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인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후보자 한 명의 이름을 스스로 써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 일본 공직선거법 제46조입니다. 일본의 기표 방식은 ‘기명식’입니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투표용지에 적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후보자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한국과는 다르죠.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투표하면 많은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요? 철자를 틀렸다면? 특정 후보자의 별명을 적는다면?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2005년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에서 치러진 시의원선거에선 후보자의 성은 맞게 썼으나 이름 대신 별명인 ‘수염’(히게)이라고 쓴 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이를 유효표로 인정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낸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유권자의 뜻을 모으고 있을까요? 한국 공직선거법 제159조에는 “선거인이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는 때에는 ‘점 복(卜)’ 자가 각인된 기표 용구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처음부터 ‘점 복’ 자 도장을 사용한 건 아닙니다. 도장의 문양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한국에서 투표가 처음 시작된 1940년대 말부터 20년 동안 기표 도구로 사용된 것은 놀랍게도 탄피와 대나무였습니다. 선거용 도장으로 사용하려면 길고 둥근 모양의 물건이 필요했는데요. 당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두 개였다고 합니다. 전쟁의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탄피와 대나무로 기표하면 원형 모양(○)이 찍히게 됩니다. 투표용지를 접으면 반대편에도 원형 모양이 묻게 됩니다. 유권자가 누구를 찍었는지 정확히 판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1990년대부터 도장에 문양이 추가되기 시작한 배경입니다.
첫 번째 문양으로 결정된 건 ‘사람 인(人)’ 자였습니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선 ‘○’ 안에 ‘사람 인’ 자의 표식이 들어간 도장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표 도구의 모양이 바뀌게 됩니다. 기표 도구에 새겨진 ‘사람 인’ 자가 한글의 ‘ㅅ’으로 보여 특정인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대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점 복’ 자 도장의 탄생 배경입니다. 1994년부터 사용된 ‘점 복’ 자는 상하좌우 대칭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무효표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모양이죠. ‘점 복’ 자는 본래 ‘점을 치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하늘의 뜻’은 ‘국민의 뜻’일 겁니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점 복’ 자가 새겨진 도장으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한 표, 어떠신가요?
나경렬 객원기자 nakr7258@naver.com드라마 속 대통령은 현실의 대통령과 얼마나 다를까요?좋은 대통령이란 뭘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박근혜 이후 우리의 기준이 너무 낮아졌다는 거죠. 낮아진 기준을 다시 높인다는 핑계로 정치 드라마를 보는 건 어떨까요. 개성 넘치는 대통령들이 나오는 미국 드라마 네 편을 소개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1. (The West Wing)스타일: 격식 없이 자유로이 토론하되 중요할 때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학구파.
미국 리버럴의 이상을 그리고 싶어서 제작했나 싶을 정도로 이상적 정치 상황이 곧잘 묘사됩니다. 참모들은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길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반대 주장을 펼치는 참모들을 더욱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심지어 대통령은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을 정도로 박식하고 똑똑해요.
2. (House of Cards) 대통령: 프랭크 언더우드
스타일: 승리만을, 오직 승리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화신.
민주당 원내총무 프랭크 언더우드는 온갖 음모와 협잡을 뿌리며 부통령이 되고 마침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권력의 화신입니다. 지는 걸 혐오하며 오직 승리만을 갈망하는 냉혹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죠. “나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속임수도 쓰고, 위협도 가하지. 하지만 최소한 일이 되게는 만들잖아.”
3. (The Designated Survivor)스타일: 정치를 몰라서 오히려 진정성 있는 정치를 펼쳐나가는 새내기 정치인.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권력자들이 폭탄테러로 한꺼번에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큰 이벤트가 있을 때면 대통령 권력 승계 대상자 중 한 명을 지정해 피신시켜둡니다. 이 드라마는 이 ‘지정 생존자’가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톰 커크먼은 학자 출신으로 정치적 음모나 편 가르기 같은 기존 정치의 문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헌법과 시민의 의무에 충실하면서 자기만의 진정성 있는 정치를 실행해나갑니다.
4. (Commander in Chief)스타일: 공고한 차별을 뚫고 나가는 무소속 여성의 뚝심.
이 드라마에는 보기 드물게 여성 대통령이 나옵니다. 게다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무소속 대통령이죠. 정치적 공격이 가해지고 차별적 시선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매켄지 앨런은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리더십을 펼쳐나가는 뚝심을 보여줍니다. 시즌1 후반부에는 북핵 위기를 절묘하게 풀어내면서 초강대국의 명실상부한 리더로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드라마 속 대통령들이지만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대통령은 아닐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면요. 일 안 하고 드라마 보는 대통령 말고 진짜로 일하는 대통령을 기대합니다. 드라마를 현실로 만드는 대통령 말고 현실을 드라마로 만들어줄 대통령을 간절히 바라봅니다. 아, 장르는 이왕이면 로맨스로 부탁해요.
강남규 객원기자 slothlove21@gmail.com▶http://bit.ly/2neDMOQ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마이웨이‘ 대독 시정연설 12시간 만에…“7일 대국민담화·기자회견”
엄마, 삭발하고 구치소 간다…“26년 소송에 양육비 270만원뿐”
공멸 위기감 속 윤에 “대국민 사과” 직격탄 쏜 한동훈…특검은 침묵
[속보] 크렘린궁 “푸틴,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만나”
해리스 오차범위 내 ‘우위’…‘신뢰도 1위’ NYT 마지막 조사 결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10도 뚝, 5일 아침 한파주의보 가능성…6일은 일부 지역 영하
정부, 교전 중인 우크라에 무기 지원?…“파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