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권은희 전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출마시키려고 지도부가 공식 접촉한 시점이 7월8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이전부터 권 전 과장이 졸업한 전남대 법대와 사법고시 선배인 최재천 의원을 메신저로 삼아 출마 권유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수학교사를 했던 권 전 과장의 부친이 딸의 정치 참여에 꽤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최 의원은 “사실 이번 재보선에 서울 서대문을이 포함됐다면, 기동민 후보와 권은희 전 과장이 서울 두 곳(서대문을·동작을)에 쓸 카드였다”고 했다. 서대문을이 제외되면서 이런 구상도 어그러졌다. 그 와중에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하며 경선을 요구했고, 지도부는 천 전 장관의 공천을 배제하는 이중효과까지 노리며 권 전 과장을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으로 내려보냈다. 지도부와 가까운 인사는 “권은희 정도가 아니면 (천 전 장관 등이 신청한) 광산을을 정리하기 어렵다고 봤다”고 말했다.
종자가 되는 과일은 먹지 않는다최재천 의원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에 대한 은폐·축소 의혹을 제기한 권 전 과장 영입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여성 법률가(권은희)가 거대한 관료조직, 국가조직에서 정의로운 경찰권을 행사했다. 정의와 공정성을 원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그의 그런 점이 야당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재·보궐 선거를 보면 올드보이가 귀환하거나, 당직자들이 공천을 나눠먹는 등 계속 얼굴을 내밀던 사람들이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로운 변화를 어느 한 사람(권은희) 정도를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권은희 본인은 조금 손상이 가는 점이 있겠지만.”
최 의원이 마지막 말에서 우려를 조금 표명했듯, ‘권은희 공천’을 두고 당 안팎의 논란이 많다. ‘권은희 증언’의 힘은 어떤 정파에 속하지 않은 객관적인 증언이라는 믿음이었다. 이는 권은희 증언이 야권과 결탁한 것이라는 여권의 억지를 차단하는 두터운 힘이었다. 하지만 “출마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지난 6월30일 경찰에서 사직한 권 전 과장이 야권의 후보로 나서는 순간 그 증언의 의미가 일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당내에선 ‘석과불식’(종자가 되는 과일은 먹어선 안 된다는 것으로, 눈앞의 이익보다는 더 멀리 봐야 한다는 의미)이란 비판이 나온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의 얘기다. “권은희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양심의 상징이었는데, 그것을 재보선에 바로 털어먹는다는 건 소탐대실이다. 여권에 공격의 빌미를 줬다. 여권이 당장 대가성 공천이라고 하지 않나.”
서울의 한 의원은 “양날의 칼 같은 공천”이라고 했다. “권은희 공천이 수도권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역풍을 가져올 수도 있고, 순풍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양날.” 여당이 권은희 공천을 ‘추악한 정치 거래’ 따위로 몰아세우면서 여권표를 결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선이 보장된 광주에 공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당내 중진 인사가 권 전 과장을 “광주의 딸”로 표현해 문제가 된 상황에서, 이번 공천이 ‘권은희 증언’의 확장성을 광주에 가둬두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권은희 공천’으로 여권의 공세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수도권에 배치해 전선을 명확히 긋고 여권과 붙는 자신감을 당이 보여야 했다는 것이다.
천정배·기동민 배제하려는 것?정치학 박사인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권 전 과장이 좀더 정치적 중립지대에 머물러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은 뒤 다음 총선에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수도권도 아닌 당선이 가장 안정된 지역에 권 전 과장을 전략공천한 것은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천정배·기동민 등을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모양새나 명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여권의 공세가 심해지자 권 전 과장은 “우리 사회에 정의의 숨결이 멀리멀리 퍼지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거듭 다졌다. 당내에선 권 전 과장 영입을 소탐대실로 끝내지 않으려면, 국정원 대선 개입과 수사 방해 의혹의 진실을 밝히려는 권 전 과장을 뒷받침하는 지도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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