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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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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흔들던 MBC는 이제 없다

감시·처벌·인사 전횡으로 얼룩진 안광한 사장의 MBC,
교양제작국까지 폐지… 콘텐츠 질 저하로 시청자 이탈도 가속화
등록 2014-11-14 16:01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1월4일 아침 8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10월31일의 인사에 대해 “기준 없는 부당발령이자 보복 인사”라며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서울 상암동 신사옥 앞 광장에서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난 11월4일 아침 8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10월31일의 인사에 대해 “기준 없는 부당발령이자 보복 인사”라며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서울 상암동 신사옥 앞 광장에서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의 고마움을 잊지 말라. 지난 9월 입주한 MBC 상암 신사옥 로비에 걸려 있는 액자다. MBC의 한 직원은 이 액자를 볼 때마다 섬뜩하다. “사장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다. 너에게 월급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나 잊지 말라는 말 같다.” 안광한 MBC 사장은 ‘방송의 근원인 시청자를 바라보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일련의 행보를 보면 지금의 MBC는 힘없는 자를 어떻게 기억에서 지울까를 고민하는 방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2월21일, 안광한 사장이 선임되면서 ‘김재철 시대의 반복’은 두루 예견됐다. 안 사장은 김재철 사장 시절인 2010년, 편성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와 를 폐지했다. 또한 <pd>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의 경영진 사전 시사를 주장하면서 불방 사태를 빚었다. 한 PD는 “안광한 편성본부장 시절, PD들의 제작 자율성 침해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2012년 170일간의 파업 뒤에는 인사위원장으로 파업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징계를 주도했다. 2010~2012년 그가 보여줬던 시사교양 PD 부문의 축소와 구성원 징계라는 두 개의 행보는 사장 취임 뒤 반복됐다.

석 달 동안 7번의 ‘징계성 인사’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7일, 기자 5명을 경인지사와 미래방송연구실이라는 ‘비보도 부서’로 보냈다. 4월7일엔 2008년 방영된 <pd>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제작한 조능희·송일준·김보슬·이춘근 PD의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지 6년 뒤였고, 제작진이 정부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한 차례 징계를 했다가 1심 재판에서 ‘징계 취소’ 결정을 받고 항소심에서도 항소 기각된 징계를 다시 하겠다는 취지였다. 회사는 “2심 법원이 ‘징계 사유가 존재한다’고 판결해 판단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재징계’ 건을 두고 MBC의 한 직원은 “판결 결과가 ‘항소 기각’이고 재판부가 허위 보도가 있으나 허위 보도의 비중이 매우 작고 고의성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 글의 주제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국어능력이 떨어진다. 기이한 명분을 만들어내는 데 놀랍고 화나고 지친다”고 말했다.
이 사안으로 언론 인터뷰를 한 조능희 PD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가 떨어졌다. 그 사이 기자 1명이 보도국 안 부서이지만 아무런 업무가 주어지지 않은 부서로 발령났다. 그 뒤에도 기자 2명이 지방자치단체 관련 사업 수주를 하는 경인지사로 발령났고, 6월2일엔 박상후 전국부장의 세월호 관련 기사를 카카오톡 입사동기 단체대화창에 공유한 기자 1명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6월9일엔 세월호 보도 문제를 외부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 비판한 PD가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석 달 동안 일곱 차례의 ‘징계성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10월31일, 대규모 인사 참사가 벌어졌다. 교양제작국이 해체되면서 교양 PD들이 예능국과 콘텐츠협력국으로 흩어졌다. 기자·PD 등 12명이 신천 MBC 아카데미에서 인·적성 검사 등 직무교육을 받는 ‘교육발령’을 받았고, 기자 7명과 PD 2명이 신설 부서이자 ‘비제작 부서’인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신사업개발센터로 인사가 났다. 신사업개발센터는 서울 광화문에 있다. MBC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방안으로 신설한 중요 부서”라고 밝혔지만, 사무용 가구나 집기들을 인사 발령 이후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발령 첫날 당사자들은 이곳이 뭐하는 부서인지도 몰랐다. 이곳에 발령받은 영화 의 실제 주인공 한학수 PD는 당초 그룹 god와 관련한 다큐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었다. 발령 이후에도 이 프로그램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자기 검열의 시대 닥친 MBC

신인수 변호사는 “직종이 바뀌는 전보 발령을 내면서 일절 사전 통보나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직종 변경 등은 조합원의 의견을 참작하며 사전 통보해야 한다’는 단체협약 제26조 위반이다. 단협이 만료됐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에 비춰 ‘근로조건’과 관련한 규범적 부분은 기존 단협이 계속 효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해당 조합원의 의견을 참작해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회사의 인사 절차는 명백하게 절차적 하자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MBC 회사 쪽은 이에 대해 “법과 절차를 엄숙히 준수했다”며 “인사 발령은 경영권의 핵심으로 인사 대상자에게 사전 언질을 주거나 노사협의회에서 사전 협의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본인의 직무와 완전히 다른 직무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사 발령이 나는 것은 징계성 인사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련의 반복되는 ‘징계성 인사’는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며 권력과 대등한 관계에서 일해야 하는 언론인들을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카톡방에 기사를 공유했다, 실명 비판을 했다 등 동의할 수 없지만 이유가 명확한 인사도 있지만,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비제작 부서 혹은 비선호 부서로 가는 인사도 많다. 그럼 인사가 날 때마다 자체적으로 추측한다. 파업 참가를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건가, 시용·경력 기자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인가, 기사 방향을 두고 다퉜기 때문인가. 그러면서 스스로 발언이나 아이템을 어느 정도 검열하게 된다. 이걸 하겠다고 했다가 시비가 걸리면 상황이 복잡해지니까 아예 접는다. 그동안 MBC는 구성원들이 방송을 만들면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였다. 다툴 땐 다투고, 주장할 땐 주장하고. 건강한 토론이었고 언론사로서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반복되는 업무 배제, 업무 능력과 무관하게 공채 출신을 밀어내는 방향의 인사가 계속되면서 무력감이 점점 커진다.”
“다른 언론사에서 이렇게 의견을 물어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실명으로 하면 징계당하겠지, 혹시 나라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외부 언론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된 것도 여러 건이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로 방송을 만들어 먹고사는 방송사가 외부 인터뷰를 징계 사유로 정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참으로 교양 없는 MBC

“일련의 인사를 보면서 느꼈다. ‘부관참시’다. 이미 손발 잘려 관 속에 들어가 있는데 꺼내서 다시 한번 모욕한다. 한번 팬 놈은 계속 팬다. 당연히 조심하게 된다. 더 이상 다치지 말자고 하는 분위기도 있다. 살아남아 있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지금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토론이 가능하지도 않으니까.”
기존 기자들이 상당수 배제된 보도국은 파업 이후 들어온 시용·경력 기자들로 대거 채워졌다.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는 정치부의 국회 출입기자만 보면, 현재 8명 가운데 7명이 2012년 170일의 파업 기간 이후 들어온 시용·경력 기자다. 지난 5월7일 ‘세월호 일부 유족이 구조 작업이 더디다며 압박했다’ 등의 내용을 보도해 세월호 참사 유족 모욕 논란을 빚었던 박상후 전국부장이 총괄하는 전국부도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취재기자 전원이 2012년 이후 입사한 시용·경력 기자들로 채워졌다.
안광한 MBC 사장이 지난 9월1일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MBC 상암시대 개막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안광한 MBC 사장이 지난 9월1일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MBC 상암시대 개막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보도국의 간판 프로그램인 를 기자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한 기자는 “를 보면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보도의 편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스트레이트 뉴스의 함량이 떨어진다. 보도만 봐서는 사건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팩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신문 등 다른 뉴스를 보조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에서 일하는 기자도 “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중요한 뉴스, 사람들이 첨예하게 느끼는 뉴스는 다루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조간을 체크하고 타사를 모니터링하는 게 기자의 일이고, 우리 뉴스 가운데도 동료나 선후배에게 ‘오늘 뉴스 잘 봤다’는 문자도 서로 보내는 게 기본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안 한다. 보다보면 자괴감만 느끼고 엉망인 뉴스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절차라서 스스로도 외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집에서 가족들이 를 보고 있으면, ‘뉴스는 SBS’라고 말하며 채널을 돌려버린다”고도 했다. “채널을 돌리면서 참담함이 매우 크다. 자괴감도 정말 크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10월31일 인사의 또 다른 핵심은 ‘교양 없는 MBC’다. MBC는 애초 10월24일 발표한 조직개편안에서 교양제작국 해체를 밝혔다. 10월24일 조직개편을 통해 교양제작국 소속 PD 19명을 예능국 산하 제작4팀(7명), 콘텐츠제작국(12명)으로 분산하면서 ‘교양제작국’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가운데 제작 PD 3명을 편성국 송출 담당 부서로 발령냈고, 제작과 관계없는 경인지사로 1명, 신사업개발팀으로 1명, 교육발령으로 2명을 보냈다. 교양제작국에서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던 PD 31명 가운데 22%에 해당하는 7명이 제작과 무관한 부서로 ‘방출’됐다. 남은 24명도 예능국으로 7명, 콘텐츠제작국으로 12명, 시사제작국으로 5명을 보내면서 PD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현실에서 발 뗀 뉴스, 외면할밖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인사는 2012년 시작된 ‘시사교양국 해체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MBC는 2012년 4월 구성원들이 파업하는 도중에 <pd> 등을 만들던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했다. 한 PD는 “60명 넘는 PD들 가운데 10명쯤은 아예 제작에서 배제됐고 나머지 50명도 35명은 교양제작국으로, 15명은 시사제작국으로 한 차례 쪼갰다. 그리고 이제 그나마 큰 덩어리던 교양제작국도 다시 뿔뿔이 나눴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는 ‘노동자의 힘 분산’에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노조 깨뜨리기’라는 분석이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관계자는 “시사교양 PD들은 사내외적으로 비판적 의견을 많이 내왔다. 그 조직을 아예 깨뜨려버렸다. PD는 기자직군에 비해 수가 적다. 소수 직군을 흔드는 방법은 조직을 흔듦으로써 쪼개버리는 것이다. 국이 달라지면서 인사도 쉽게 하기 어렵고, 자주 만나서 일상적으로 의견 교환을 하기도 어렵다. 문제를 공유하는 것도, 문제에 대한 대응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기자직군은 꾸준히 경력기자를 충원해 ‘단일성’을 깨뜨린다. 보도국 전체가 제작 거부를 하는 일 등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MBC가 만드는 방송 콘텐츠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MBC 기자조차 보기 괴로워하는 뉴스를 전문가들 역시 외면하고 있다. 9월 시사주간지 (제364호)이 조사한 ‘한국사회 신뢰도 조사’ 가운데 언론매체와 관련한 조사에서 MBC는 신뢰하는 매체 6위였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2위였다. 8월31일 발간된 (제1298호)에서 실시한 ‘2014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의 언론매체 영향력 및 신뢰도·열독률 조사에서도 MBC는 영향력이 2013년 3위에서 2014년 4위로, 신뢰도는 4위에서 6위로 떨어졌고, 열독률은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MBC는 2010년까지 같은 조사에서 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MBC를 모두가 외면하는 것은 제작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방송을 만드는 구조를 MBC 경영진 스스로 완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MBC의 뉴스가, 또 <pd> 같은 프로그램이 성역과 금기에 도전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제작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알고 현장의 생동성을 반영하는 구조를 스스로 폐했다. 지금 MBC 경영진이 관심 있는 것은 가급적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현실에서 발을 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자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답답함과 죄책감, 안광한의 노림수

MBC는 이런 조직개편과 인사 조치의 목적으로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 강화 △수익성 중심 조직으로 재편 △조직 효율화를 들었다. 이성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아무리 매체 환경과 수익 구조가 나빠져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이다. 회사의 조직개편에 공영성은 빠졌다. 수익성도 담보되지 않는다. 수익성을 위해 만든 신사업개발센터 같은 부서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기자·PD들을 데려다놓고서 창의적이면서 수익까지 창출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가. 감시와 처벌·인사 전횡은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자신을 보호하게만 만들 뿐이다”라고 말했다.
황우석의 거짓말을 밝혀내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던 MBC는 이제 없다. 제작에서 배제된 이는 “손발이 묶여 답답하다”고 말했다. 제작을 하고 있는 이는 “파업 이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해고됐거나 제작에서 배제된 구성원에 대한 죄책감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10·31 대규모 인사 조치를 한 ‘안광한의 MBC’의 속살이다. 그가 ‘음수사원’의 정신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는 과연 누구일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pd></pd></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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