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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리만 하던 그, 쓴소리 총리되겠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불통 정부’의 ‘소통 총리’ 되겠다는 포부 밝혀… 지난 9개월 동안의 발언 통해 살펴본 본 책임 총리의 자질
등록 2015-02-07 12:08 수정 2020-05-03 04:27
2월9~10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도덕성’과 ‘능력’이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 지명되자마자 언론은 앞다퉈 검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이 후보자의 논문 표절과 차남의 병역 면제, 차남이 증여받은 경기도 성남 분당 땅의 투기 의혹 등이다. 이러한 보도들은 주로 후보자의 ‘도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이 후보자의 ‘능력’은 어떨까? 고위 공직 후보자에게 도덕성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국정운영 능력’이다. 이 후보자 본인도 지난해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줄줄이 낙마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능력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2015년 대한민국이 국무총리에게 요구하는 능력은 크게 두 가지다. 야당과의 소통, 그리고 꽉 막힌 대통령에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강직한 태도다. 이 후보자도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야당과의 소통을 늘리고 대통령께 쓴소리를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능력이 ‘불통 정부’라 불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로 꼽혀온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은 이완구 후보자가 지난해 5월8일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취임한 뒤부터 지난 1월2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날까지 이 후보자의 공식 발언(각종 회의, 기자간담회, 라디오 인터뷰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다. 그의 과거 행태를 되짚으면서 앞으로 그가 국무총리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과연 ‘책임 총리’가 될 수 있을까? _편집자
이완구 총리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완구 총리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4년 5월8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로 취임한 이완구 후보자의 첫 일성은 이랬다. “건전한 당·정·청 긴장관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께 어려운 고언의 말씀을 드릴 생각이다.” 그동안 여당이 대통령의 입김에만 휘둘려왔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당 원내대표로 활동해온 약 9개월 동안 대통령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쓴소리를 해봤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야당과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청와대를 방어하는 데 전력을 다했던 것이 이완구 원내대표의 행보였다. 9개월 동안 벌어진 굵직한 사안마다 이 후보자의 태도가 어땠는지 그의 발언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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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후보자가 원내대표에 취임한 직후인 5~6월 동안 그가 각종 회의나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강조했던 것은 ‘적폐 청산’과 ‘국가 대개조’였다. “한국이 압축성장을 하면서 많은 적폐가 쌓였다”거나 “국가 대개조라는 명제 속에서 국회 운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이 후보자는 각종 공식 석상에서 ‘개조’라는 단어를 5~6월에만 최소 39번, ‘적폐’는 최소 17번 사용했다. ‘국가 개조’를 앞세워 그동안 쌓여온 ‘적폐’를 타파하겠다며 국정 혁신을 다짐했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형적인 코드 맞추기 행보였다.

지난해 5월11일 원내대표에 취임한 뒤 처음으로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행보’에 대한 기자들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이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이라는데 내가 잘 안다. 그런 분 아니다. 아주 세심한 분이다. 내가 도지사 시절 200억 기금을 마련해 결식아동을 돕는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당시 박근혜 당대표가 전화해서 칭찬을 했다. 그때 ‘소외된 사람들 생각하는 것도 간단치 않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통령이 소통하지 않는다’는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 여론에 대해 나서서 반박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대통령 맞춤식 발언에 익숙한 그

이 후보자는 원내대표 취임 뒤 가장 큰 현안이었던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해 정부의 각 부처들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 비판이 청와대까지 가닿지는 않았다. 지난해 5월9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그는 “청와대의 지시만 기다리는 듯한 정부 각 부처의 자세에서 아직도 보신주의나 무사안일, 건성건성, 대충대충 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5월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1기 내각은 각료들이 조금 소신과 전문성과 책임의식이 결여되지 않았으나,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무능하게 움직인 것은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 발언이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 결여로 줄줄이 낙마하는 과정에서도 이 후보자는 이들을 적극 감쌌다. 안대희 후보자 지명에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진솔한 자세로 국민의 마음을 읽은 인사”라고 평가했고, 안 후보자의 재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에도 “그런 문제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안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지명된 문창극 후보자가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종교단체의 장로로서 한 좋은 의미로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평가했다. 문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서는 당시 새누리당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기도 했는데, 이 후보자은 이들에게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혹시 이 후보자가 밖에서는 여당 원내대표로서 대통령을 엄호했지만, 대통령과 만나서는 비판 여론을 경청할 것을 조용히 건의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한 다음날인 6월25일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고 돌아온 이 후보자는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해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말씀은 거북스러워서 제가 말씀 안 드렸다. …마음도 상하셨을 텐데 거기에 누가 어떠니, 그런 이야기는 올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여론과 소통하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겠다’던 다짐과는 정반대되는 행보인 셈이다. 이후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에 대해서는 5일 뒤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현재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문제적 총리 후보자들 감싸기에 바빠

지난해 11월 말 불거진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정치적 책임’을 ‘법적 책임’으로 변질시킨 청와대의 프레임을 그대로 뒤좇았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12월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갈 길 바쁜 저희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두 협조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말 산적한 국정 현안에 여야 공히 진력하면서 정치 공세는 지양해야 한다”고 방어했다. 12월5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도 “문서 유출의 본질은 문서 유출이다. 그리고 공무원의 비밀 누설이다. 이것이 변질돼 ‘십상시’ 등 과도한 야당 정치 공세가 나오는 건 전형적인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정윤회 사건에 대해 특검 등을 요구하는 야당에 대해서는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도 안 끝났는데) 촐싹댄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난해 12월7일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오찬에서는 ‘각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박 대통령 앞에서 “대한민국 참 어려운 날, 힘들게 이끌어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의원 여러분이 먼저 박수 한번 보내주시죠”라고 제안하는 등 ‘각하’라는 표현을 3번이나 사용했다. 이날 발언으로 이 후보자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각하라고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좌우 진영을 떠나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됐던 지난 1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여론과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각계각층의 여러 가지 바람들을 많이 반영한, 진일보한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소통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신 것에 대해서 대단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문고리 3인방은) 수족일 뿐이다. 그걸 자꾸 여러분들 왜 (내보내라고) 그러나? 좀 유치하지 않나? 그건 유치한 거다.”

신년 기자회견 이후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내려앉았다. 박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요 이유로는 ‘소통 미흡’과 ‘인사 문제’ 등이 꼽혔다. 여기에는 청와대에 적절한 충고를 하기보다 청와대를 미화하고 청와대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기에 바빴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책임은 전혀 없는 걸까. 그는 지난 1월23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에도 지난해 5월 원내대표 취임 때와 같은 말을 했다. “대통령께 직언하지 못하는 총리는 문제가 있다.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그런 총리가 돼야 한다.”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지난 9개월 동안 보여준 그의 행보에 담겨 있다.

새정치연합과의 소통 지수는 높아

청와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직언 총리’에 대한 기대가 낮은 것과는 달리, 야당과의 소통 측면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여야를 막론하고 무척 높은 편이다. 이 후보자가 지명된 직후 야권에서는 대야 관계에 대해 “친화력 있는 스타일이고 매우 노련하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실제 이 후보자가 야당과의 협상을 주요 업무로 하는 여당 원내대표로 활동한 9개월 동안의 발언을 살펴봐도 이전의 여당 원내대표와는 달리 야당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6월9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막 취임한 박영선 원내대표가 여야 원내대표 정례회의를 제안하자, 이 후보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박영선 원내대표가 하자고 그래서 ‘아이, 하자. 제가 원하는 바다’라고 반갑게 화답의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여야 원내대표 간 ‘주례회동’이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음날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의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야당 의원들을 존중하겠다. 깍듯하게 모시겠다”고 했다. 진정성 유무를 떠나 기존에 야당의 목소리를 무시해왔던 강경파 여당 원내대표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특히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과거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을 연상시키는 ‘새민련’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앞으로 새민련 말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부탁한다. 본인이 원하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줄여서 새정치연합, 본인이 불러달라는 대로 하는 게 예의다“라고 공식 석상에서 몇 번씩 강조하는 등 야당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동안 지난한 과정을 밟았던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는 이 후보자가 노련한 정치인으로서의 협상력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1차·2차 협상 결과에 대해 야당의 거부와 유가족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여당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수사권·기소권 불가’라는 방어막을 끝까지 내놓지 않은 것은 일종의 ‘성과’였다. 이 협상에서는 오히려 야당이 여당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자신들이 합의한 결과마저 두 번씩 뒤집는 혼란을 보여 여론의 비판을 자초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자는 “야당도 새누리당과 함께 중요한 국정의 한 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계속 국정의 한 축으로 존중해가면서 인내심 있게 야당과의 대화를 하도록 하겠다”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초반에 협상을 주도했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그는 “같은 원내대표 입장에서 가슴이 무척 아프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안을) 추인받지 못하고 끝내 이 자리를 내놨다는 것은 협상 파트너로서 대단히 마음이 아프다”고 위로했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12월24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8개월 동안 원내대표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스스로 야당과의 소통에 힘썼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야당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인정했다. 과거 원내대표가 야당 원내대표 방을 거의 찾지 않은 것에 주목해 10번 넘게 야당 원내대표 방을 찾아가 회담을 했다. 스스럼없이 거기 찾아가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도 많이 가니 야당도 운영위원장 방에서 하자고 할 정도로 벽을 허물었다.”

야당하고만 대화하는 자리 아닌데?

지난 1월2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에도 그는 야당과의 소통을 유난히 강조했다. “소통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야당이다. 야당을 이기려 하지 않는, 야당을 이해하는 정부(를 만들겠다). 제가 원내대표 하면서 야당을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 생각했다. 야당 원내대표와 함께 자장면을 시켜 먹으면서까지 십수 차례 함께 회의를 했다. 야당을 이기지 않는,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필요하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완구는 친화력이 있다. 정말 하려고만 한다면 현재 박근혜 정부의 문제인 소통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소통의 핵심인 야당·언론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책임 총리까지는 완벽하게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전보다는 비중 있는 총리가 될 거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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