것은 문 변호사였다”고 기억했다). 두 변호사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구속에서 풀려나고 동료들이랑 엠티를 갔는데 거기가 노무현 대통령(당시 변호사)이 살던 부산 남천동 아파트였다”는 대목에서 여 의원의 목소리는 스무 살 청년으로 돌아간 듯 들떴다.

1시간여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 국회 본청 문 앞에서 주춤하는 여 의원에게 문을 지키던 국회 경위가 “의원님은 그냥 들어가셔도 된다”며 자동문을 열었다. 어색한 듯 백팩을 고쳐 멨다. 여 의원이 계단을 뛰듯 올라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소하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 등이 있는 의원단 회의가 열리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사이 기자는 여 의원과 전노협을 함께했던 정의당 관계자를 만났다. 그 또한 노동운동에 이어 진보정당에 몸담은 인물이다. 그는 “(여 의원은) 노조위원장 등 흔한 ‘장’ 자리 하나 없이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명망가로서의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며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옮아간 심상정이나 문성현과 달리 평범한 노동자로 출발해 노동운동을 거쳐 정치인으로 성장한 특이한 케이스다. 그래서 특유의 뚝심이 있다”고 했다

실제 그 뚝심을 확인할 사례도 있다. 여 의원은 경남도의원 시절 도의회에서 진주의료원 폐지, 무상급식 중단 등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추진한 현안마다 설전을 벌였다. 2017년 홍준표 지사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현장을 지나치던 홍 지사가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그게 되는 게 아니야. 한 2년간 단식해봐라”며 독설을 내뱉고, 여 의원은 그 자리에서 “쓰레기 발언을 책임지라”며 맞서는 장면은 영상으로 회자됐다(여 의원은 ‘홍준표’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다음 질문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에 대한 얘기를 쏟아냈다).

임기 1년의 그 앞에 놓인 숙제들

인터뷰 내내 노회찬으로 시작되는 여 의원의 이야기는 문성현, 심상정, 노무현, 문재인, 홍준표를 돌아 다시 노회찬으로 돌아왔다. 인터뷰 도중, 민주평화당이 정의당과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 알려졌다.

여 의원이 당선 뒤 꼭 해내고 싶다던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제도 개혁도, 이를 위한 패스트트랙도, 패스트트랙에 함께 실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도 모두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한계라기보다는 원내 소수 정당이 지금껏 마주해온 현실의 벽이다. 그리고 모두 노회찬 전 의원이 풀다 떠난 숙제들이기도 하다.

오전 9시30분 여 의원을 포함해 여섯 명의 의원단이 앉은 회의실 문이 열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정미 당대표로 시작해 심상정 의원을 돌아 그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그의 발언이 시작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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