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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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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로 증거 확보하려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 연내 선고 가능성도 생겨…
정부 쪽, 위헌성 판단하려면 ‘숨겨진 목적’ 파악해야 한다 주장
등록 2014-11-11 19:07 수정 2020-05-03 04:27
종교·시민사회·학계·정치권 관계자 130여 명이 지난 11월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원탁회의를 열어 ‘헌법 정신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한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진보당을 해산하면 그 칼끝은 다른 진보정당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시민사회, 국민 모두에게 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종교·시민사회·학계·정치권 관계자 130여 명이 지난 11월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원탁회의를 열어 ‘헌법 정신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한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진보당을 해산하면 그 칼끝은 다른 진보정당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시민사회, 국민 모두에게 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계를 떠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11월4일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통합진보당 쪽 증인으로 나섰다. 최근 투병(급성면역결핍) 중이란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아픈 몸을 끌고 나왔다. 그는 “민노당은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 목표였고, 북한의 지령으로 창당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진보당의 강령이 민노당 시절과 거의 같다고 설명했다. 민노당 창당 주역인 그의 증인 출석은 진보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그간 헌재에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정부는 북한 수령론을 추종하는 ‘주사파’들이 전민항쟁 등 폭력혁명을 동반해 남한을 북한식 사회주의국가로 만드는 ‘숨은 목적’을 위장하려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민노당을 창당하고 지금의 진보당을 장악했다고 본다. 진보당을 넘어 민노당 시절부터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위헌이라는 주장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재벌경제는 합헌인가?”

따라서 지난해 11월5일 정부가 헌재에 제출한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향후 결과는 이런 의미를 포괄하게 됐다. 22%에 가까운 정당지지를 받았던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정당 14년이 체제 전복 세력의 활동으로 평가받아 통째로 부정되느냐,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지 않으면 정당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제8조의 엄격성의 빗장이 풀리느냐.

청구인(법무부)과 피청구인(진보당) 변호인단은 1년간 법리 논쟁을 벌였다. 정부는 진보당 강령에 나오는 여러 표현들을 문제 삼았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김일성이 1945년 10월 언급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며,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이 표현을 강령에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진보당의 ‘민중주권주의’ ‘민중 중심 자립경제’는 소수 특권계급의 국민주권(사유재산권·선거권 등)을 부정하는 위헌적 발상이며, 그 근거로 강령 해설집에 “소수 특권계급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비타협적으로 싸워”라는 대목을 지목한다. ‘자주적 민주정부’도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용공정부를 세우려는 속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정부 쪽 주장이다.

진보당 변호인단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이 ‘저작권’을 가진 표현이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해방 이전인 1945년 4월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회속기록에서 “임시정부 헌법이 진보적 민주주의 기초 위에 수립된 것”이란 표현이 나오고, 1942년 김구 선생이 “진보적 민주주의 이상”이란 말을 성명서에 사용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란 책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라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민중주권도 “특권세력의 주권을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서민·농민 등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의 연방제 통일 방안과 ‘자주적 평화통일’이 북한의 고려연방제를 추종한 것이라는 정부 쪽 주장에 대해선, 미국·독일 등 세계 30여 개국이 연방제로 통일국가를 이뤘으며 상대 체제를 인정하면서 통일을 점진적으로 모색하는 연방제가 우리 헌법의 평화통일 원칙에도 맞는다고 반론을 폈다. 오히려 정부 쪽 증인들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 6·15 남북 공동선언은 위헌”이라고 말하는데도 정부 쪽 검사가 이를 막지 않은 심각성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의 이재화 변호사는 “자주적 민주정부와 민중 중심의 자립경제가 위헌이면 예속적 독재정부와 재벌경제가 합헌이란 말이냐”고 정부에 되물었다.

‘주사파 불변론’이란 궤변

정부는 강령의 위헌성을 파악하려면 ‘숨은 목적’에 다가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정부 쪽 증인으로 나섰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해산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강령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진보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려면 퍼즐 맞추기를 통해 숨겨진 목적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 핵심 사건이 ‘이석기 의원과 혁명조직(RO)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총을 들고 체제를 흔들려고 했으니 진보적 민주주의 같은 표현도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란 숨은 목적을 위장한 말이란 얘기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내란음모 사건 2심 재판부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혁명조직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으며, 내란음모도 무죄(이 의원의 내란선동은 유죄)라고 선고한 것을 근거로, “정부의 정당해산 핵심 논리가 공중분해됐다”고 주장한다.

이러자 정부가 집중 제기한 대응 논리가 1980~90년대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주사파들이 진보당에서 여전히 폭력혁명을 추구한다는 ‘주사파 불변론’이다. 정부는 지난 10월21일 16차 변론에 주사파 원조이자, 1990년대 북한의 지령으로 지하혁명조직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1997년 해체)을 만든 김영환씨를 반전 카드로 내밀었다. 그가 진보당의 일부 의원과 당직자 중에 민혁당 당원이었던 사람을 거론함으로써 민혁당 잔존 세력이 진보당을 장악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1995년 지방선거 당시 김미희·이상규 후보(현 진보당 국회의원)에게 500만원씩 지원했다. 그 자금은 1991년에 북한으로부터 지원받은 40만달러와 민혁당이 각종 재정사업으로 번 돈이 섞여 있었다”는 김씨의 발언은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북한 자금을 받았다’는 제목으로 보도되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진보당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에서 김씨가 “(자금이 후보들에게 잘 전달됐는지) 지하당 조직이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으며, (전달됐다 해도 북한 자금의 일부가 섞인 것을 후보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한 발언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현재 두 의원은 “북한 자금의 1원도 구경하지 못했다”며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진보당 쪽 변호인단은 정부가 객관적 증거 없이 1980~90년대 혁명을 꿈꾼 이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억지 주장을 전개한다고 말한다. “주사파 대부(김영환) 전향했는데 합법 정당에 들어온 이들은 왜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느냐”는 것이다. 민노당이 선거로 집권한 브라질·베네수엘라 좌파정권을 견학하며 이들을 모델로 삼은 집권전략 보고서(2009년)를 낸 것을 볼 때 “폭력혁명이 아닌 선거로 집권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재화 변호사는 “집권전략 보고서를 내기 위해 2007년 실시한 대의원·중앙위원 설문조사에서도 90% 이상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정당 후예, 새누리당도 해산돼야”

이제 헌재는 11월25일 양쪽의 최종 변론을 듣고 변론을 종결한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정당해산 여부의) 연내 선고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하면 진보당이 해산된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있는 유럽평의회 자문기관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일명 베니스위원회)는 “정당해산은 민주적 헌법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의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헌법이 보장한 권리와 자유를 손상시킨 경우”만 예외적으로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헌재는 진보당의 머릿속 ‘숨은 목적’을 철퇴시켜달라는 정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까, 정치적 다원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죽이려는 시도를 막아달라는 진보당 쪽 목소리를 들어줄까? 진보당의 변호인단은 헌재에 제출한 변론서면에 이런 취지의 내용도 남겼다. “진보당의 위헌성 판단 범위에 민노당 시절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정부 잣대라면 12·12 쿠데타(1979년), 내란을 일으킨 전두환 정권이 세운 민정당의 후예인 새누리당도 해산돼야 한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해산 청구권을 가진 정부가 공정한 기준을 (진보당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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