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 표심을 얻는 골목정치에 익숙한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국회의원의 활동이 “(지역의) 구의원, 시의원과 차별화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국회의원들이 “회사원처럼 되어간다”고 평가했다. 당이 결정한 당론에 갇혀 개별 국회의원의 의사와 국회 상임위원회의 자율성이 크게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점점 회사원처럼 되어간다”그는 우리 사회가 ‘4중 위기’(정치 위기, 경제 위기, 삶의 질의 위기, 북한발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문을 따려면 정치의 기능이 복원돼야 하며, “미래의 비전과 이 비전을 실천할 담대한 용기를 가진 혁신 주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정치인들을 “경세가”라고 칭했다. ‘골목정치인’들과 대비되는 이런 경세가들이 내년 4월 총선을 통해 20대 국회에 더 많이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시민이 좋은 정치인의 기준을 정해 정치권에 이를 요구하는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주최 희망제작소·후원 ) 캠페인에 기대를 표했다. 좋은 정치를 만들기 위해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망제작소는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국회 사무총장, 야당 소속의 전직 보좌관과 정치인, 정치학자 등을 인터뷰해 이 캠페인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인터뷰 내용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프로젝트명 ‘어디 좋은 국회의원 없나요?’)과 지면에 게재된다.
사회학자 출신인 박 총장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의원 시절 당내 개혁 성향 모임인 ‘수요모임’을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사회특보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때 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친이명박계’의 핵심 인사로 불려왔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9월 국회 사무총장이 된 그가 현재의 국회와 국회의원들을 가장 가깝게 지켜보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진행됐다.
그는 “의원들의 활동이 나라 전체로 보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국회의원의 기능은 세 가지다. 첫째, 국가 차원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발견하고 해결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중요한 책무다. 둘째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관련해 중앙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지역 발전의 비전을 구현하는 기능이다. 셋째는 지역 주민과 소통하며 다양한 요구와 민의를 수렴하는 기능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첫째보다 둘째, 둘째보다 셋째로 활동의 폭이 옮겨가고 있다.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이 되기 위해, 또 지역에서 표심을 얻기 위한 활동에 치중하다보니 의원의 품격, 질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구조적 전환기에서 정치가 “변화를 추동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 여러 분야의 기득권을 혁파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야 한다. 대타협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조율해 통합적 방향으로 국정을 나아가게 만드는 역량이다. 하지만 17, 18, 19대 국회로 갈수록 그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정치는 불완전한 결정을 하거나 아예 무결정으로 가득 차 있다. 권력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 권력이 따로따로 놀고 있다.”
비례대표 확대·중대선거구제로 가야그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의원들은 당의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 집중하고, 거대 양당(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역주의와 이념적 양극화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양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선 어떤 정당이 아무리 헤매도 지역 패권주의에 기초해 지역구 100여 석 정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양당 구조에선 당의 공천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엔 정치적 양극화가 서로에게 유리하다. 갈등을 부추기고 양극화함으로써 양당의 기득권이 오히려 유지되는 구조다.”
그래서 그는 양당 중심의 정치 구조를 깨는 “정치 질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격렬히 충돌하는 구조에선 “합의를 해도 ‘딜’(거래)을 할 수밖에 없고, 딜을 하더라도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간 세력이 있으면 완충 역할도 하고, 중간 세력이 미래지향적 혁신과 가치를 제시하면 양당을 자극해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를 꾸린 양당에 힘이 집중되는 구조를 넘어 ‘제3의 정치세력’의 공간을 열어주는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가져가야 하며, 지역주의가 완화되도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활용해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선거제도도 길게 보면 소선거구제(하나의 지역구에서 1명 선출)보다 중대선거구제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서 낙선 후보에게 찍은 1023만 표가 ‘사표’가 됐다. 당시 새누리당의 정당 득표율은 42.8%였으나 의석수는 총 300석 중 152석(점유율 50.66%)에 이르렀다. 정당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인 것이다.
박 총장은 새 정치 질서를 모색하려면 “결국 그런 모색을 하는 데 적합한 정치인을 많이 배출하는 게 답”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라고 할 정도로 답답함이 쌓여 있다. 그래도 이걸 풀 선도적인 기능을 정치가 할 수밖에 없다.”
정치 기능을 복원할 ‘혁신 주체’를 국회에 더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좋은 정치인이 의회에 진출하도록 유권자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했다.
‘헬조선’을 풀 수 있는 것도 정치“의원들이 지역에서 친숙하게 손을 잡아주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걸 과하게 요구하고 이걸 의원을 뽑는 기준으로 활용하면 의원들도 거기에 따라간다. 자기가 뽑은 사람이 지역의 자존심으로서 국가를 움직이는 데 좋은 정치를 하고, 좋은 정책을 내는 데 시간을 투자하도록 양해해줘야 한다. 입법 활동, 상임위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등을 유권자들이 주목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시민 100명이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지’를 토론해 그 잣대를 만들어가는 이번 캠페인도 시민이 참여해 “정치가 바로 서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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