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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 편인가

6년 전 노동부 국장 시절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에 앞장선 이기권 장관,

그때 그 안 갖고 돌아와 노동자들 다시 궁지로 몰아넣어
등록 2015-01-07 15:08 수정 2020-05-03 04:27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2월4일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혁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중·장년 기간제 근로자는 법의 기간 제한과 상관없이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만큼, 당사자 동의 등 일정한 보완장치와 연계해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2월4일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열린 노동시장 구조개혁 토론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중·장년 기간제 근로자는 법의 기간 제한과 상관없이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만큼, 당사자 동의 등 일정한 보완장치와 연계해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그 당시에 통계가 한계가 있어서 97만 명 중에 기간 제한이 제외되는 부분이 얼마인지 추정을 못해서 정확한 통계를 발표를 못한 부분에 대해서, 예측을 정확히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겠습니다. 정말 사과드립니다.”

2014년 7월8일 국회에서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이기권 후보자는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마지못해 사과를 했다. 이기권 후보자가 사과하기 전 은수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이렇게 비판했다.

“(2008년 7월에 만나) ‘비정규직법 흔드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랬더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저한테 뭐라고 그랬냐면요, ‘그럴 일 없습니다’ 이렇게 답변하신 거를 저는 생생하게 기억해요. 제가 이기권 국장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짓을 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주무 국장으로 그 짓을 하셨습니다. 사과하십시오.”

과장된 100만 해고 대란설의 조력자

이기권 장관은 6년 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이었다. 2008년 3월 근로기준국장이 된 그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비정규직법)의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개정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이영희 장관은 “(2009년) 7월이면 사용기간 2년이 되는 비정규 노동자 100만 명이 정규직 전환이냐 해고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주장하며 ‘100만 해고 대란설’을 만들었다. 당시 주무 국장이던 이기권 장관 역시 2009년 2월 기자 브리핑에서 “7월 한 달 안에 한꺼번에가 아니라, 이후 ‘1년 사이’에 차례로 해고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거들었다.

노동부의 ‘100만 해고 대란설’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 해고될 것이란 노동부의 ‘엄포’와 달리, 조사 결과 비정규직의 60% 이상이 해고되지 않고 일을 계속했다. 여론은 차가웠다. 100만 해고 대란설을 자초한 이영희 장관은 그해 9월 퇴임을 앞두고 “결과적으로 과장되었다는 것은 수용한다”고 했다.

주무 국장 역시 2009년 5월께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떠나버렸다. 그해 7월 비정규직법의 효과가 증명되기 전이었다. 김상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비정규직 개정안을 추진했던 노동부의 이아무개 근로기준국장(나급)이 5월1일 서울지노위원장(가급)으로 승진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청문회 당시 이기권 장관은 기간제 연장 방안에 불리한 여론조사를 숨겼다는 의혹도 받았다. 우원식 의원(새정치연합)은 인사청문회에서 “2008년 9월 처음 보고할 때쯤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유지 입장에 대해서 기업과 근로자들의 찬성 의견이 40.8%와 35.9%가 있었다. 4년 연장안에 대해서는 3.4%와 2.1%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것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기권 장관은 “하나하나 통계는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변명했다.

통계는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사과는 제대로 하지 않을지언정, 그는 돌아왔다. 2014년 장관으로 돌아온 그가 꺼낸 카드는 지난해 12월29일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다. 그가 꺼내든 것은 2009년과 닮았다. 근로기준국장 때 하지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한 연장을 밀어붙이고 정규직 노동자의 근로계약 해지 요건과 취업규칙을 손보는 것이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이번 대책을 보고 “이기권 장관의 아집에서 나온 안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보면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부터 정규직 노동자까지 내용이 두루 걸쳐 있다. 35살 이상 노동자가 본인 신청 때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게 하고, 계약 갱신 횟수를 2년 동안 최대 3회로 제한했다. 계약 연장 뒤 사용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별도의 이직수당을 지급한다.

32개 업종에만 허용되는 파견 노동의 경우 55살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게는 확대하기로 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산업안전·복지·훈련 등은 불법파견의 요소로 보지 않는 안도 추진된다.

4년 기다리라니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과 절차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고용 해지의 절차와 관련 내부 규정 운영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법적 갈등을 줄이겠다는 게 정부 의도다. 또 정년연장·임금피크제 등 노사 간 뜨거운 이슈가 담긴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있는 내용을 변경할 때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등 근로시간 단축 문제도 다루기로 했다.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특위 회의에 정부 공식 의견으로 제출된다. 민주노총이 빠진 채 활동 중인 노사정 특위는 올해 3월까지 합의를 도출하기로 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기권 장관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노사정위원회에서도 그대로 추진될 거란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24일 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이 장관은 “대부분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간제 근로자 계약 기간을 현재 2년에서 늘리는 문제만 하더라도 일부 반대가 있기는 하지만 노동시장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 조사를 해보면 기간제 근로자 중 60~70%가 현 직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도 법적 제한 때문에 직장을 옮겨야 한다고 하소연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60~70%의 기간제 노동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부의 발표를 보고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2년 동안 정규직 전환만을 바라보고 살기도 힘든데 4년을 기다리라니, 희망이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엔 끔찍한 일도 있었다. 2012년 9월 중소기업중앙회에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한 권아무개씨는 지난해 9월 스물다섯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유서에 이렇게 썼다. “노력하면 다 될 거라 생각했어, 그동안 그래왔듯이. 그런데 이제는 뭘 해도 결과가 안 좋을 것만 같아. (중략) 최선을 다했다, 2년은. 그런데 아주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네. 내가 순진한 걸까?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굳게 믿고 끝까지 자리 지키고 있었던 게.”

권씨는 3개월 업무보조원 계약으로 일을 시작했다. 3개월 뒤 전문위원으로 계약을 맺은 권씨는 회사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 등 7차례에 걸친 쪼개기 계약도 받아들였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전 직장 동료는 “권씨가 2014년 1월께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성희롱 등으로 퇴사를 결심하기도 했지만, 상사로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 왜 갑자기 그러냐며 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상사들은 권씨에게 정규직 전환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며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정규직 약속 깨진 뒤 선택한 죽음

그러나 정규직 전환을 차일피일 미루던 중소기업중앙회는 권씨의 정규직 전환 시점인 2년을 이틀 남기고 지난해 8월29일 계약을 종료했다. 전 직장 동료는 “권씨가 일한 사업부 부장이 ‘인사위원회 결정으로 전환이 안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아쉽지만 다른 좋은 곳에 가서 근무해라’고 웃으며 말했다”고 전했다. 권씨는 계약 종료 기간인 8월29일 저녁 7시가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는 직장을 떠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씨가 겪은 2년이란 세월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연장 계약까지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던 그, 2년이 다 채워지는 마지막 날의 비참한 모습, 다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쉽게 말하겠지. 그 약속을 믿냐고.”(전 직장 동료)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권씨가 숨진 뒤 중소기업중앙회는 애초부터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없었다는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김제남 의원(정의당)이 공개한 중소기업중앙회의 ‘2014년 하반기 임시직 활용 승인 여부 통보’ 문건을 보면 “동일인의 누적 근로계약 기간은 2년 초과 불가”라고 적혀 있다. 또 공문은 “동일인의 계속되는 근로계약 기간은 11개월 초과 불가” “동일인의 누적 근로계약 기간이 2년 이상인 경우 무기계약 대상이 되므로 각별히 유의하여주시기 바랍니다”로 채워져 있었다. 드라마 의 비정규직 사원 장그래처럼 권씨는 애초부터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없었다.

권씨 유가족의 소송을 맡은 류하경 변호사는 “정규직 전환 시점인 2년을 꽉 채우고 해고하는 것보다 4년을 채우고 내보내면 더 충격이 클 것이다. 정부 대책은 비정규직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성희롱·괴롭힘 등 권씨 죽음에 핵심적 역할을 한 상사들은 해임됐고, 일부는 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비정규직 남용을 막겠다며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은 기업 현장에서 이렇게 왜곡되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비정규직의 사용기한 연장은 35살 이상 등 단서 조항이 붙었지만 지속적으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2년 이상 기간제 활용이 가능할 때 더더욱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되는 기업 쪽의 비정규직 남용 요인은 전혀 문제 삼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정규직 기간 제한 자체로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으로 법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지원금으로 유인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벌칙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등 대규모 정규직 전환 프로그램과 함께 해야 비정규직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노사관계 전문가도 말했다.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기간 제한을 2년으로 정한 것은 그 이상 고용하게 될 때는 상시직으로 고용하라는 게 입법 취지다. 이기권 장관에게 묻고 싶다. 노동자가 한 업무를 4년간 해야 한다면 그게 왜 비정규직인가.”

“노동의 정당한 보상”, 강조하겠다면서요?

이기권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이인영 의원(새정치연합)은 “기획재정부의 편향된 경제정책이 우리 사회를 계속 주도하게 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들이 끊어지지 않으니까 기획재정부 장관 못지않게 노동경제부 장관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대등하게 분배 구조의 개선, 임금과 소득을 향상시키는 문제,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보다 적극적으로 일자리와 임금 향상 등을 위해서 투자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권 장관의 답변은 이랬다. “기회가 되면 위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고용, 노동의 어떤 정당한 보상, 또 일자리에 대한 투자 부분을 계속 강조해나가도록 하겠다.” 이기권 장관이 말한 기회가 숨진 권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기회인지 묻고 싶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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