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지지율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수 있다. 다만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정치학자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이끈 요인이 다소 치명적이라는 데 우려를 표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고매하게 하늘 세계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가 이제 인간의 세계로 끌어내려진 느낌이다. 독야청청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했으나 이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풍문이더라도 대통령의 사생활까지 시중에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역대 대통령 2~3년차엔 없던 일이다. 지지율 하락의 내용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낮은 두 돌째 지지율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찌라시 소문’으로 세탁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40% 붕괴’는 이런 의혹의 세탁으로도 씻어내지 못한 후유증이다. 박 대통령의 당선 두 돌인 지난해 12월19일 나온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선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국정 지지도가 37%에 그쳤다. ‘잘 못하고 있다’는 비율은 52%에 달했다. 한국갤럽의 매주 정례조사에서 30%대 수치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갤럽 조사에서 지난해 10~11월 45~46%의 안정적 지지율을 보이던 수치가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이 터지면서 크게 떨어진 것이다. 21쪽의 ‘표’는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았던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50대 이상 유권자층에서도 지지 이탈을 보인 게 ‘40%’가 허물어진 배경이 됐음을 설명해준다. 수도권과 40대에선 이미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었고, 여기에 더해 영남과 50대 이상이 뒤늦게 지지 이탈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 두 돌째 지지율과 비교하면,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낮고 노무현·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높게 조사됐다(22쪽 표 참조).
이번 지지도 하락의 특징은 낙폭이 컸으며, 박 대통령 지지도의 마지노선(40%)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과 고정 지지층의 견고함이 헐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 데 있다. 정치컨설팅업체 ‘민’의 윤희웅 여론조사분석센터장은 “전통적 여권 지지층도 국정 성과에 따라 이탈할 수 있으며, 국정 운영에 문제가 드러나면 이런 이탈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떠받치던 지지층에서도 부정 평가가 상승한 이유는 뭘까. 대구·경북 지역의 여론 흐름을 주시해온 김태일 영남대 교수의 진단은 이렇다.
“영남에선 대개 박 대통령의 원칙, 애국심, 헌신의 이미지에 대해 지지를 해왔다. 비선 실세 논란은 권력이 사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인데, 이건 박 대통령을 지지하던 이유와 상반된다. 특히 대구·경북은 (집권세력에 대한) 어떤 외부적 공격이 있어도 잘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번 파문은) 여권 내부의 난맥상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야당이나 종북세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지를 보낼) 논리가 부족해지니 지지층 내부가 흔들린 것이다.”
사라진 ‘플러스 알파’, 이탈하는 중도층박 대통령의 ‘만시지탄 리더십’이 ‘콘크리트 지지율’의 균열을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국 수습의 때를 놓치고 현안을 뭉개고 가는’, 만시지탄의 정국 운영 스타일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윤 센터장은 “지지층들이 지지를 유보할 (악성) 요인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하고 언론도 ‘(청와대가) 잘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지지층조차 힘을 실어주기를 주저하게 됐다”고 했다.
새누리당 지지도를 더해 박 대통령 개인이 추가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플러스 알파’의 매력이 힘에 부친 상황이란 분석도 있다. 취임 1년차인 2013년에 50~60%대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와 국무총리 인사 파동 등으로 40% 중반까지 내려왔다가 최근 30%대까지 일시적으로 후퇴한 흐름까지 보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지지가 우리 사회에 25~30%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대선 득표율이 51%였던 박 대통령이 30%대까지 떨어진 건, 지지층의 유입보다 이탈이 많아진 역전 현상 때문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지지도를 만들어내는 ‘플러스 알파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플러스 알파’ 상실의 이유를 이렇게 보았다.
“집권 2년차 후반이 되면 원래 지지층이 점차 이탈하기 시작한다. (경제 등) 국정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대통령이 제시한) 약속들이 국정 운영 전반에서 파기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고 있다. 민생경제가 심각해지면서 (박 대통령을 지지한) 자영업자들의 반란도 일어나고 있다. 장사가 안 되니까 자영업자들의 지지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복지에 대한 약속도 깨지니까 중도층도 이탈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권이 뭔가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는데 그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니까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해 들어 보수 지지층 일시적으로 재결집장덕현 한국갤럽 여론조사부장은 “취임 초기엔 경제 회복, 전반적인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그 기대감이 상실되면서 (지지도가) 완만하게 추락하고 있다. 소통 미흡, 인사 문제 등에 대한 부정 여론이 높다”고 했다.
박 대통령 당선 2년에 대한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공직자 인사(60%), 국민 여론 수렴(57%), 복지정책(51%), 경제정책(49%)에서 응답자의 절반을 웃도는 비율이 부정 평가를 내렸다. 외교정책만이 긍정 비율이 절반을 넘어 60%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새해 들어 40%대로 올라서는 흐름을 다시 보인다. 한국갤럽이 1월6~8일 진행한 조사에서도 국정 지지도가 40%로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지층 균열이 시작된 이상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직후처럼 50%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윤 센터장은 “국정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기반한 상승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은 이슈에 보수 지지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시적으로 재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 개입 의혹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잠복돼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숨은 의혹이) 다른 악재와 만나면 지지도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 개입 의혹이 사실일 것이란 여론이 여전히 50%에 가깝고, 이 의혹을 조사한 검찰 수사를 불신하는 여론도 60%에 육박한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어서다.
향후 박 대통령의 지지도에 영향을 미칠 몇 가지 정치적 변수가 있다.
우선 여권 내부의 주도권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북송금에 대한 수사를 놓고 노무현 정부의 여당 내부가 균열되고, 이명박 정부에선 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놓고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가 충돌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에 악영향을 준 전례가 있어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김무성 대표에 맞서는 친박계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아, 계파 갈등이 격화하면 지지층의 추가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정치 복원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오히려 지지율 회복과 경제 회생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의견도 경청할 대목이다. 김형준 교수는 “정치를 정상화하지 않고 경제를 살리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예를 들어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지 않고 경제활성화법 통과를 위한 협조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청와대가 자기는 개혁 주도 세력이고 나머지는 개혁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청와대도 개혁 대상으로 여겨 문제가 있으면 쇄신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치를 무시하는 행정 독주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정이 정치를 압살하는 시대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 복원이 지지율 회복이자 경제 살리기물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야권의 존재감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여러 ‘인사 실패’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은, 야권이 집권여당에서 이탈한 세력을 끌어당길 대안이 되지 못한 측면도 크다. 청와대로선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부추길 위험 요인(야권에 대한 신뢰감)이 제거된 상태를 오랜 기간 누려온 것이다. 김태일 교수는 “경쟁 세력인 제1야당과 진보정당이 앞으로도 대안 세력으로서 보이지 않으면 대통령의 지지를 잠정적으로 거둔 이들이 여권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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