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봄날 밤. 출범 2개월째인 참여정부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 정보 쪽으로부터 “전방 부대 장교들이 모여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한다”는 첩보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혹시 이들이 쿠데타 모의를 하는 게 아니냐”고 바짝 긴장했다. 청와대는 1% 가능성에 대비해, 기무사령부에 전방 부대 동향을 직접 파악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기무사의 핵심 임무는 ‘대전복(對顚覆) 임무’(쿠데타 방지)다. 평소 기무사는 쿠데타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해 주요 군 지휘관들의 공식·비공식 접촉 인물과 동향을 꼼꼼하게 살핀다. 기무사의 예방 조처에도 불구하고 쿠데타가 일어나면 수도권에 주둔한 수도방위사령부나 특수전사령부 등이 쿠데타 진압에 나선다.
봄날의 쿠데타 소동
기무사가 급히 확인해보니, 전방 부대의 영관급 장교 몇몇이 저녁에 식당에 모여 술자리를 벌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식당 옆자리에 있던 한 경찰관이 대화 내용을 우연히 듣고 경찰조직에 정보보고를 했다. 보고 내용이 그날 밤 청와대 국정상황실까지 올라온 것이다.
2003년 4월 봄날 밤의 쿠데타 소동은 부적절한 술자리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쿠데타 기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는, 당시 술자리에 참석한 장교들이 군내 사조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데타를 실행하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쿠데타 선례에서 알 수 있듯, 공식 지휘계통을 어긴 채 주도면밀하게 쿠데타를 기획하고 실행할 만한 ‘하나회’ 같은 사조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박정희·전두환 등은 사조직을 통해 자금 마련과 병력 동원 등 역할을 나눠 쿠데타를 감행했다.
이날 쿠데타 해프닝은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극심했던 청와대와 군부의 상호 불신 예고편 격이었다. 군부는 자주국방을 외치던 노무현 대통령이 안보의 근간인 한-미 동맹을 흔든다고 의심했고, 청와대는 군부의 지나친 대미 의존적 자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참여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와 군부는 이라크 파병, 개념계획 5029, 주한 미군기지 이전, 북방한계선(NLL), 전시작전권 환수 등 대부분의 이슈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군은 겉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복종하는 시늉을 했지만, 속으론 노 대통령을 통수권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며 ‘면종복배’하는 군을 지켜보고 겪었다.
5월 말 국방부는 “미국과 비공개하기로 했다”는 이유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발사대 4기의 추가 반입을 청와대 보고에서 뺐다. 보고 누락을 두고 미국과의 약속만 중요하고 국민이나 국민이 뽑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안중에도 없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군대가 대한민국 군대 맞느냐”는 개탄이 쏟아졌다.
군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짐작건대, 군은 최근 사드 보고 누락 문제에 대해 내놓고 말을 못하지만 ‘군사 문제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군사작전 능력이 떨어져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불만이 상당할 것이다. 원래 군은 정치권력에 대해 근원적 불신을 갖고 있는데다,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에 대해서는 불신이 더 강하다.
정치권력과 군의 갈등은 문민통제 원칙에 대한 상이한 입장에서 시작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안보는 선출된 정치권력과 문민관료가 주도하고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군이 직접 정책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안보 전문가 집단으로 정치인이 결정한 안보정책을 집행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며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민통제는 민주국가의 상식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시절 선군정치를 강조하며 군이 모든 분야의 전면에 나서는 북한은 후진적이고 이례적인 경우다.
청와대 모르게 진행된 ‘작전계획 5029’
군사독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이후 문민통제 원칙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됐다. 군도 공식적으로 문민통제 원칙에 따른다고 밝히지만, 아직도 상당수 고위 지휘관들은 군사작전의 핵심 사항은 성역으로 간주한다. 전쟁과 군의 실상을 모르는 민간인이 함부로 개입하면 전투력이 약해지고 안보를 해쳐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다는 생각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전쟁은 군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군이 특수한 조직이고 그 특수성을 존중해 국방을 일반적 국정 운영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여긴다. 참여정부 내내 청와대와 군이 정면 충돌한 근본적 이유는 국방 문민화에 대한 양쪽의 출발점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사드 보고 누락과 비슷한 일이 참여정부 때인 2004년에도 벌어졌다. 2004년 12월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이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에 모여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05를 협의하고 있었다. 개념계획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큰 방향 등을 담고, 작전계획은 대대급 이하의 구체적인 부대·병력·무기 등의 투입 계획까지 담는다.
한-미 군 당국은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는 협의를 2004년 1년 내내 진행했다. 앞서 2003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조속한 시일 안에 개념계획을 실효성 있는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는 2005년까지 작전계획 5029를 만들기로 하고, 기존 개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바꾸려 했다. 한-미 군 당국은 1년 넘게 이 작업을 진행했다. 청와대는 2004년 12월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청와대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보고 없이 군이 임의로 위험한 작전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다. 청와대는 “전면전 비화 가능성이 있다” “주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군에 작전계획 작성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등 군 당국은 겉으론 이 지시를 따랐지만 내부적으로 “한-미 동맹을 깨자는 거냐” “청와대가 작전계획까지 관여하느냐”고 크게 반발했다. 군의 특수성과 고유 영역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최근 사드 보고 누락를 바라보는 군 내부의 정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7년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과 2004년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 전환 논란의 공통점은 문민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박근혜 정부 시절엔 청와대와 군이 충돌할 일이 없었다. 문민통제가 사라지고 군이 거꾸로 민을 통제하는 ‘군민통제’ 시기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육군대장 출신들을 국가정보원장·경호실장에 임명했고, 임기 내내 국가안보실장에도 육군 대장 출신(김장수·김관진)을 앉혔다. 국방정책이 외교·통일 정책까지 좌우하는 한국판 선군정치가 펼쳐졌다.
사드 보고 누락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정치권력과 군의 관계를 ‘군민통제’에서 ‘문민통제’로 바꾸는, 즉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군부 처지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은 일종의 ‘아노미 상태’(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해 일어나는 혼돈 상태)이다.
안보 적폐, 독사회? 알자회?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국방 개혁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문민통제 복원을 큰 틀에서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정부는 집권 3년이 지난 2005년이 되어서야 ‘국방 개혁 2020’을 완성했다. 이런 군 개혁 작업을 진행하려면 육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반발을 극복해야 했는데, 집권 중반을 넘겨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참여정부의 국방 개혁 경험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집권 1년차에 계획을 완성하고 2년차부터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 개혁과 관련해 최근 검찰 개혁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한 달 새 가장 큰 격랑이 인 곳이 법무부와 검찰이다. 지난 5월 법무부 차관, 검찰국장, 검찰총장·차장·서울중앙지검장이 물러났고 대검 공안부장·대구고검장·지검장·서울남부지검장이 줄줄이 사의를 표했다. 국정 농단과 관련해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된 인물들을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는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검사와의 대화’에 계급장을 떼고 직접 나서며 검찰 개혁 시동을 건 모습과 비교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기강 확립-인적 쇄신-제도 개혁’ 순서란 모양새를 띤다.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들의 ‘돈봉투 만찬’이 알려지자 기강 확립을 경고한 뒤, 책임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이는 검찰 독립성 보장만으로는 개혁이 안 됐다는 참여정부 검찰 개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 인적 쇄신이 끝나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과 수사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9월 ‘국방 개혁 2020’을 보고받으면서 군 병력을 감축하면서도 “고급장교 수는 줄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인사 적체에 대한 군 간부들의 불만 등을 배려한 조처였다. ‘비대한 군 상부 구조를 그냥 두고 어떻게 국방 개혁을 하느냐’는 비판을 감수하고 국방 개혁 동력을 확보하려는 ‘군 감싸안기’ 작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선의’에 대해 돌아온 것은 군의 불신과 태업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을 통해 군 기강 확립에 나섰다. 보고 누락에 독일 육사 유학파인 ‘독사회’(獨士會)가 있었고 하나회의 꿈나무 격인 ‘알자회’ 같은 사조직이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독사회는 ‘독일 육사’의 준말이다. 한국 육사를 다니다 독일 육사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김관진 전 안보실장 등이 거론된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6월2일 브리핑을 통해 “군내 사조직 관련해 알자회와 더불어 소위 김관진 라인이라는 독사회도 주목을 받고 있다. 독사회는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군 인맥으로, 알자회와 함께 인사권 등 군내 여러 사안들을 좌지우지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사드 배치 보고 누락은 단순한 군 기강 해이 차원을 넘어선다. 군이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이 선출한 정당한 권력마저 우롱하는 엄중한 사태”라며 “이번 사태의 진상을 규명함에 있어 알자회·독사회의 존재 여부, 군내 특정 세력의 안보 농단 여부에 대해서도 낱낱이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 철저한 진상 파악과 함께 국방과 안보를 사유화하는 군내 사조직 등 강고한 ‘안보 적폐’를 일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방장관 문민화 가능할까
기강 확립 이후 인적 쇄신과 관련해 중·장기적으로 ‘국방장관 문민화’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처럼 육군 고위 장성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혹은 군 장기 복무자의 경우 미국처럼 전역한 지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을 맡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도 문민 국방장관을 검토했지만, 시기상조란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고위 장성으로 전역한 지 얼마 안 돼 국방장관이 된 사람들은 출신 군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국방장관이라기보다 합참의장이나 참모총장 같은 구실을 하려고 했다. 이 결과 군 통수권자를 보좌해 문민통제에 앞장서야 할 국방장관이 오히려 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그치곤 했다.
문민 국방장관 논의는 군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며 미래지향적 군 건설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국방 개혁을 살필 때 ‘문민 국방장관’이 주요 관찰 포인트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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