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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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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여지책 반기문의 고육지책

친박이 키웠는데 촛불 국면에 지지율 하락세…

귀국 뒤 그는 누구 손을 잡을까
등록 2017-01-10 17:31 수정 2020-05-03 04:28

반기문(73)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대선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애초 1월 중순께 귀국하려던 반 전 총장은 12일로 날짜를 앞당겼다. 새해 들어 발표된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일제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뒤지는 하락세가 확인되자 위기감이 발동했다는 관측이다.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보수 대선 후보로 꼽히는 반 전 총장의 귀국과 향후 행보는 기정사실로 다가온 조기 대선전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보수 후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2일 귀국해 본격 대선 행보를 시작한다. 반 전 총장이 지난해 12월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2일 귀국해 본격 대선 행보를 시작한다. 반 전 총장이 지난해 12월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 전 총장으로선 실망스런 지표다. 반 전 총장은 여론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재인 전 대표에게 밀린 2위에 올랐다. 일부 조사에선 출신지인 충청권에서도 뒤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 9월까지 선두를 달렸을 때와 견주면 지지율이 반토막 나다시피 했다. 조직이나 세가 부족한 탓에 귀국 ‘컨벤션 효과’ 등 ‘바람’에 기대야 하는 반 전 총장 쪽으로서는 초조함을 불러일으킬 결과인 셈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반 전 총장 쪽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 쪽은 표면적으론 여론조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반 전 총장의 고향 충북 음성이 지역구인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은 1월3일 통화에서 “아직 귀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여론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 충청 지역에서의 체감도와 여론조사 결과는 천양지차다”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을 돕는 한 측근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20%가량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반 총장이 지닌 보수 이미지와 연말에 제기된 의혹들이 지지율에 타격을 줬다고 분석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통과와 새누리당 분열 국면 등으로 보수층이 수세에 몰린데다 연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여론조사 1라운드에선 문 전 대표에게 밀렸다. 귀국 일정을 당긴 것도 반 전 총장이 그만큼 긴급해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3지대 출마? “지금은 대답할 때 아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반 전 총장이 어떤 정치세력과 손잡느냐다. 독자 창당은 선택지에서 배제된 상태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미국 외교 전문지 인터뷰에서 독자 신당을 만드는 건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반 전 총장을 만난 한 여권 인사는 통화에서 “분명한 것은 신당을 창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준비가 많이 안 돼 있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세력과 합종연횡을 통해 문재인 전 대표에 맞서는 ‘제3지대’를 구상해야 하는 처지다.

그를 대선 주자로 띄운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을 비롯해 개혁보수신당(가칭), 국민의당,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은 구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그는 1월3일 미국 뉴욕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어떤 세력과 정치할지는) 현재 답변드릴 위치에 있지 않다.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고 적당한 계기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제3지대 출마설에 대해서도 “지금은 대답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의 모호한 행보는 그가 처한 딜레마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의 지지 기반인 보수 진영은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으로 갈라져 한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대선 후보로 부각되는 데 ‘8할’ 구실을 한 새누리당은 친박 수구정당으로 낙인찍혔다. 특히 서청원, 최경환 등 강성 친박 핵심 의원들이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적 청산 요구에 격하게 반발하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은 보수층의 지지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상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개혁보수신당 지지율은 오차범위 안에서 새누리당과 각축을 벌인다. 반 전 총장이 개혁보수신당행을 택한다면 당내 기반 없이 유승민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 등 기존 주자들과 경선을 치러야 한다.

지난해 말 반 전 총장을 만난 한 새누리당 의원은 “분열된 보수 중 양자택일하는 것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 통합, 중도 행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국민의당이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야권 쪽과 선뜻 손잡기도 여의치 않다. 와 리서치플러스가 2016년 12월28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성인 1006명을 여론조사한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60.6%,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자 가운데 39.9%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반 전 총장으로선 손 내미는 세력은 많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보수가 궁여지책으로 띄운 반기문 전 총장이 고육지책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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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행보 속 정치적 연대 모색

반 전 총장 쪽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뒤 당분간 정치권과 등거리 행보를 펼 예정이다. 반 전 총장을 돕는 박진 전 의원은 통화에서 “기존 정치세력과는 거리를 두고 국가적 차원의 문제 해결책과 미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청년 일자리, 사회 양극화, 고령화 문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 방식으로는 대학 강연, 토크 콘서트, 전국 민생 탐방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심윤조 전 의원은 ‘기존 정당과 손잡을 것이냐’는 물음에 “그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것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대선 준비를 할 사무실 역시 서울 여의도가 아닌 마포 쪽에 마련했다.

한편으로는 꾸준히 비문재인 그룹과의 외연 확장을 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제3지대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포석이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등에서 야권 쪽에 공감을 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 전 총장의 한 측근은 1월2일 “반 전 총장이 현행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1개 선거구에서 의원 2~3명을 선출하는 제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 전 총장은 특히 “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주장해온 것인데 맞는 이야기”라며 안 전 대표를 특정해 언급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3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헌법은) 몸은 많이 컸는데 옷은 안 맞는 상황이다. 필요한 부분은 개헌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같은 달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으로 권력 구조가 개편되면 2020년 총선에 맞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야 하느냐’는 경대수·박덕흠·이종배 등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물음에도 “(임기를) 유연하게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개헌에 적극적이면서 문재인 전 대표와 각을 세우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왔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반 전 총장 쪽은 단순히 보수 후보로 인식되는 것을 막고 비정치인 출신으로 중도를 흡수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것 같다”며 “그러나 정당이란 울타리 없이 향후 제기될 의혹과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얼마나 친박·보수 후보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는지를 과제로 꼽는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반 전 총장이 지닌 외교 분야 전문성이나 안정감도 빛이 바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탄핵과 촛불집회 국면에서 박 대통령과 보수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가 1월5일 발표한 차기 대통령 리더십 선호도 조사에선 진보 대통령 선호도가 63.9%로 보수 대통령 선호도(26.2%)를 크게 앞질렀다.

친박·보수 이미지가 굴레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1월3일 미국 뉴욕의 유엔 사무총장 공관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1월3일 미국 뉴욕의 유엔 사무총장 공관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말 뉴욕에서 “국민이 선정(善政)의 결핍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다. 촛불은 시스템의 잘못, 지도력의 잘못에서 나온 것이다”라며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대신 사회 대통합과 소통을 강조했다.

그러나 탄핵 국면 이전의 그는 박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면서 여권에 적극적으로 기대는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해 1월 박 대통령과의 신년 통화에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에 대해 환영한 것이지 합의 내용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며 여러 차례 새마을운동을 추어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5월 한국 방문 때는 안동과 경주 등 대구·경북 지역을 찾고 김종필 전 총리를 별도로 방문해 당시 친박계의 구상이던 영남+충청권 연합론에 호응했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반 전 총장은 지난 1년 동안 사실상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인식돼왔다”며 “이 틀을 벗어나려면 개혁보수신당을 뛰어넘는 개혁적 대안을 명확히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보름 정도면 결론 나온다

반 전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선 비교적 단기간에 그의 이미지가 좌우될 것으로 본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반 전 총장을 직접 접해보지 못한 국민은 이제 ‘라이브’로 반 전 총장을 보게 될 것이다. 설 전, 보름 정도면 그에 대한 평가가 결론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희웅 센터장은 “대안이 없다는 보수의 위기감이 발동하면 반 전 총장 쪽으로 세가 결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 후보로 굳어진다면, 화려하게 시장에 등장했지만 의외의 요인으로 추락한 ‘갤럭시노트7’처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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