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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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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치가 그대로 꽂힌 선거

4·29 국회의원 재보선 관악을 주민 르포… 유력 후보 모두 ‘심판론’, 특색 없이 대동소이한 지역 정책, 주민들은 한숨·회의 섞인 피로감
등록 2015-04-29 17:25 수정 2020-05-03 04:28

지역에서 선거는 먼저 ‘소음’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시끄럽다. 유세차량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설과 로고송을 피할 길은 없다. 4월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앞도 그랬다. 쉼터를 벗어나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 유권자들을 만나려는 후보자가 여럿 모여들었다. 빨간색·파란색·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색깔별로 무리지어 ‘출근 인사’(유세)를 했다. 손가락으로 귀를 지그시 누른 채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표정은 덤덤했다.

4월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사거리에 붙은 4·29 국회의원 재보선 관련 후보자 현수막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4월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사거리에 붙은 4·29 국회의원 재보선 관련 후보자 현수막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중앙당들 ‘총력전’ 나섰지만

캡 모자로 흰머리를 가린 이장복(62)씨는 “난 괜찮아. 저것도 일상인데 뭘. 어차피 정치는 말싸움 아니에요?”라며 웃었다. 신사동 주민인 그의 일터는 신대방역 앞 5평 남짓한 포장마차다. 토스트(1500원), 두유(700원) 등을 판다. 아침 7시부터 2시간, 저녁 6시부터 2시간,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소음을 견디지만 표정은 밝았다. 그의 부인(59)도 “오늘은 그래도 후보자들이 10분씩 돌아가면서 (연설)하니까 좋다”며 따라 웃었다. 어제까진 서로 제 할 말을 하느라 데시벨(dB)을 더 높였단다.

재보선은 정식 선거로 뽑힌 지역 대표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원칙적 의미보다,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 평가이자 각 정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무대로 대우받는다. 중앙당이 ‘총력전’에 나서는 이유다. 재보선은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와 갈등에 대한 ‘대리전’이다. 서울 관악을 지역은 4·29 재보선을 치르는 4곳 가운데서도 경쟁이 치열한 격전지다. 후보는 새누리당(오신환), 새정치민주연합(정태호), 공화당(신종열) 소속 각 1명, 무소속 3명으로 모두 6명이다. 무소속 후보로는 ‘국민모임’ 정동영, 논객 변희재와 지역 기업인 송광호가 나섰다. 여당, 야당, 국민모임의 삼파전이 두드러진다.

여야, 국민모임 모두 ‘심판론’을 앞세운다. 심판 대상은 다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여당을 심판하자고 한다. 야당 강세인 관악을 지역에서 27년 동안 국회의원 배출에 실패한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로 살림살이가 나아졌냐”며 “야당 독주를 끝내자”고 주장한다.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는 “여당과 야당 모두 심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 정치인인 정동영 출마는 선거 주목도를 높였다. 이장복씨는 “정동영이 와서 주민들이 술렁였어. 아나운서부터 대선까지 나갔던 사람인데… 경력으로 보나 뭘로 보나 유력하지”라고 말했다. 영등포 신길동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960년대 구로공단이 조성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참여한 행사에서 박수 친 일을 기억한다. 새누리당 계열을 찍어왔지만, 이번엔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까지 한 사람이 여기까지 왜 왔냐고 하는데… 얼마나 (정치에) 울화통이 터지면 예까지 왔겠어. 여기서 밀려나면 갈 곳도 없잖아.” 그는 30대 초반에 당원으로 활동했지만 “정당이 밥을 먹여주진 않아서” 결혼 뒤 그만뒀다. “아까 어떤 손님이 자기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미치도록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했어. 일만 많이 하면 뭐해 돈을 벌어야지.” 한 행인이 이미 지갑을 열어젖힌 채로 다가왔다. “토스트 하나 빨리 주세요.” 이씨가 말을 멈췄다.

“이번엔 정말 찍기 싫어”

관악구의 역사는 ‘밀려난 자’들에서 시작된다. 1963년 용산구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민 450가구가 현재 신림사거리 신원동(옛 신림1동) 4평짜리 간이 주택으로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1968년까지 수해민과 철거민들이 관악구로 들어온다. 1963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서울시 영등포구 ‘관악출장소’로 편입될 당시 7140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이런 집단 이주를 거쳐 23만8870명으로 불어난 1973년에 영등포구에서 분리돼 ‘관악구’가 된다.

빈곤의 이미지는 ‘난곡 지역’ 때문에 더 굳어졌다. 서울 지역 최장수 달동네 가운데 하나였던 난곡 지역은 2000년부터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갔다. 좁은 집들이 바투 모여 있던 가파른 산등성이에는 아파트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2008년 관악구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버스 종점을 아우르는 옛 신림7동은 ‘난향동’으로, 난곡 입구는 옛 신림3동에서 ‘난곡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영희(59·가명)씨는 난향동 버스 종점 곁에서 분식 노점상을 30년 동안 해왔다. 그는 군만두 4개를 올릴 수 있는 접시에 떡볶이를 가득 담아 1인분 1천원에 팔았다.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옛날 난곡 시절에 먹었던 애들이 결혼해서도 다시 찾아와. 아직 동네에도 배곯는 애들이 있고…. 가격은 가능한 안 올려.” “그러니까 주민들이 우리 장사를 지지해주잖아.” 회사를 퇴직한 뒤부터 김씨의 일을 돕는 남편(65)이 말했다. 어린아이 손을 붙들고 가게를 찾는 엄마들이 끊이지 않았다.

선거 얘기를 꺼내자 피곤해 보여도 밝았던 두 사람의 얼굴에 금세 그늘이 졌다. “이렇게 바쁘셔서 투표할 시간도 없으시겠어요”라고 묻자, 냉동 돈가스의 포장 비닐을 뜯던 김영희씨가 한숨처럼 말했다. “아니야.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늘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해왔어. 그런데… 이번엔 정말 찍기 싫어.” 김씨 부부는 이번 선거에 특히 “실망이 크다”고 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정당답지 않은 정당’이다.

“(지난번엔) 탈당을 해서 무소속으로 나가지 않나…. 아까 (정동영 후보) 유세차량이 지나가면서 ‘썩은 고기가 타고 있는 불판을 갈아치우자’고 하는데, 자기가 거기 판에 같이 올라타 있었던 사람 아냐?” 김씨의 조곤조곤하던 목소리가 잠깐 커졌다가 이내 한숨으로 바뀐다. “어제(4월21일)부터는 또 이행자 시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하고 (정동영이랑) 같이 다니데. 아니 자기 아버지 적부터 대대로 당 활동하던 사람이…. 참 이게 요지경이구나, 또 실망했다니까. 정치판엔 1천원 떡볶이 장사꾼 인격만도 못한 사람이 정말 많은 거 같아.”

정당은 “조직된 의견”(organized opinion)이어야 한다. 당파나 사적 이해관계가 두드러지면 정치 불신은 심해진다. 2012년 19대 총선 때 김희철 전 민주당 의원(관악을·18대)은 야권 단일후보를 뽑는 통합진보당과의 경선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새누리당 후보에도 밀린 3위를 기록했다. 김 전 의원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당내 경선에서 정태호 후보에게 0.6%포인트 차이로 밀렸고, 정 후보가 ‘친노’라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가 정동영 후보 지지를 밝힌 건 아니지만, 김 전 의원의 사무실 건물에 정 후보가 입주하면서 여러 ‘오해’를 낳았다. 정동영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오해’들에 대해, “보는 사람들 각자가 알아서 해석하면 될 영역”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들의 당론은 사실상 ‘공백’

‘해석의 영역’으로 던져진 건 더 있다. 선거 초반 정의당은 이동영 예비후보를, 노동당은 나경채 예비후보를 냈다가 정식 후보로 등록하지 않고 물러났다. 두 후보 모두 관악구의회 의원 출신이다. 2012년 총선 때 ‘야권 단일화’ 후보로 이 지역에서 당선됐던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사퇴했다. 이들 모두 중도 하차하면서 어떤 후보에 대한 지지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다. 국민모임과 선거 연대를 검토했던 정의당과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관악을 선거에 대한 진보정당들의 당론은 사실상 ‘공백’이 됐다.

관악에서 15년가량 풀뿌리 운동을 해온 곽충근 활동가는 “지역에 대한 이해를 갖춘 국회의원이 뽑히면 좋을 텐데 현재 선거판은 중앙정치의 갈등을 고스란히 안은 후보들뿐”이라며 “이 후보들 가운데 내년 총선에서도 공천받기에 성공하거나, 아니더라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주민들 관심이 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 맞춤형’이라고 내놓은 공약은 모든 후보가 공유하므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대표적인 게 사법고시 존치다. 사법고시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2017년 폐지가 결정됐다. 사법고시를 가장 큰 시장으로 삼아 고시생을 유치해온 신림동 고시촌(대학동·서림동 일대)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시서적·고시식당 등이 문을 닫고 원룸 공실률도 갈수록 높아졌다.

대학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백승훈 공인중개사는 “지난 몇 년 동안 원룸을 찾는 사람이 계속 줄어서 원룸 건물주들이 가격을 10~20%씩 낮춰왔다. 그런데 올해 초에는 공실률이 평균 30%로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청년 직장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시촌을 주거지로 택하고 있으나, 아직 고시생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준은 아니다. 고시촌의 ‘이해관계자’들은 사법고시가 로스쿨과 병행되길 바란다. 후보들은 “지역경제를 살리고”, “가난한 청년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빼앗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공약으로 택했다고 밝혔다.

대학동에서 대를 이어 철물점을 운영하는 박순영(43)씨도 “어머니가 여기서 30년 장사한 돈으로 원룸을 지어 운영하는데 방이 자꾸 비니까 괴로워한다. 이해찬 전 의원이 관악을에서 5선을 했는데 왜 지역은 발전이 없냐는 거다. 어머니처럼 이제 야당 대신 1번(새누리당)을 찍어서 좀 바꿔보자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바꿔보자는 사람들 중에는 ‘성완종 리스트’ 때문에 다시 마음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후보는 누군지 모르지만 2번(새정치민주연합)을 찍겠다”는 이도 더러 만났다. 고시를 준비하다 연이은 낙방에 포기하고 지난해부터 법무사 공부를 시작한 유재식(42·가명)씨는 “여기에서 새누리당 되면 ‘개쪽’이죠”라고 말했다.

신동욱 “3%만 받아도 선거 혁명”

‘일베 대통령’ 변희재와 ‘극우 정당’ 공화당도 정치세력화에 나섰다. 열심이다. ‘애국시민 후보’를 자처하는 변 후보의 선거사무소 한쪽 벽에는 그를 응원하는 메모지가 여럿 붙어 있었다. “보수의 아이콘 변희재 후보님의 당선을 기원합니다. 2015. 4.5 안양의 영원한 보수” “당선을 기원합니다 일베 회원 박○○”. 4월22일 저녁 신대방역 앞에서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 성호 스님이 변희재 후보의 유세차량에 올라타 “종북 세력을 척결할 애국 청년을 뽑아야 한다”고 지지 연설을 했다. 유세차량 옆에서 검은 옷을 단정하게 갖춰입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간간이 비명 같은 구호를 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씨를 총재로 세운 공화당은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참전수당 1천% 인상안 입법, 종북·좌익 인사들의 북한 이주에 관한 법률 제정, 5·18 민주화운동 재평가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벽보·명함 등에 후보자인 신종열씨의 얼굴 대신 “박정희 만세! 5·16 혁명 만세! 신동욱 만세! 대한민국 만세! 종북을 뿌리뽑아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란 문구만 들어가 있다.

이들은 ‘선거 개혁’을 명분으로 ‘2000만원으로 선거하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500만원은 기탁금으로 내고 우편용 인쇄물 13만 장, 벽보 270장, 명함 1만 장에 총 110만원을 사용했다. 신종열 후보는 검은색·빨간색 매직으로 기호와 이름을 써넣은 흰 티셔츠를 입었다. “젊은 친구들은 ‘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나왔냐’고 묻고, 나이 많은 분들은 ‘새누리당 떨어지면 어쩌려고 나왔느냐’고 물어요. 그럼 선거문화를 바꾸려고 나왔다고 답하지요.”(신종열) “주변에서 3% 표만 받아도 선거 혁명이라고 해요. 목표는 5%입니다.”(신동욱)

4월14일 오전 서울 관악구청에서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협약 및 공명선거 다짐 대회에 참여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4월14일 오전 서울 관악구청에서 관악을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협약 및 공명선거 다짐 대회에 참여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투표를 앞두고 거리에서 일터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화 중에 자주 분열했다. “이제는 당이나 사람이 아니라 정책을 봐야지” 하다가 “정책은 사탕발림이지. 어차피 안 지킬 거. 1년짜리 국회의원이 뭘 하겠나”로 넘어갔다가, “그래도 당이 중요한데, 실천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로 돌아왔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은 대부분 투표에 충실해왔기에 ‘묘한 자부심’이 얼굴에 떠오르다가도, 이내 피로해했다. “선거 고문”이란 말까지 나왔다. 대화는 자주 한숨, 회의, 실망감, 무기력함 같은 ‘감정 전달’이 압도했다. “성완종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야. 정치를 돈 없이 어떻게 하나. 다들 받았을 거야”라고 말할 때, 주민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사약을 들이켠 사람처럼 굳었다.

지역의 풀뿌리 활동가들은 “선거에 대한 대화 자체가 실종”될 만큼 “애매하고 난처한” 선거라고 했다. 대학동에서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을 운영하는 김동운씨는 “활동가들이 모인 카톡방에서 선거 관련 얘기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얘기를 꺼내도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충근 활동가는 “일단 정당 해산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 때문에 생긴 선거를 맞았다.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이 일으킨 경선 조작 파문 등에 지역 활동가들이 상처를 받은 것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당이 해산돼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애 난곡주민도서관장은 1주기를 맞아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을 언급했다. “개인 의견으로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가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더 키운 것 같다. 이후 정치권의 대처를 보면 ‘최소한 인간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엄청난 사기극을 본 느낌인데도, 누구 하나 정치의 장에서 이를 밝혀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모욕과 혐오를 키웠다. 정치를 바꿔서 한 발씩이라도 나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짓밟은 게 아닐까.”

복잡한 감정, 정치 복원에 대한 열망

거친 물살이 앞으로 흐르지 못하고 제자리를 빙빙 돈다. 주변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삼키고 만다. ‘소용돌이’는 모래알 같은 개인이든 같은 배를 탄 집단이든, 중앙권력에 다 휘말려 들어가는 한국 정치의 특성을 표현한 말이다. 중앙권력이 누구냐에 따라 개인의 생명까지 좌우된 한국의 역사가 투영된 말이기도 하다. 관악을 재보선은 소용돌이 정치의 심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유권자들은 책임 없이 권력만 추구하다 일어난 부정부패에 물든 정부와 정치권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누가 정점에 서느냐’에 따라 언제든 나와 내 가족이 민주공화국 안에서조차 ‘벌거벗은 생명’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도 느낀다.

“어떤 대상의 현실적 힘이 강하고 가치는 높을수록 그 대상에 대한 냉소, 불신, 혐오의 정도는 크다.”(강준만, 중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관악을 유권자들의 복잡한 감정은 거꾸로 정치 복원에 대한 열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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