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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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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로 표사려는 정치 마케팅

6·3지방선거 혐오표현들…

세월호 공원은 ‘납골당’ 프레임, 신지예 후보는 벽보 27건 훼손당해
등록 2018-06-12 14:24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6월5일 경기도 안산시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악용하지 말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6월5일 경기도 안산시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악용하지 말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는 갈등의 경연장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저서 에서 갈등을 나쁜 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민주주의 엔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갈등의 순기능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이를 ‘갈등의 사회화’라고 했는데 그 중심에 정당과 정치인이 있다. “정당은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는 게 샤츠슈나이더의 생각이다.

빨갱이, 여성, 세월호… ‘혐오의 정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정당과 정치가 사회적 약자,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 기반을 둔 ‘혐오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세력이 ‘빨갱이’ ‘전라도’로 대표되는 색깔론과 지역주의를 활용해 선거를 지배했다면, 최근 몇 년 사이 ‘동성애’와 ‘여성’에 이어 ‘세월호’까지 혐오 정치의 먹잇감이 되는 모습이다. 이 흐름은 지난해 대선에 이어 6·13 지방선거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6월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청 현관 앞,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유족 50여 명이 모였다. ‘준영 아빠’ 오홍진씨와 ‘윤희 엄마’ 김순길씨가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어른이어서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부끄러운 인사를 또 하는 일이 없기 위해서라도.” 회견문 마지막 구절에서 두 사람의 목이 메었다. 뒷줄에 서 있던 한 엄마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가능하면 문 닫고 집 안에서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네마다 누비는 유세차에서 희생자를 모독하고, 피해자와 안산 시민들을 갈라치는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아무리 문을 꼭꼭 닫아도 문틈으로 들어와 우리들 가슴속에 처박히고 있습니다. ‘열흘만 기다리면 되겠지, 일주일만 기다리면 되겠지’ 생각하더라도 그런 소리 들으면 가슴 찢어지고 피눈물이 나, 이렇게라도 나와서 호소하고… 세월호 참사를 선거에 악용하지 마십시오.”(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이들이 또다시 거리에 나온 이유는 안산시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일부 후보들이 ‘4·16생명안전공원(세월호 추모공원) 화랑유원지 백지화’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며 쟁점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추모공원은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다. 그런데 부지 선정 문제로 지난 2년 동안 안산 시민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맞섰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안산시민연대는 “희생된 학생들이 자라고 뛰어놀던 곳인 화랑유원지(단원구 초지동)에 추모공원과 봉안 시설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사회단체들이 “도심 한복판의 시민 놀이·휴식 공간에 추모 시설은 안 된다. 다른 지역으로 하자”고 반발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어른이어서 미안해”

갈등은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종길 안산시장이 추모공원을 화랑유원지로 결정하겠다고 최종적으로 발표하며 폭발했다. 화랑유원지지킴이, 안산시아파트연합회 등이 연일 ‘납골당 반대’ 집회를 열었고,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밀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시의원, 구의원들이 앞다투어 지방선거 공약에 ‘납골당 백지화’ 구호를 내세웠다. 이민근 자유한국당 시장 후보는 ‘안산을 살려주세요’라는 구호 아래 펼침막과 선거공보물 등에 “화랑유원지에 봉안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안산을 우울한 도시로 영원히 못 박는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힘든 안산시 자살률 통계를 인용하기도 했다. 박주원 바른미래당 시장 후보 역시 ‘납골당 전면 백지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혜경 바른미래당 안산시의원 후보는 선거공보물에 ‘엄마의 마음과 눈’이라는 구호를 걸고 “집 안의 강아지가 죽어도 마당에는 묻지 않잖아요?”라며 세월호 희생자를 ‘강아지’에 비유해 논란이 됐다.

실제로 유가족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단원구 고잔동·와동·초지동 등을 둘러보니 “납골당 전면 백지화” 문구가 담긴 펼침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경기도지사 후보도 “화랑유원지를 시민의 품으로”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이후 남 후보는 펼침막 문구가 논란이 되자 "저는 지역 내 쟁점 사항은 항상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보다,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을 줄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4년간 노력했다. 해당 현수막은 이러한 취지에서 '시민의 품으로'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펼침막을 교체했다. 화랑유원지를 찬성하는 윤화섭 시장 후보 등 민주당 후보들도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4·16생명안전공원 시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는 문구의 펼침막을 걸었다.

‘납골당 프레임’은 62만㎡(17만 평) 규모의 화랑유원지 전체 면적 3.7%인 2만3천㎡(7천 평)에 추모공원을 만들고, 지하에 전체 면적의 0.1%인 660㎡(200평) 봉안 시설을 마련한다는 ‘팩트’를 지우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화랑유원지를 독점한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는 이유다. 현재 유가족들은 날마다 거리로 나와 ‘진실 알리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와동공원에서 만난 오아무개(21)씨는 “찬반양론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선거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했다. 단원고 인근 학교를 졸업한 그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동갑인 1997년생이다. 화랑유원지가 속한 선거구에 출마한 김병철 정의당 시의원 후보는 “추모 시설에 정서적 거부감을 가진 분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추모하고 기릴지 논의하지 않고 선거만을 위해 ‘납골당’ ‘강아지’ 등 자극적 표현을 쓰는 것은 참담하다”고 꼬집었다.

고삐 풀린 혐오 정치, 민주당 후보도 동참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5월30일 한국방송(KBS) 후보자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5월30일 한국방송(KBS) 후보자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대선에서 불거졌던 성소수자 혐오는 이번 선거에서 더욱 노골화됐다. 대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얼마나 이 나라에 퍼져 있는지 아느냐. 동성애를 반대하냐”라고 한 데 이어, 이번에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5월30일 한국방송(KBS)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인정할 경우 에이즈는 어떻게 막겠으며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발언했다. 그는 5월31일 유세에선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물러가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같은 당 이인제 충남도지사 후보는 “동성연애를 인권으로 포장하고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이는 최근 충청남도와 계룡시, 증평군 의회에서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인권 조례)가 폐지되는 등 전국적으로 부는 인권 조례 폐지 바람과 연결돼 있다. 지역의 개신교 단체가 의회를 압박하고, ‘교회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기존에 큰 문제 없이 시행되던 인권 조례를 흔들며 지방선거에서 쟁점화하는 것이다. 기초의회 인권 조례에는 주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전과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의 기본 원칙이 담겼지만, 개신교가 이를 문제 삼으며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다.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국민연합’이란 단체는 각 후보에게 질의서를 보내 회신을 받고, 그동안의 발언과 행위 등을 종합해 ‘동성애 옹호·반대 지수’를 매겨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네트워크)는 유권자들에게 지방선거 혐오 표현을 신고받았다. 6월8일 현재 47건이 접수됐다. 주로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며 인권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최동용 자유한국당 춘천시장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신·구약을 통해서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춘천 성시화를 목표로 기도하시는 성도님들께서 동성애 합법화 반대에 앞장서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최성권 자유한국당 경기도의원 후보(고양 일산동구)는 선거공보물에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양심적 병역기피자,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군대를 안 간 자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는 내용을 넣었다. 박준배 민주당 김제시장 후보는 선거공보물 ‘건강한 도시!’라는 항목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동성애 반대”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혐오 바이러스’는 특정 후보자에 대한 공격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를 구호로 내세운 신지예 녹색당 후보의 선거 벽보는 사라지거나, 얼굴의 특정 부위를 담뱃불로 지지는 방식으로 훼손된 경우가 27건(6월8일 기준) 발생했다. 신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를 자임한 여성 정치인에 대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했다.

네트워크는 “후보자들은 혐오 표현과 혐오 선동을 중단하고 선관위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도 공약이다. 정당의 정책이나 공약을 제한할 수는 없다. 선거법에서 관여할 수 있는 조항도 없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는 선거를 통해 여러 의견이 자유롭게 경쟁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선거에서 정치인의 발언을 규제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러 갈등이 표출되는 선거에서 이를 정부가 규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혐오 표현, 규제 논의 시작해야

하지만 인권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과 특정 집단을 공론장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발언을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인정해야 할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민주주의는 한 사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며, 정치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특정 성적 지향 또는 특정 종교를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의 일부로 하는 사람들을 배제할 것을 선동하는 주장들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혐오 표현 연구를 담은 저서 를 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누군가 어떤 집단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공론장에서 이야기될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정치인의 혐오 발언이 더 위험하다고 보고 법으로 규제하는 흐름이다. 홍 교수는 “현재 논의 수준에서 한국 사회는 혐오 발언을 법으로 규제하는 게 쉽지 않다. 공적 차원에서 혐오 표현의 기준과 규제가 필요하지 않은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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