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67일째인 9월30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참사 진상을 밝히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표 참조). 두 당이 4명의 특검 후보군을 합의해 1차로 추리면 특검추천위원회가 2명을 고르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한다는 게 주요 합의 내용이다. 특검 후보군을 압축할 때 유족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로 미뤘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요구가 수용되지 못한 유족들은 여당의 반대로 특검 후보군 압축 과정에서 참여가 배제될 수도 있다. 또 진상조사위의 자료 제출과 동행명령 요구에 거부할 경우 강한 제재를 가해 조사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여당이 난색을 표하는 등 논쟁거리를 남겼다.
꼬인 정국 더 꼬이게 한 양대 교섭단체이 정도의 합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이념적 대립, 국회 가동 중단의 사태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은 극한 분열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협상 과정에서 보인 혼돈의 책임을 지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결국 사퇴한 새정치연합의 내상도 깊다. 특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정국 혼돈은 당연한 듯 운영되는 또 하나의 정치제도에 대한 의문도 품게 한다. 양당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회 교섭단체의 독점적 논의 구조는 정말 효율적인가? 특별법 협상에서 보듯, 두 교섭단체(새누리당·새정치연합)만의 폐쇄적 논의가 정국을 더 꼬이게 하고 있진 않나?
우선 국회 교섭단체가 무엇인지 보자. 19대 국회에는 의원을 보유한 4개의 정당(새누리당·새정치연합·정의당·통합진보당)이 있다. 이들 정당이 국회 운영, 세월호 특별법 같은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을까? 아니다. ‘20명 이상의 의원을 가진 정당’만이 국회 교섭단체 자격을 얻어 국회 운영에 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또는 소수 정당끼리 의원 20명 이상의 일시적 단체를 만들면, 그 단체가 교섭단체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의원 20명 기준’으로 제한하면 논의 주체 수가 줄어들어 논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교섭단체가 되고, 의원이 5명씩인 정의당과 진보당은 비교섭단체가 된다.
의원이 많다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것인 만큼 이들이 국회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문제는 교섭단체 권한이 비대하고, 비교섭단체는 국회 운영에서 사실상 ‘죽은 정당’에 가까울 정도로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이다.
교섭단체는 본회의장 좌석 배치부터 정기국회·임시국회 등 국회 운영에 관한 모든 일정, 본회의·대정부 질문 순서와 발언 시간까지 정한다. 의정 활동의 핵심인 국회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을 누가 할지와 각 상임위의 총인원수, 각 상임위의 정당별 배정 의원 수도 교섭단체가 모여 결정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지난 6월 진보정당의 중요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 비교섭단체 배제를 확정하자, 정의당이 크게 반발해 결국 비교섭단체 1명을 환노위에 넣게 한 일도 있었다. 교섭단체는 입법 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연구위원도 지원받는다. 정당에 분기별로 주는 국고보조금 차별도 심하다. 가령 100원을 나눌 때 두 교섭단체가 50%인 50원을 먼저 떼어가 반반씩 나눈 뒤, 다시 모든 정당이 남은 50원 중 25원을 의석수, 나머지 25원을 최근 총선에서의 정당득표수 비율에 따라 나눈다. 비교섭단체는 “처음부터 (100원을) 의석수·정당득표수 비율대로 배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언론이 종종 틀리는 것 중 하나가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란 표기다. 국회는 정기국회와 임시국회 초반에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에게 ‘연설’이란 이름으로 40분의 시간을 주지만, 비교섭단체 대표에게는 ‘발언’이라 낮춰 부르며 15분 정도만 준다.
그럼 교섭·비교섭단체를 가르는 ‘20인 기준’은 국제적 기준일까?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는 교섭단체가 되는 특별한 기준이 아예 없고, 노르웨이는 의원 1명, 일본은 2명, 벨기에·스위스·오스트리아는 5명, 캐나다와 스페인은 12명과 15명이 교섭단체 기준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우리처럼 20명이지만, 이들 나라의 의원 총수에서 차지하는 교섭단체 기준(20명) 비율은 각각 3.5%와 3.2%로 낮다. 의원 총수가 300명인 우리나라의 교섭단체 기준 비율은 6.7%다. 교섭단체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두 정당 지지 않는 시민의 뜻은 소외돼지금의 ‘20명 기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국회 해산과 유신헌법 선포를 단행한 이후, 국회를 대신한 비상국무회의가 1973년 2월 강압적으로 국회법을 개정해 만들어졌다. 새 정치세력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려고 9대 국회부터 시작된 20인 기준이 41년째 유지돼왔다.
무엇보다 현행 교섭단체 제도의 문제는 이번 세월호 특별법처럼 정국의 주요 법안을 다루는 협상 과정을 양당이 독점한다는 점이다. 양당이 충돌할 때 완충·중재 역할을 할 제3의 협상 주체가 없는 것이다. 특히 비교섭단체가 창조적 대안을 갖고 있더라도 협상 탁자에 내밀 기회조차 없다. 교섭단체가 합의를 발표할 때, 나머지 정당들은 발표장을 기웃거리며 비로소 내용을 알게 된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비교섭단체가 논의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넘어, 두 교섭단체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유권자의 민의가 의회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게 본질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교섭단체 기준을 의원 5~10명으로 낮추거나, 교섭단체제도를 없애 각 정당의 원내 지도부로 구성되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의사 일정을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한편으론 ‘둘의 합의도 어려운데 셋, 넷이 모이면 더 시끄러울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양당 중심의 밀실 논의가 그간 정국을 어떻게 파행시켰는지 고려하면, 현행 교섭단체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흥미롭게도 교섭단체 기준을 10명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한 의원이 제1야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두 교섭단체만의 독점적 협의의 비효율성’을 절감했다는 박기춘 새정치연합 의원이다. 그는 향후 교섭단체 문턱을 낮추면 가치·정책 지향이 뚜렷한 제3, 제4의 정치세력이 활성화되고, 그렇게 되면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도 어려워져 장기적으로 ‘합의 정치’로 가는 발판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 법안에는 새누리당 의원(김성태·강석호 등)도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박 의원은 “어느 한쪽의 교섭단체가 흑백논리로 협상에 나서면 어떤 것도 합의될 수 없고 정국이 막힌다. 둘이 협상하면 (지금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시하는 게 쉽지만, 3~4명의 원내대표가 모여 협상하면 하나의 정당이 나머지 정당들을 무시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둘보다 셋, 넷의 정치세력이 협상할 때 힘들 수도 있지만,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근본적으로 제도를 고쳐야 하는데 교섭단체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유신시대 때 만든 20명 기준이 지금까지 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다양한 세력 논의, 더 좋은 대안 나올 수도”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현행 교섭단체 제도가 효율적인가? 양당이 공개하지 않고 논의하다보니 갈등 비용과 시간 비용을 더 치른 것 아니냐. 교섭단체 기준을 낮춰 다양한 세력이 논의하면 훨씬 좋은 대안이 제시될 수 있고, 합의의 과정을 밟기 위해 (밀실 논의가 아니라) 공청회 등 공개적 논의 구조로 나아갈 수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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