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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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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지붕의 기둥 금강송의 나라

천혜의 소나무와 정겨운 마을 공동체·흥미로운 옛날이야기가
그득한 생태관광지,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등록 2014-08-01 15:05 수정 2020-05-03 04:27
금강소나무숲길은 자연 그대로의 옛길을 복원했다. 생태적으로 경관적으로 빼어난 길이 이어진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자연 그대로의 옛길을 복원했다. 생태적으로 경관적으로 빼어난 길이 이어진다.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금강소나무숲길(경북 울진군)은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한가운데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금강소나무숲길 누리집에서 신청해야 예약할 수 있고, 숙소가 필요한 경우 이곳에서 배정해주는 민박집에서만 묵을 수 있다. 탐방예약가이드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탐방객은 하루 80명으로 제한된다. 또한 숲 속에서는 반드시 해설사의 안내를 따라야만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세심한 절차와 준비 과정에서 생태관광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성을 느낄 수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은 국내 생태관광의 모범사례로 숲을 지키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금강소나무숲길은 거점 마을인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된다. 휴일인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예약한 방문자들이 두천리의 작은 주차장에 모인다. 안내인 역할을 하는 숲해설사가 방문자를 정겹게 맞이한다. 숲해설사는 탐방객이 위험한 길에서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걷도록 인도한다. 또한 탐방객에게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들려주며 금강소나무숲길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숲길에 들어가기 직전, 숲해설사의 목소리가 두천리에 퍼졌다. “한 줄로 서서 순서대로 숫자를 외쳐주세요. 시작!” 하나, 둘, 셋… 탐방객들은 숫자를 세며 오늘 하루를 함께할 사람들을 확인한 뒤 숲길로 들어섰다.

<font size="3">산양 발자국 따라 들어선 소나무숲길 </font>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나는 숲길의 초입에서는 산양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금강소나무숲에 대단위로 서식한다. 산양이 금강소나무숲의 바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관찰과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2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산양 화석과 현재의 산양 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낙락장송 금강소나무와 닮았다. 보부상들의 옛길은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굽이굽이 이어진다. 이를 본받은 금강소나무숲길은 그만큼 완만해 남녀노소 걷기에 무리가 없다.

보부상들이 어깨를 짓눌려가며 넘었던 십이령고개 중 4고개가 금강소나무숲길 제1구간에 있다. 그중 해발고도가 높아 새도 쉬어간다는 의미의 샛재. 이 고개를 넘어가면 조그만 기와집이 보인다.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듯 야생화가 기와 위에 무성하다. 당신도를 모셨다고 해서 ‘조령성황사’라고 부른다. 보부상의 안전과 성공적인 상행을 기원하며 보부상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지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중수 때 기부한 1200명의 명단이 적힌 15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조령성황사 바로 밑에 남아 있는 구들장과 밑 빠진 무쇠솥은 이곳에 옛날 보부상들이 들렀던 주막이 자리해 있었음을 알려준다. 높디높은 금강소나무들을 양옆에 끼고 길을 따라 할머니 보부상과 말의 안타까운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를 지나면, 울진의 옛 화전민의 흔적이 드러난다. 화전민들은 1968년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숲에서 쫓겨났다. 너삼밭에서 다시 옛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디딜방아와 신발, 그들이 먹던 소주병만이 남아 옛 화전민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이라도 소나무 뒤에서 사람이 일어나 디딜방아를 구를 것만 같은 생생한 광경이었다.

몇백 년씩 살아온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몸통은 그러한 광경을 둘러치고 있어 마치 든든한 울타리 같다. “조선시대부터 왕실용으로만 쓰이던 이 나무를 이른바 ‘왕의 나무’라 하면서 베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곽순영 숲해설가의 설명대로,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조선시대부터 국가가 철저히 관리해왔다. 조선시대 왕실이 지정한 국가산림보호구역의 경계를 알리는 황장금표를 바위에 음각해, ‘소나무를 보호한다는 경계령’을 내린 것이다. 또한 민간의 출입을 통제했으며, 몰래 나무를 베는 사람은 곤장 50대의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오늘날 울진 금강소나무숲은 소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상들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조령을 지나서 한참을 내려오면 제법 큰 물줄기가 나타난다. 대광천이다. 이곳을 따라 아래쪽으로 걷다보면 숲 속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발견할 수 있다. 비탈길을 올라 넘게 되는 이곳은 너삼밭재라는 곳이다. 너삼은 ‘고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고개 주위에 고삼이 많이 서식해 너삼밭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너삼밭재를 넘어서 좁아진 길을 걷다보면 저진터재가 나타난다. 저진터재야말로 마지막 고빗사위라 할 만하다. 비가 오지 않아도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무성하게 들어선 나무는 울진에 내려진 폭염주의보가 무색하도록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하얗게 색깔을 바꿔 곤충을 유인하는 개다래꽃, 꽃처럼 생긴 보라색 잎사귀를 가진 산수국, 그 외 여러 종류의 버섯 등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한창 더울 오후 3시 저진터재에서는 냉장고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신기하게도 항상 이 시간에 유난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요. 길 걷느라 수고했다고 사람들을 토닥이듯이 말이에요.” 동행한 하용태 숲해설가는 말했다. 오전에 저진터재를 지날 때는 잠잠했던 바람이, 돌아오는 길에서는 시원하게 불어온다.

<font size="3">고개 넘으면 시원한 막걸리 파는 예스런 주막이 </font>

금강소나무숲길의 끝에는 십이령 주막이 탐방객을 반긴다. 하루 발품으로 얼굴이 익어버린 탐방객들은 소광리 주민들이 직접 빚은 막걸리를 마시며 열을 식힌다.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로 지진 파전과 함께 들이켜는 막걸리는 고개를 넘느라 흘린 땀마저 산뜻하게 날아가게 한다. 두천리에서 시작된 1구간은 소광리 십이령 주막에서 여정을 마치게 된다, 이 주막은 과거 십이령길 중간에 있던 옛 주막을 그대로 복원했다. 금강소나무숲길이 개통된 뒤 주민들이 정부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공모사업에 신청해서 만든 것이다. 십이령 주막 바로 앞에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소광리 금강송펜션도 있다. 이처럼 금강소나무숲길의 거점인 소광리에는 밥과 술을 비롯해 잠자리까지 마련돼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에는 산림 속에서 살던 화전민들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화전민들의 디딜방아를 탐방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에는 산림 속에서 살던 화전민들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화전민들의 디딜방아를 탐방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소광리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산간 마을이다. 1985년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마을 주민인 박월선씨는 “가마를 타고 옛날 방식으로 이곳에 시집왔다”고 했다. 박월선씨의 나이가 40대 후반이라는 것을 보면, 소광리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라고 자연이 꽁꽁 숨겨놓은 지역인 듯하다.

소광리는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의 종착지이자 3구간의 출발지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인 두천리∼조령∼저진재∼소광리 코스는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길이다. 이에 비해 3구간은 소광리∼저진터재∼금강소나무생태림으로 금강소나무숲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코스다. 남한 최고의 금강소나무숲이 펼쳐지는 길이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친숙한 나무로 애국가에 언급될 정도다. 이런 소나무 중에서 줄기가 가장 잘 뻗어나가 곧고 붉은 빛깔이 도는 것이 바로 금강소나무다. 가히 소나무 중의 소나무로 대접받는 금강소나무는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국가가 관리했다. 왕실의 목재 공급지로 ‘황장금표’를 바위에 새겨 국가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했던 것이다. 소광리는 조선의 산림 보호에 관한 문화유적이 유일하게 2곳이나 남아 있다.

이렇듯 3구간에서는 금강소나무의 온전한 모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코스의 절정은 금강소나무 군락지에서 펼쳐진다. 소광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깊은 산속에 있는 오지였기에 일제강점기의 엄청난 소나무 수탈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금강산으로부터 왔다고 ‘금강소나무’, 강해서 ‘강송’, 경북 봉화의 춘양역에서 금강소나무를 서울로 많이 배달해서 ‘춘양목’, 유난히 노란 빛깔을 띠는 송진이 노란 창자 같다 하여 ‘황장목’. 금강소나무는 이렇듯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받아왔다.

<font size="3">여정 내내 포근하게 느껴지는 주민들의 마음씨 </font>

금강소나무 군락지 입구에는 안도현 시인의 ‘울진 금강송을 노래함’이라는 시비가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금강소나무와 일반 소나무의 특징을 비교한 전시관이 있다. 맞은편에는 수령이 530년 된 ‘오백년소나무’가 있다. 500여 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숲의 진짜 주인이다.

소광리 주민들은 이 나무를 ‘신송’(神松)이라고도 부른다. 웅장함을 넘어선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예로부터 사람들이 여겨왔던 것이다. 이 일대의 금강소나무는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 안아도 끝이 닿지 않을 만큼 웅장하다.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살펴보고 되돌아나오는 것으로 3구간은 마무리된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울창한 대자연의 깊은 맛과 경관, 그리고 사연 깊은 문화·역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방문자들이 얻는 것은 생생한 경관의 추억만이 아니다. 탐방객이 하루 머무는 민박집에서는 집주인의 넉넉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탐방객은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여행의 모든 과정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한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 탐방객부터 숲길에 익숙한 숲해설사까지 한마음으로 발을 맞추는 모습에서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진다. 이처럼 금강소나무숲길의 관리, 운영, 안내까지 마을 주민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탐방객도 금강소나무의 넉넉한 품을 만끽하며 이 자연과 주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된다. 우리가 꿈꾸었던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울진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울진(경북)=글·사진 김란향·권민희·장나래·최민영 생태관광 청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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