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자주 나오는 말 가운데 ‘2년차 징크스’ ‘소포모어(sophomore·대학교 2년차) 징크스’라는 게 있다. 프로 생활 첫해 뛰어난 성적을 올린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들이 이듬해 성적이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를 일컫는다. 징크스가 실제로 있는지, 통계적으로 증명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렇다 해도 2년차 징크스를 보이는 선수의 성적 하락 원인 분석은 대체로 다음의 의견들로 모인다.
①상대 팀의 집중 견제를 당한다. ②자신감이 넘치다보니 실수가 잦다. ③주변의 높아진 기대치에 부담을 느낀다. ④선수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며 약점이 노출된다.
성적 하락의 정도나 슬럼프를 겪는 기간은 선수마다 다르다. 하지만 ‘2년차 징크스’를 뒤집어보면 첫해 성적이 이례적으로 아주 뛰어났다는 것이고, 실제 선수의 능력은 2년차에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2년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슬럼프에서 벗어나 제 실력을 보이고 앞으로 선수 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년 임기 대통령제에서 피해갈 수 없는 ‘숙명’</font></font>문재인 대통령은 1월8일 임종석 비서실장 후임으로 노영민 주중국 대사를 임명하는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를 통해 ‘2기 청와대’ 진용을 새롭게 짰다. 1월10일에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3년차 국정 방향을 밝혔다. ‘촛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2017년 5월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초반 1년 국민의 기대대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소통’으로 대표되는 국정 운영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라 안팎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2년차 징크스’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2019년이 되자마자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고, 국정 방향을 제시하며 신발 끈을 고쳐 맸다. 문 대통령의 ‘2년차 징크스’ 극복 구상은 무엇일까.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은 집권 3년차 전후에 징크스를 겪었다. 권력형 스캔들이나 대형 사고가 터지고 이에 대한 위기 대응 능력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실망한 지지층의 이탈이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사고로 혼란을 겪었고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가 잇달아 터지며 레임덕이 앞당겨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과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대연정 추진 등으로 지지율이 급속도로 하락했고, 이명박 정부는 3년차에 민간인 불법 사찰 논란으로 리더십의 위기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3년차를 앞둔 2014년 12월 비선 실세인 ‘십상시’ 실체가 담긴 정윤회 문건 파동 여파가 이어지며 정권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피해갈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졌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2007년 4월29일 공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발의를 위한 국회 연설문’(야당 등의 반발로 실제 연설이 이뤄지지 못함)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의 경우에도 ‘임기 6년차의 저주’라는 연구 논문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대통령제 아래서는 레임덕 문제가 책임정치의 장애 사유가 되는 것을 회피하기 어려운 일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리의 경우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면 ‘임기 3년차의 저주’라고 해야 할 형편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핵심 측근을 신임 비서실장으로</font></font>집권 1년7개월이 지난 문재인 정부의 미래는 결국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고 이전 정부와 달리 ‘3년차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데 달려 있다. 취임 1년 동안 80%대를 넘나들던 국정 지지율은 지난해 여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현재까지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들이 징크스를 겪는 과정처럼 경제지표 악화에 따른 야당과 보수 언론의 집중 공세와 견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갈등으로 혼선을 빚었고 이에 대한 대처도 미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자영업자와 중도층의 이탈로 이어졌다. 김태우 검찰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연이은 ‘폭로’는 그 내용의 진위를 떠나 청와대의 매끄럽지 못한 대응으로 정치 쟁점화됐다. 청와대와 여당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폭로자’들의 주장을 ‘침소봉대’했다고 주장하지만, 6급(김태우)·5급(신재민) 공무원들에게 청와대가 휘둘리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보통 슬럼프에 빠진 스포츠 선수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처 방안을 찾는다. 야구 선수를 예로 들면 자신의 타격 자세를 180도 뜯어고치거나, 자신이 좋았던 시기의 타격 자세를 연구하며 단점을 보완한다. 투수의 경우 새로운 구종을 개발하거나, 자신의 주무기를 좀더 가다듬는 데 집중한다.
신년 초 문 대통령이 뽑아 든 슬럼프 대처 방식은 180도 변화보다 자신의 주무기를 좀더 가다듬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 힘을 쏟는 방안인 것으로 보인다. 2기 청와대 참모진을 정치권과 언론은 ‘친문 체제 강화’로 평가한다.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노 실장은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을 했고, 2017년 대선 캠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비서실장 교체는 국정 운영 방향의 성격을 규정짓는 대통령의 ‘메시지’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청와대를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 임기는 4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는 조각과 인사 등 국정 수행의 준비와 시작을 하는 기간, 2기는 1기의 기반 위에 실제 일에 집중하는 기간, 3기는 업무와 레임덕에 대한 투쟁을 병행하는 시기, 4기는 정권 재창출 여부와 퇴임 후를 준비하는 시기다”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는 시기마다 색깔이 다른 인사를 발탁해왔다. 참여정부의 경우 초대 비서실장은 당·정·청 경험이 풍부한 문희상 현 국회의장이었고, 2기에 김우식 당시 연세대 총장을 발탁했다. 당시 김 총장의 기용으로 진보 대통령-보수 비서실장이란 조합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보수층과 소통해 외연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평가받았다.
반면 문 대통령은 핵심 측근은 아니었지만 ‘젊음’과 ‘소통’ 이미지로 상징되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중용했다가 2기에 노 비서실장을 선택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인사를 전면 배치해 청와대 기강을 잡고, 국정 운영 성과를 내는 데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소통이 더 안 될 것이다”라는 차가운 반응을 내놨지만, 문 대통령은 1월10일 기자회견에서 “정무적 기능을 강화해 여당은 물론 야당과의 대화도 활발하게 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3선 의원 출신인 노 비서실장과 역시 3선 출신 강기정 정무수석을 통해 국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제’ 35번, ‘성장’ 29번, ‘혁신’ 21번 </font></font>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청와대 2기 인사에 대해 “친정 체제 강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정 개혁 고삐를 바짝 조이겠다는 것이고, 집권 3년차에 공직 기강을 다잡고 여권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뜻이 통하는 사람을 배치한 것 같다”며 “야당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줄 수 있지만 새로운 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은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 연설에서도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돼온 ‘경제’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의 변화는 분명 두려운 일이고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라며 정책 기조의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지만, 연설에서 ‘경제’를 35번, ‘성장’을 29번, ‘혁신’을 21번 언급했다.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을 이뤄내겠다는 의중이 연설 곳곳에서 강조됐다. 반면 지난해 초까지 보수층의 반발이 나왔던 ‘건국 100년’이란 표현 대신 올해 연설에선 “올해는 3·1 독립운동, 임시정부수립 100년이 되는 해”라는 표현을 쓰며 이념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피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고통 호소, 일자리·고용 지표 악화에 따른 여론 악화에 대해서도 반박보다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1년 전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염려들이 있는데, 일시적으로 일부 한계기업은 고용을 줄일 수 있으나, 정착되면 경제가 살아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라며 보수 야당과 재계의 주장을 반박했던 문 대통령은 올해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용지표가 양적인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통 주력 제조업의 부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배의 개선도 체감되고 있지 않습니다. (중략)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 낮아졌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경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기존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 정책 기조를 이어가되 낮은 자세를 보이며 국민에게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윤태곤 실장은 “외교·안보·경제 등의 분야에서는 기존 색깔을 강화하기보다는 국민에게 겸손한 가이던스(지도·안내)를 보였고, 정치 현안이나 김태우·신재민 논란에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자회견 “국민에게 겸손, 기존 입장 되풀이” </font></font>문재인 정부는 2019년에도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 평화 교착 국면을 풀어야 하고, 민생 경제 분야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야당에 막혀 지지부진한 사법·경제 개혁 입법들도 통과시켜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진짜 실력이 가감 없이 드러날 것이다. 결국 초심을 꾸준히 유지하며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차근차근 내는 데 성패가 달려 있다.
미국 유명한 야구 심리학자인 고 하비 도프먼 박사는 10여 년 전 부진에 빠졌던 당시 메이저리거 박찬호 투수에게 “자신 있는 공을 던져 홈런을 맞더라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야구와 정치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2년차 징크스를 겪는 정권은 새겨들어야 할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추어탕 미꾸라지, 소금에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
윤석열 ‘신공’ [한겨레 그림판]
이준석 “윤, 특정 시장 공천 요구…웃겨 말도 안 나오는 것도 많아”
대법, 윤미향 유죄 확정…정의연 후원금 횡령
간장에 졸이거나 기름에 굽거나…‘하늘이 내린’ 식재료 [ESC]
한동훈 “민주, 이재명 당선무효형 땐 ‘당 공중분해’ 자해 마케팅”
이재명, 다가온 운명의 날…‘선거법 위반’ 1심 선고 쟁점은
수능 출제위원장 “준킬러 문항도 충분히 걸러…한국사 평이”
2024년 여대가 필요한 이유…“성평등 이뤄지면 소멸하리라”
구미 스토킹 살인범은 34살 서동하…어머니 앞에서 딸 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