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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정치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노숙농성, 거리단식에도 근본적 해결 않은 채 갈등 부추기고 굴복을 요구하는 정치의 민낯
등록 2014-09-03 17:52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울 광화문광장부터 청와대 앞까지 걸어가본다. 222년 전인 1792년, 조선 임금 정조는 벼슬 없는 영남 선비들이 1만57명의 서명을 받은 상소문(약 100m 길이)을 들고 왔다고 하자, 그들을 궁궐 안으로 불러 밤새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등이 전한다. 2014년 8월 말. 동조단식하는 시민, 단식기도를 하는 신부·수녀, 노숙농성하는 세월호 참사 유족, 단식하는 진보정당 의원들이 문 닫힌 궁(청와대)으로 향하는 길바닥 위에 있다. 정치가 사회적 문제를 푸는 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회 현안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한쪽의 굴복을 요구하는 비정한 정치는 국민을 쪼개고 갈등을 부추긴다. 사진 3컷을 통해 정치 부재 상태를 들여다본다.

사회 현안을 거리로 내몰고

사진❶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이 가능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정문에서 100여m 떨어진 곳이다. 8월29일 현재 8일째 노숙농성 중이다. 지금 이 사진을 보는 이들도 훗날 이런 사진이 찍히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의 가족이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사회적 현안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정치가 돌파구를 열지 못해 사태가 장기화되면 결국 이들 유족처럼 거리에서 처절하게 외칠 수밖에 없는 정치 기능 상실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는 불순세력으로 매도되거나, ‘노조원 출신이라느니, 이혼했다느니’ 따위의 개인사를 거론하며 당신이 그런 요구를 할 자격이 있느냐는 엉뚱한 물음을 받을 수도 있다. 근본적 해결보다 대립 전선을 그어 ‘적’과 ‘아’를 만들고 상대를 고립시켜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집권세력의 해결 방식에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서울 용산 참사 유족 중 한 명인 정영신씨의 얘기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랑 다른 사건인데, (정부·여당이 대처하는) 방식은 똑같다. 어린 생명들이 죽었는데 이것마저…. 여론몰이가 우리 때와 비슷하다. 그 사건(용산 참사) 이후 정부의 과잉 진압이 문제라는 국민적 여론과 참사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자 ‘이 사람들은 생존권 투쟁을 한 게 아니라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여론몰이를 했다. (사안을) 뭉개고 덮으려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 대한 대처는 달라야 하는데. (정부가) 또 다른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송호진 기자

송호진 기자

진영 대결을 부추겨 한쪽을 무릎 꿇리려는 정치의 심각한 이상 증세가 세월호 참사에도 투영되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정파적 사건이 아닌데도 박근혜 정부가 진영(대결)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월호 사건마저도 박근혜 정부가 체제 전복 세력이 단결해 정권을 위협한다고 판단하고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며 강공으로 가고 있다. 전형적 냉전 논리다. 유신적 사고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진영 논리를 내세워 적들을 완전히 타도하거나, 양보하더라도 정치·사회적으로 모멸감을 주고 최대한 힘을 빼낸 뒤 선심 베풀듯 주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군주제에서 군주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도전자를 없애고, 도전자가 요구한 일부를 ‘나(군주)의 이름’으로 시혜 베풀듯 시행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민주정’의 외향을 띠지만 내용적으로는 군주제로 가는 건 아닌가 하는 냉소적 생각이 든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는 있으나 공화는 없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노숙농성, 거리단식 상황까지 치닫는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정치가 초래한 단면이란 분석이 많다. 정치학자인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게 정치다. 사회 갈등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자체가 정치적 불안정은 아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입장차를 서로 확인하고 논의하면서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상대를 짓눌러 상황을 넘기는 굴복 강요의 정치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며, 다른 사회 갈등이 생기면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념적으로 양분돼 있어서 ‘너희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한쪽을 굴복시키는 자체가 어려운 정치 환경이다. 그렇게 하면 반대편의 결집 효과를 부르고,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간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조 교수는 “야당을 몰아세우면 정부·여당이 유리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 통과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도 구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여권이 야당을 몰아세우지 말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학자인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정치의 나쁜 형태인 ‘편가르기’가 한국 정치의 문제라며, 한쪽이 득을 보면 한쪽이 일방적 타격을 받는 ‘제로섬 정치’로 흐르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그는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내세우지만, 정치체제로서의 민주는 있으나 공화는 없다”고 말했다.

“다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데, (권력을 쥔 쪽은) 다수결 원칙의 전횡을 부리고, 소수파는 이를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토론·숙의·견제·균형을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화제’의 핵심이 우리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쥔 권력을 자기중심적으로 비정하게 휘두를 때의 위험성을 깊이 자각하는 ‘정치적 이성’의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란 얘기다.

“모질게 문전박대하는 대통령”

사진❷: 국회의원들의 청와대 앞 단식농성을 두고 찬반이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단식농성을 했던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의견을 내면 될 것 아니냐’고 다그칠 수만은 없는 정치 구조를 이해할 필요도 있다. 국회는 원내 정당들이 대등하게 논의하는 구조가 아니다. 의원 20명 이상을 가진 정당만이 원내 교섭단체 자격을 얻어 국회 의사일정과 주요 쟁점 법안을 독점적으로 논의한다. 정의당·진보당 같은 비교섭단체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폐쇄적 논의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양당이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언론에 발표하는 순간 합의 내용을 알게 된다. 협상 과정에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정의당은 유가족이 참여하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가 특검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수사권·기소권을 보장하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거대 양당의 협의 테이블에서 배제됐다. 세월호 참사처럼 사회적으로 큰 현안의 경우 비교섭단체까지 포함해 논의의 틀을 넓히거나, 근본적으로 교섭단체 구성 의석 기준을 크게 낮추는 등의 정치 개혁이 없다면 비교섭단체 원내 정당이 강경으로 흐르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단식 9일째이던 8월28일,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의 입술은 물기가 증발된 듯 바짝 말라 있었다. 우린 땅바닥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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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정당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고 있고, 인근에선 유족들이 노숙농성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나와본 적이 있나.

=“아무도 안 나왔다. 인간의 도리가 안 됐다. 유족이 범죄자도 아니고, 단순 민원인도 아니다. 정부의 무능·무책임으로 아이를 잃은 피해자다. 이렇게 모질게 문전박대하면 비정한 대통령으로 인식될 수 있다. 웬만하면 정무수석이나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한테 위로라도 건넬 텐데 지금까지 일절 그런 게 없다.”

-세월호 참사가 진영 대립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부·여당이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대한 실질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섭단체이다보니 특별법 논의에 끼지도 못했다. 여야 협상 과정은 어떻게 보나.

=“처음부터 우리가 밀실 합의를 중단하라고 한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우려해서다.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관심사다. 다른 야당, 시민사회 등에 논의 구조를 개방하고 확대해 공론화 절차를 거쳐 국민의 감시와 압력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폐쇄적인 논의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유가족이 느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대안을 찾자는 특별법은 유족의 제안과 수백만 국민의 특별법 서명으로 시작된 법안이다. 법 제정은 국회가 하지만 사안의 특수성을 볼 때 유가족과 협의가 처음부터 이뤄졌다면 이 문제가 훨씬 빨리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참사 4개월 만에 유족을 만나고,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해결사식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유족을 실질적 협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노숙농성하는 유족들과도 여러 차례 만났을 텐데, 유족들은 어떤 얘기를 많이 하나.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눈물을 흘리고, 청와대에서 유족을 만났을 때 어깨를 안으며 ‘유족 뜻이 먼저’라고 했는데, 그런 모습들을 떠올리며 너무 분해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실망감도 많이 얘기한다.”

-단식농성하면서 정치는 어때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을 텐데.

=“정치는 결국 국민을 보고 하는 것이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말을 보탰다. 그는 “단식하는 것이 좋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공통분모를 찾는 게 민주적 방식인데 그게 되지 않고 있고, 양당 중심의 구조에서 우린 무엇이 논의되는지도 모른다. 몸을 던져서라도 비정한 정부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소통은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사진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특별법 문제에 주체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청와대 근처까지 다다르다 담장 앞에서 멈춰섰다. 청와대 분수대 근처엔 국민의 소리를 전하는 신문고(북)가 전시돼 있다. ‘이 북은 전시용이니 두드리거나 울릴 수 없다’며 ‘출입금지’라고 쓴 푯말이 북을 향한 접근을 막아세운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북채도 없는 (전시용) 신문고가 불통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소통의 정치’를 원하는 시민들의 소리로 채워진 광화문광장~청와대 앞의 공간을 눈으로 하나하나 목격하는 여든 살의 독일인 목사가 보였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파울 슈나이스 목사(오른쪽 아래 사진)였다.

박원석 의원실 제공

박원석 의원실 제공

1975~84년 일본에서 독일의 ‘동아시아 선교회’의 파견 선교사로 활동하던 슈나이스 목사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현장에서 취재하도록 독일 기자에게 알려 피로 물든 광주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76년 6월 ‘3·1 민주구국선언’ 때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된 김대중·함석헌 등의 재판 과정을 직접 참관하며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는 작업을 하다가 당시 군부에 의해 입국 거부와 추방을 당한 적도 있다. 2011년엔 ‘제5회 오월 어머니상’과 ‘5·18 재단 인권상’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를 보려고 일주일간 온 그를 8월29일 귀국하기 전에 잠시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소통의 본질’에 다가가기 전에 우린 몇 개의 질문과 답을 우선 주고받았다(통역은 영국 서식스대학에 다니는 최동녘씨가 도왔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얘기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보나.

=“세월호 참사가 처음엔 배가 물에 가라앉은 사고이지만, 사고 직후에 정부가 구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죽은 건 정부의 책임이다.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TV에서 (배가 가라앉는 것이) 나오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고 그걸 지켜봤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2의 광주’(1980년)라고 생각했다.”

-제2의 광주?

=“외국인이 보기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죽음을 당했다. 그때의 광주가 스스로 일어났듯 지금 시민들이 단식투쟁을 하며 일어나는 상황도 비슷해 보였다.”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청하며 유족들이 노숙농성하는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할 수 없다. 만약 독일에서 (한국 정부가 취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정당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행동에 반대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했을 것이다.”

-정치 그리고 지도자는 어때야 할까.

=“모든 정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모든 독재자는 망했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소통해야 한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소통이란 무엇인가.

=“(감추지 말고) 자신의 진짜 모습, 진짜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소통은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소통을 통해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소통하려는) 다른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처럼 울부짖고 슬퍼해야 하는데 한국의 대통령이 그걸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대통령의 모습이 진짜 얼굴이라면 상황이 더 어려워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소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인간 중심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좀더 민주화돼야 한다.”

-민주화?

=“모든 언론이 정부에 비판적일 수 있어야 한다. 내 눈엔 한국 정부와 한국인이 두려움을 갖고 있다. 북한을 두려워하거나, 돈을 잃을까 두려워하거나. 그런 두려움이 옳은 일을 하는 걸 제약하고 있다.”

-이번에 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나.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제1야당을 봤는데, 겉으로는 힘이 세 보이지만 내 눈엔 작은 정당들보다 약해 보였다. 제1야당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광화문광장에서 가슴에 ‘단식 며칠째’를 적고 단식하는 시민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국인을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만드는

그는 정치와 지도자는, 정치가 필요한 이들의 마음과 동일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유족 농성장(청운효자동 주민센터)부터 진보정당 단식농성장인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100m의 짧은 거리에 닿는 동안 기자는 경찰로부터 세 차례 신분 확인을 요청받았다. 내국인이 통제가 필요한 불온한 대상이 된 사이, 관광버스를 타고 청와대 앞까지 온 외국인들은 왁자지껄하며 청와대를 관광기념 사진의 배경으로 담고 있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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