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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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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소원’, 우선은 ‘당대표 성공적’

문재인 의원 당대표 당선 뒤에도 끊이지 않는 새정치의 미래 걱정…
분당 가능성 여전한 가운데, 당심 다루는 정치력이 관건으로 등장
등록 2015-02-15 12:03 수정 2020-05-03 04:27

시점이 흥미롭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진 시기에 ‘문재인 대표’란 타이틀이 등장했다. 여당마저 대통령의 때이른 ‘레임덕’(권력 누수)을 우려하는 즈음에 여론조사 지표상 차기 대권 후보 1위인 인물이 제1야당의 수장에 오른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로 엇갈린 두 사람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로 다시 만났다. 지난 2월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함성의 크기가 정점에 달한 지점은 대표 당선자를 발표한 순간이 아니었다. 문재인 의원이 대표 수락 연설을 하며 “민주주의·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내면 저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다”라는 대목을 통과할 때였다. 국정운영의 방향타가 잘못 돌아갈 경우 이를 제어할 강한 야당 대표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인 함성처럼 들렸다.

“내용적으론 문 의원이 졌다 할 만한 결과”

새정치연합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대선 후보급이 당대표를 맡으니 당의 존재감이 강해진 측면이 있다. 당 지지율이 오르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다. 당대표 스피커의 위력이 생겼다”고 평했다. 적어도 당의 주목도를 높이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월10일치 일간지엔 ‘박(근혜)-문(재인) 증세 정면충돌’(), ‘증세 충돌… 2년 만에 리턴매치’() 등의 제목이 1면 머리기사로 올랐다. 증세를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못박은 박 대통령의 발언과, 이미 청와대가 서민 증세를 하고 있음에도 “증세 없는 복지를 얘기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문 대표의 주장을 대조적으로 다룬 것이다.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된 다음날인 2월9일, 서울 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만 들렀던 관례를 깨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도 참배하고 있다. 참배를 둘러싼 보수 진영의 공세에서 벗어나, 제1야당의 대응을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집중하려는 의도란 해석이 나왔다. 국회사진기자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된 다음날인 2월9일, 서울 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만 들렀던 관례를 깨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도 참배하고 있다. 참배를 둘러싼 보수 진영의 공세에서 벗어나, 제1야당의 대응을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집중하려는 의도란 해석이 나왔다. 국회사진기자

기대만큼 문 대표의 등장을 바라보는 당 내부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친노(노무현계)의 수장’이면서 ‘유력한 대선 후보’란 이중적 평가 안에 그를 향한 걱정이 함축돼 있다. ‘친노-비노’란 분열적 계파 구도에 묶여 당 내부의 갈등을 잠재우지 못한 채 여권과의 대치 전선에 집중하는 모습이 부각되면 대권 후보로서의 위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무기력이 팽배했던 당의 숨통에 통합과 혁신의 동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다음 정권을 맡길 만한 대안과 실력을 증명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우상호 새정치연합 의원은 “당 내부의 비노 진영을 어떻게 다독이고 갈지가 중요하다. 당 내부에서 파열음이 나올 수 있는데, 친노 수장으로서 당 통합의 시험대에 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권 후보로서의 품격이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에선 대표 선거 2위를 했던 박지원 의원의 ‘41.7% 득표율’의 경고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새정치연합의 다른 재선 의원은 “우리 당의 비노 그룹의 정서가 그 정도 된다는 것을 문 대표가 절감해야 한다”고 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조차 “내용적으론 문재인 의원이 졌다고 해도 될 만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개혁 이미지가 부족한 박지원 의원한테 득표율 3.5% 차로 간신히 이겼기 때문”이란 것이다. 선거 당일 “6~7% 차로 이길 것 같다”는 친노 핵심 노영민 의원의 전망보다 차이가 더 좁혀진 결과다.

‘41.7%’는 문 대표에게 ‘친노의 수장’에서 ‘제1야당의 통합 대표’로 이미지를 확장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당에서 친노계에 대한 비판의 지점은 대체로 2012년 총선과 대선 패배에 대한 친노계의 성찰 부족, 문 대표 주변의 일부 친노 인사들의 배타성과 폐쇄성, 내년 총선 공천권을 가진 당권과 차기 대권 후보 등 ‘아랫목 권력’을 다 쥐려 한다는 친노의 독점적 욕심 등으로 모아진다. 당에선 친노계가 이런 비판의 일부가 틀렸다고 느끼더라도, 문 대표가 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문 대표가 공약으로 제시한 중앙당 권한 분산, 투명한 공천 시스템 실현 등 제도적 장치를 넘어 의원과 당원을 폭넓게 만나는 정서적 교감까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 선거 이후 당내 갈등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노-비노 구도’ 대립이 극심했던 탓이다.

혹독한 여의도 정치인의 길로

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을 도운 핵심 인사의 얘기다. 문 의원을 찍지 않은 쪽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박지원 의원은 결과를 수용했지만 허탈해하고 승복하지 못하는 당원들이 있다. 그래도 문 대표에게 표를 준 일부 당원들의 마음엔 ‘친노계가 대표가 되는 것이 썩 좋지 않지만 지난번 우리의 대선 후보인데, 대표 선거에서 떨어뜨려 우리 손으로 대선 후보 한 명을 없애버리면 아까운 것 아니냐’는 심리도 작용했다. 박지원 의원을 찍은 당원들은 ‘대권 후보가 아닌 사람이 당대표가 되어 차기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왜 친노계가 다 먹으려 하느냐’는 반발 심리가 있었다고 본다. 여전히 문 대표 이후의 분당 가능성을 걱정하는 당원도 많다. 이런 당심을 어떻게 다룰지는 문 대표의 정치력에 달렸다.”

문재인 대표(오른쪽) 등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지도부가 2월1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표(오른쪽) 등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지도부가 2월1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 대표는 일단 내년 총선의 공천을 관리할 당 사무총장에 손학규계인 양승조 의원(충청), 여당을 협상 파트너로 삼아 당의 정책을 지휘할 정책위의장에 정세균계로 불리는 호남의 강기정 의원, 수석대변인에 박지원 의원과 가까운 호남의 김영록 의원, 또다른 대변인에 김근태계인 유은혜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총재로 있을 때 정치계에 입문한 김현미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친노계 의원을 배제하고 여러 계파를 두루 포용하면서 전당대회 과정에서 확인된 친노에 대한 호남의 반감 정서까지 다독이는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당내 갈등은 여러 계파의 고른 당직 안배로만 정리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당의 선택 과정에서 의원들의 이견이 분출될 때 이를 조정하는 것이 리더십의 요체다. 친노계인 홍영표 의원도 “문 대표가 드디어 혹독한 여의도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계파 분열을 막는 것은 문 대표에게 시급한 문제이지만 기본적인 과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의 통합을 통해 계파 갈등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씻을 순 있어도 이것이 정권을 맡기는 국민적 선택까지 끌어내는 매혹적 요인은 아닌 탓이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나라 운영권을 놓고 겨룬 문 대표는 그런 경력에 걸맞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요구는 그간 야당 대표들에게 모두 제기된 것이지만 ‘대권 재수’를 넘보는 문 대표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제1야당에 대한 시선이 더 빠르게 냉랭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최근 “신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대통령에 당선돼 새 정치를 펴고 국민이 잘 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수석부장은 “대선에서 진 후보에겐 패자의 이미지가 씌워진다. 그런데 다시 대권에 나오려면 그럴듯한 명분을 보여줘야 한다. ‘반박근혜’로는 안 된다. 레임덕이 시작되면서 여당에서도 ‘반박근혜’ 전선이 형성되는 흐름이 있지 않나. 문재인만의 콘텐츠(정책) 차별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지지 받으면 친노-비노의 구도 희석돼”

권철현 전 주일대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진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 총재가 된 이후 비서실장을 맡아 2002년 대선을 치른 경험이 있다. 당시의 이회창 총재와, 대선에서 패한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가 돼 차기 대선을 다시 내다보는 점은 유사하다.

권 전 대사는 “처한 상황은 비슷한데 그땐 이회창 중심으로 당의 결속력이 강했다는 차이가 있다. 문 대표가 당 내부의 반대파에게 틈새를 주지 않고, 당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여 항전을 가속화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 당 내부의 반대파보다 국민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할 ‘살아 있는 정책’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소득 주도 성장을 이끌 경제정당’을 대표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는 “신자유주의 성장 정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소득 주도 성장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 안정, 교육·의료·통신비 인하 등을 포함해 지금보다 가처분소득(쓸 수 있는 돈)을 더 올리는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복지 축소 주장과는 확실히 선을 그으면서 경제성장에도 유능한 면모를 보여줘,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승리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뜻이다.

우상호 의원은 “소득 주도 성장 이론을 어떻게 보여줘 국민을 설득할지가 중요 포인트다. 정책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 내부의) 친노-비노의 구도도 희석될 수 있다”고 했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간 의제 주도권 자체를 여당에 뺏기는 경우가 많았고, ‘추상적 담론’을 뒷받침할 ‘디테일 승부’(구체적 정책)에서 여당에 밀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우석훈 부원장은 “우리 당에 경제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걱정이다. 문 대표가 경제정당을 내세웠지만 아직 그게 어떤 그림인지 잘 잡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고위직 출신 인사는 “문 대표의 소득 주도 성장은 재벌 중심의 성장이 아니라 개개인의 소득이 오르는 방식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가 (학계 등의 인사가 모인) 스터디그룹에서 계속 경제 공부도 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2030년까지 국가 비전을 제시한 ‘2030 정책’을 만들 때 문 대표가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내년 총선까지 14개월

이제 문 대표는 증세 논쟁, 4월 재·보궐 선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논의 국면, 야권 내부의 신당 창당 움직임 등의 흐름을 헤쳐가야 한다. 내년 4월 총선까지 남은 14개월이 정치인 ‘문재인의 운명’을 가늠할 시간이라는 데 정치권 안팎의 이견이 별로 없다. 총선에서 지고 당을 살리는 데 실패하면 “문재인의 시대적 역할은 거기가 끝”이란 발언을 스스로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거기’가 대선 가도를 향한 정치인 문재인의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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