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는 법안 통과를 ‘미루는’ 역할에 그친다. 정치적 타협점을 찾기 위한 시간적 여유, 국민에게 쟁점 법안을 알려 여론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어떤 법인가’가 핵심이다. 디지털팀과 객원기자단은 2월23일 시작한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의 주요 발언 등을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및 ‘1boon’ 페이지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실시간 요약 제공했다. 이 콘텐츠들을 발췌하여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70시간 총정리’로 재구성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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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정원에 권한 집중하는 ‘빅브러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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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같은 당 소속 의원 전원이 찬성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테러방지법)의 핵심은 국가정보원의 권한이 커진다는 점이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기존 대공·방첩 분야가 아닌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해서도 감청 및 금융정보 수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정보 수집에는 영장도 필요 없다.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대테러 인권보호관’은 단 1명만 두는 등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다.
“국정원은 테러방지법만 통과시켜주면 쇄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는 수사권이 없습니다. 권한이 커지면 남용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사권을 거부했습니다.”(신경민 의원)
2. 기본권 침해하는 ‘국민감시법’
‘테러 활동’ ‘테러 위험 인물’을 정의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넓게 적용할 여지가 있다. 국내의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할 수단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9·11 테러 발생 직후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수색 절차를 간소화하는 이른바 ‘애국법’(Patriot Act)을 통과시켰으나, 국가안보국(NSA)이 시민을 상대로 무제한적 도·감청을 해온 것이 드러나면서 법안 연장에 실패하고 대체 법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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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정갑윤·김을동 의원 등이 이를 ‘이슬람국가(IS) 테러’에 비유한 것을 언급하며) 이 내용이 상징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테러라고 하는 것을 누가 지정할 수 있느냐, 누가 이것이 테러다라고 선언할 수 있느냐라고 하는 문제가 항상 따라올 것입니다. 그 독소조항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위원회의 법안소위는 여러 차례 논의를 했습니다. 수차례 법안이 바뀌고 바뀌는 과정들을 만들어왔고 그 과정은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김광진 의원)
“제가 왜 테러방지법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드리냐면,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 일자리, 노동, 복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불가침의 인권, 행복할 권리 같은 것이 있겠습니까.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도 탄압받아서는 안 됩니다.”(은수미 의원)
3. ‘진짜’ 테러 막을 제도는 이미 존재
한국은 1982년 대통령 훈령으로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을 제정했다. 이 지침에서는 국정원·경찰청·법무부·국세청 등 11개 부처를 포함하는 ‘국가 테러대책회의’를 대테러 기구로 지정했다. 도·감청도 법원 영장을 거쳐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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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가정보원은 법률에 의해서 국외 정보 및 국내의 보안 정보(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과 교류를 할 수 없다’는 대통령 말씀은 국정원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국방부를 통해서도 다양한 첩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김광진 의원)
‘다수결 원칙’에 반한다 vs ‘상원의 영혼’
‘필리버스터’란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국회 내 의석수가 작은 소수당이 토론을 계속하며 다수당이 법안 통과 표결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합법적 절차다.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목적으로 한 장시간 연설’은 기원전 로마 공화정 때부터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토지개혁안을 부결시키려 했던 정치인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의 연설 사례가 유명하다. 필리버스터라는 ‘해적’ ‘용병’을 의미하는 스페인·네덜란드어에 어원을 둔다. 19세기 중반부터 미국 상원에서 정치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의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영국·프랑스·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시행돼왔다. 다수결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쪽도 있으나, 미국 필리버스터 옹호자들은 ‘상원의 영혼’이라고도 부른다.
한국에서는 제헌국회 때부터 가능했으나,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 ‘시간 제한’ 조항이 만들어졌다.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토론을 실시한다”는 조항을 넣으면서 39년 만에 부활했다.
의원 1인당 1회 토론할 수 있고, 의원 스스로 토론을 멈추거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종결 요구가 없는 한, 회기 동안 계속 진행할 수 있다. 무제한 토론이 끝나면 법안 표결에 들어가야 한다.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의 경우 이론상으로 이번 회기가 끝나는 3월10일까지 가능하며, 19대 국회 재적의원 293명 중 176명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중단시킬 수 있다. 현 국회의원은 정당별로 새누리당 157명, 더불어민주당 108명, 국민의당 17명, 정의당 5명, 무소속 6명이다.
‘국가비상사태’라고요?
‘직권상정’이란
대한민국 국회의장의 권한 중 하나. 보통 법안은 분야별로 나뉜 국회 상임위원회(상임위)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치는데, 국회의장이 상임위 검토·의결을 마치지 않은 법안을 직접 본회의에 넘기는 것이다.
현행법상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3가지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과 여야 대표가 합의하는 경우(국회법 제85조)가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금까지 직권상정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2월23일 직권상정 3가지 요건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짓고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했다. 최근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테러 위협 고조를 이유로 들었다.
국회 필리버스터 방청기
본 세상과 보여진 세상
“국회 가면 안 될까?”
친구가 갑자기 제안했다. 누군가의 SNS 인증 덕분에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방청을 알게 됐다고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방청 신청 절차는 10분도 안 걸렸다. 국회 로비에서 신분증과 방문서를 제출한 뒤 소지품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노트와 펜을 들고 2층 정의당 원내대표실로 쭈뼛거리며 가니 방청 신청서를 준다. 그걸 들고 4층 본회의장 방청석으로 올라가면 끝이다.
2월25일 오후 6시부터 밤 9시10분까지 자리를 지켰다. 신경민 의원은 앵커 출신이어서 그런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팍팍 꽂혔다. “미국은 그렇게 가면서 왜 좋은 건 안 배워오냐” “책상만 칠 게 아니다” “이만석(전 국회의장) 비슷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직권상정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등 신 의원은 대통령과 국가정보원, 국회의장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사이다’를 들이켠 방청석의 사람들은 함께 웃었다.
토론 중간에 갑자기 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신 의원이 들고 나온 책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항의하는 것 같았는데 지루하던 와중에 매우 고마웠다! 또 조 의원에게 “필리버스터를 필리버스터 한다”라고 말하는 신 의원의 센스 덕분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국회에서 나와 친구와 술을 한잔 하면서 뉴스를 봤는데 씁쓸했다. 신경민 의원의 발언은 보이지 않고, 강기정 의원의 눈물은 공천 배제로 인한 것으로 뉴스는 도배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강 의원은 몸싸움 없이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하는 게 ‘보였다’. 문득 함께 방청했던 교복 입은 학생들이 떠오른다. 눈으로 본 세상과 보여진 세상의 괴리 사이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김남영(대학생)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즐기는 4가지 방법
1. 국회 본회의 현장 라이브 방송은 케이블TV, 컴퓨터,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다. 각 국회방송(natv.go.kr), 팩트TV(홈페이지 facttv.kr), 유튜브 채널(youtube.com/user/FactTVonair)에 접속하거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된다.
2. 12살 이상이면 국회 현장 방청도 가능하다. 미리 방청권을 받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지역구민을 대상으로 소개해주는 방식이다. 자세한 문의는 주소지의 지역구 국회의원실로 하면 된다. 정의당(02-788-3471)에선 방청 신청도 받고 있다.
3. ‘본방 사수’ 외에 주요 발언 요약, 관련 뉴스 맥락 등을 짚어주는 뉴스 서비스를 찾을 수 있다. 모바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스푼’은 필리버스터 특별 페이지(filibuster.today)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SNS(주소는 10쪽 참조) 즐겨찾기도 강추.
4. ‘시민 필리버스터’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국회 정문 앞 거리에선 ‘시민 필리버스터’가, 온라인에서는 ‘필리버스터닷미’(filibuster.me)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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