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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신포 앞바다, 바닷속 고래급 잠수함의 미사일 사출구가 열렸다. 잠시 뒤 굉음과 함께 튕겨나온 미사일이 물 밖으로 솟구치자 빨간 불꽃이 점화되며 날아올랐다. 2016년 8월24일 오전 5시30분께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을 발사했다.
북극성은 동해상으로 약 500km를 날아가 일본열도 쪽 방공식별구역에 떨어졌다. 한국군은 이번 발사를 사실상 성공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SLBM은 4월23일 발사 때는 30여km밖에 날지 못했다. 두 번째인 7월9일 발사 때도 10여km 비행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발사는 400km 이상 높이로 쏘아올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잠수함은 미사일을 직각에 가깝게 발사했다. 미사일에 고체연료를 가득 채우고 각도를 낮춰 발사하면 2천km 이상 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북한 SLBM, 사드 무력화 가능미군의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이어 북한이 SLBM 시험에 사실상 성공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숨 가쁘게 출렁이고 있다. 사드 배치로 한국·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까지 군사력 수준을 대외에 과시하면서 동북아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SLBM 발사 성공은 주한미군의 한국 내 사드 배치 추진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특성상 북한의 SLBM 전력화는 사드 배치의 효용성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필 가능성이 높다. 지상에 배치된 사드가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북한 해군 기지에서 출발한 미사일 잠수함이 동해나 남해 쪽 먼바다로 침투해 후방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가 이를 요격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지난 7월11일 열린 국방위원회 사드 배치 현안 보고에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사드에 장착된 레이더 탐지 범위가) 120도니까 측후방은 사각지대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을 막을 수 있습니까? SLBM이 우리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 측후방에서 발사했을 때 사드가 방어할 수 있습니까?”
한민구 장관은 사드로 즉각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사드뿐 아니라 패트리엇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경보를 해서 그쪽 방향으로 이것을 전환할 수 있느냐, 패트리엇 같은 것 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북한에서 내려오는 잠수함을 탐지한 뒤 사드의 레이더 방향을 잠수함 쪽으로 돌리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한국은 북한의 SLBM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주한미군이 들여오는 사드 포대가 북한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막으려면 북한 잠수함을 잡는 한국 대잠수함 전력도 더 강화해야 한다. 한민구 장관은 “북한 SLBM이 전력화가 되면 저희들이 더 밀접하게 대잠수함 작전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병기 의원이 “1개 포대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지역 어디에 설치된들 전역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결론인가”라고 묻는 질문에도 한민구 장관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사드 배치를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대응이 이어지면서 한국군은 우선순위가 뒤섞인 채 군비경쟁의 덫에 빠지게 된 셈이다.
1조5천억원짜리 무기 체계인 사드가 왜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지 알려면 사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는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에서 핵심적인 무기다. 미국은 적대국의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해 미소 냉전시기 때부터 미사일을 격추하는 무기를 개발해왔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Missile Defense) 체계는 적의 미사일 비행 경로를 ‘이륙-상승-중간-최종’ 4단계로 나눈다. 미사일이 이륙해 상승하는 동안 우주에 있는 인공위성과 육지와 해상의 X-밴드 레이더 등 미사일방어용 센서로 이를 감지한다. 미사일 공격이 감지되면 중간-최종 단계에서 요격을 시도한다. 바다에 떠 있는 군함인 이지스함에 장착된 스탠더드미사일3(SM-3)과 지상배치요격미사일(GBI), 사드, 패트리엇 등이 나서 미사일을 미사일로 때려 없애는 계획이다.
군비경쟁으로 평화 만들 수 있을까이 가운데 사드가 핵심인 이유는 사드의 구성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드는 전진배치레이더(FBR)인 AN/TPY-2 레이더, 종말모드레이더(TMR), 발사대, 발사 통제 장치, 요격미사일 등으로 구성된다. 전진배치레이더는 적의 미사일 발사를 신속하게 탐지하기 위해 가급적 최전방에 배치된다. 이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1천~2천km로 추정된다.
8월11일 한국을 방문해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만난 제임스 시링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청장은 전진배치레이더의 탐지 거리에 대해 질문을 받자 “구체적인 수치는 기밀 사항이다. 공개 가능한 수준에서 레이더 사거리가 1천km 이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종말모드레이더는 그보다 짧으며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중국은 탐지 거리가 긴 사드 레이더가 중국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쓰일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핑계대고 있지만 실은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제가 중국을 겨냥해 확장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가 종말모드용으로 중국까지 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종말모드인 레이더를 전진배치용으로 바꾸는 데는 8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이 레이더의 모드를 언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는 한국도 알 수 없다.
사드로 높아진 동아시아 긴장현재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일본·대만·필리핀 등과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곳에서 중국의 전략은 A2AD(Anti-access/Area-Denial·접근저지 영역거부)다. 미국이 자신의 앞마당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괌에 이어 한국에까지 미군의 사드가 배치되면 이 전략은 차질을 빚는다. 중국으로선 쉽게 대응할 수 없는 군사적 억지력을 미국이 갖춘 상태에서 핵항공모함 등을 더 자유롭게 중국 주변 해역에 들여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한반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8월24일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SLBM 발사는) 사태를 더욱 긴장시키고 복잡하게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미국과 한국군에 의한 합동군사훈련이 북한을 자극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즉, 한국군과 미군이 시작한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8월22일~9월2일)이 북한 SLBM 발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 것이다.
중국이 이전과 달리 북한의 군사행동을 압박하는 데 함께 나서지 않는 것은 한국 내 사드 배치 때문이다.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이유로 8월 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규탄 성명 채택도 반대한 바 있다. 이번 북한 SLBM 발사 시험과 관련해 긴급히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중국이 대북 압박에 동참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이 함께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낸 6자회담은 멈춘 지 오래됐다. 사드 배치가 불거지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주변국 공조에서 완전히 이탈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빛나는 ‘북극성’은 복잡한 동북아 갈등의 그늘을 보여주는 신호탄과 같다.
중국 없이 북한 변화 유도 어려워최종건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국의 국익이 무엇인지 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최 교수는 “한-미 동맹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한국의 국익과 존립의 이유 그 자체는 아니다. (중략) 한-미가 원하는 북한의 행동 변화는 대북 제재가 성공해야 가능하다. 대북 제재의 성공은 중국에 달려 있다. 중국의 협력 없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제재와 압박 정책은 성공하지 못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
이완 기자 w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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