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총선(4월13일)에선 하나의 여당과 여러 개로 나뉜 야당이 맞붙는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전체 의석(300석) 가운데 절반을 크게 웃도는 의석을 얻을 것이란 위기감이 야권에 존재한다. 야권 분화가 크게 영향을 미칠 곳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꼽힌다.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격전지가 많아서다. 2012년 총선에서 득표율 3%포인트 이내로 승패가 갈린 곳이 서울 9곳, 경기 10곳이었다. 이런 여야 접전지에서 여러 야당 후보가 표를 나눠가지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당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해 총선 예비후보 등록 현황을 보면, 더불어민주당(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중 2개 이상의 야당 후보가 출마한 곳이 서울 49개 지역구 가운데 42곳, 경기 60개 지역구 가운데 41곳, 인천 13개 지역구 가운데 12곳이다. 수도권 122개 지역구 중 95곳에서 야권 다자 구도가 형성됐다.
국민의당 후보도 연대할 필요 느껴새누리당 압승을 막는 방편으로 야권에선 ‘비호남권 연대’가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기된다. 새누리당 당선 가능성이 적은 호남에선 야권이 자율 경쟁을 하되 수도권 등에선 연대를 통해 새누리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드는 방식이다. 더민주와 정의당이 대체로 동의하는 방식이다.
관건은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야권연대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안철수 공동대표는 연대에 거부감을 보여왔다. 안 대표는 “연대해서 (한국 정치가) 도대체 뭐가 바뀌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야권연대를 낡은 정치 방식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한길 의원은 안 대표가 연대에 거부감을 보이자 3월11일 당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했다.
그럼 야권이 나눠진 채 총선을 치르게 된 수도권에선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현상이 감지된다. 우선 국민의당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진데다 소속 후보들의 경쟁력 편차도 큰 탓에 국민의당이 선거 판세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하는 지역구들이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인지도를 쌓은 국민의당 후보들이 출마한 곳에선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대두된다. 안철수 대표와 달리 수도권의 국민의당 후보들 중에서도 연대의 필요성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제19대 총선에서 격전지였던 서울 동대문갑과 경기 성남 중원구 등 수도권 지역 2곳을 찾았다. 모두 국민의당 후보가 내부 경선 없이 확정된 곳이기도 하다.
동대문갑은 제19대 총선에선 안규백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민주) 후보가 허용범 새누리당 후보를 2520표 차(득표율 2.9%포인트 차)로 이긴 곳이다. 더민주는 이곳에서 안규백 의원의 공천을 확정했다. 안 의원은 4년간 이 지역을 다진 경험과 지역 예산을 확보한 실적을 앞세워 3선을 노린다.
새누리당은 허용범·장광근 후보가 당의 최종 후보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여왔다. 국민의당은 김윤 후보(당 정책위 부의장)를 공천했고, 정의당은 20대 청년인 오정빈 서울시당 부위원장을 내세웠다. 야권의 원내 3개 정당이 모두 출마한 대표적인 서울 지역이다.
야권 성향 무소속 후보 있어도 이겨안 의원 쪽은 이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의 파괴력을 높게 보지 않았다. 안 의원 쪽 인사는 “국민의당이 창당 전후로 당 지지율이 올라가고 호남에서도 우리 당(더민주)이 밀릴 때는 주변에서 우리(안규백 의원)도 탈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설날을 기점으로 당이 안정되면서 지역 당원들도 심리적 안정을 이룬 상태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에서 어떤 후보들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나돌 때 지역에서 그 사람들의 출마를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불안감이) 많이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장광근 예비후보 쪽 관계자도 “(야권 후보가 나눠지면) 우리에게 유리하겠지만 국민의당 후보가 그렇게 야권의 표를 갉아먹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는 대우자동차 세계경영기획단장 출신인 김윤 후보가 아직까지 지역에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민주) 후보로 서울 서초을에 출마했지만, 이번엔 국민의당 소속으로 동대문갑에 출마했다. 그는 부모님과 장모님을 이곳 동대문에서 같이 모시며 살고 있다고 한다.
안규백 의원은 “야권 단일화가 되면 금상첨화”라면서도 “단일화가 되지 않더라도 유권자는 결국 당선이 가능한 (야권) 후보에게 찍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 의원 쪽 관계자는 “(이미) 19대 총선에서 야권 성향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4039표(득표율 4.6%)를 가져간 상황에서 새누리당을 이긴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대표의 반대로 국민의당이 연대에 응하지 않는 상황까지 고려해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뜻밖의 반전 계기를 마련하고, 소속 후보들이 선거 완주를 목표로 인지도를 높여가면 선거 판세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김윤 후보 쪽은 “지역 유권자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결국 2번(더민주)이랑 단일화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우린 눈앞의 당선보다는 양당 기득권을 깨겠다는 창당 정신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총선) 끝까지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권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곳은 서울과 인천 일부 지역에서 국민의당 소속 현역 의원(문병호·최원식 의원 등)이 출마했거나, 지역에서 인지도를 갖춘 국민의당 후보(서울 관악갑 김성식 후보 등)가 나와 야권 표를 의미 있는 수치로 나눠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그중 한 곳이 성남 중원구다.
“룰 없으면 지역별 연대 어려워”여기는 제19대 총선에서 김미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를 654표 차로 이긴 곳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뒤 치른 2015년 4월 보궐선거에선 신상진 후보가 정환석 새정치연합(현 더민주) 후보를 꺾고 재기했다.
새누리당에선 신상진 의원이 이곳에 홀로 출마했고, 더민주에선 은수미 의원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출신 안성욱 후보가 나섰다. 옛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지난해 이곳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환석 후보가 당을 탈당해 이번엔 국민의당 공천을 받아 재도전한다. 통합진보당 출신 김미희 전 의원도 무소속으로 가세했다.
성남 중원구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줄 정도로 야당세가 비교적 강한 곳이다. 하지만 성남에서 33년째 살며 노동운동·의료봉사 등을 해온 신상진 새누리당 의원이 정당 지지율을 넘는 인지도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야당 후보가 분화된 상태로는 야권이 승부를 펼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3월10일 지역 사무소에서 만난 신상진 의원은 “야권이 단일화할 것으로 본다. 여야 후보가 1 대 1이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해서 준비할 것이다. 그래야 게을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제1야당이 다른 야당 후보를 무시하고 독자 승부에 나서는 게 곤란한 상황이다. 무소속 김미희 후보도 이 지역 의원 출신이라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재출마해 10%대에 근접한 득표율(8.46%)을 얻었다. 특히 정환석 국민의당 후보도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다. 정 후보는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바꾸기 이전인 2014년 11월에 은수미 의원과의 중원구 지역위원장 경선에서 이겼고, 2015년 4월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서도 은 의원을 꺾고 당 최종 후보가 되는 등 지역 입지가 탄탄했다.
은 의원은 최근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 10시간18분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해 전국적으로 관심을 받았지만 당의 최종 후보가 되더라도 승리를 위해선 야권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지역의 호남향우회 어른들도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단일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새누리당 후보와 1 대 1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중앙당 입장이 엇갈려정환석 후보 쪽도 야권연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력을 갖춘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국민의당 또는 다른 야권 후보가 이기려면 연대가 불가피해 보여서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연대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어 연대 관련 발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정 후보는 “새누리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까지 갖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국민적 압박이 생기면 중앙당 차원에서 (연대 여부에 대한) 정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당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연대하면 좋겠지만 (야당들이 중앙당 차원에서) 룰을 정해주지 않으면 지역 차원에서 (개별) 연대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연대를 놓고 국민의당 내부가 갈등을 겪고 있어 연대 여부가 당장 정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안 대표는 “총선 후 3당 정립 체제가 되면 절벽에 매달려 있는 한국 경제의 새 길을 찾을 것이다”라며 독자 승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반면 정의당은 양당 기득권을 넘는 정당의 다양성을 주장하면서도 연대와 관련해선 안 대표와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연대는 민심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받드는 전략이다. 현행 선거제도(소선거구제)는 1등을 찍지 않은 다수 유권자의 의사가 사표가 된다. 이런 승자독식 환경에서 야권의 협력마저 하지 말라는 말은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손발을 묶고 싸우라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새누리당 압승이 가능할 수 있는 안 대표의 독자 노선을 ‘낭만적 모험주의’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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