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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글로벌 ‘모던타임즈’?

브라질·중국·프랑스서 삼성전자 공장의 비인간적 노동환경 비난 거세…하루 15시간씩 서서 일해 각종 질환 호소
등록 2013-08-21 08:25 수정 2020-05-03 04:27

브라질 노동검찰이 현지 노동법을 위반한 혐의로 삼성전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고 징벌적 손해배상금 2억천만헤알(약 1210억원)을 청구했다고 외신들이 8월13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이유는 아마존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고 반복적인 생산 조립라인을 핵심 문제로 지목했다. 삼성전자 관계자의 해명은 이렇다. “전세계 모든 공장은 비슷하다. 국내에서 생산라인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해외 현지에 나가기 때문이다. 붕어빵 찍어내듯이 운영한다. 하물며 쓰레기 위치까지 똑같다.”

휴대전화 한 개 조립하는 데 85초

브라질 언론들이 공공민사소장(Public Civil Action)과 노동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니, 정말 낯이 익은 풍경이 떠오름다. 삼성전자 현지 공장 노동자들은 6초 만에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기, 이어폰, 사용설명서 등을 포장한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길게 늘어서서 휴대전화 한 개를 조립하는 데 85초면 족하다. 새로운 TV 브라운관은 4.8초마다 생산라인에 올라오고 에어컨은 2분 이내에 조립이 완성된다. 하루 종일 이런 작업이 6800차례까지 반복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1936)를 연상케 한다고 브라질 언론은 보도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브라질 노동부 감시관이 2011년 5월과 2013년 5월에 삼성전자 공장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씩 서 있는 것을 포함해, 길게는 15시간씩 서서 근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생산라인 테이블은 너무나 높고 잠시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노동자는 아침에 출근해 5분간 체조한 뒤 생산라인에 자리를 잡으면 딱 두 번 휴식을 갖는다. 오전과 오후에 10분씩. 이때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간다.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27일간 연속으로 일한 노동자도 있었다.
쉴 수 없는 상태에서 장기간 노동한 탓에 브라질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 등을 호소한다. 노동검찰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보다 병가를 월등히 많이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8명의 노동자가 지난해 요통, 염증, 근골격계 질병 탓에 최장 15일까지 휴가를 냈다. 이는 전체 노동자(5600명)의 36%나 되는 수치다. 노동부는 “생산라인이 바뀌지 않으면 5년 이내에 노동자 20%가 근골격계 질환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검찰은 임시계약직 고용도 문제 삼았다. 브라질 노동법은 고용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필요가 갑자기 발생하는 등 예외적인 상황에만 계약직 고용을 허용한다. 그러나 노동검찰은 “삼성전자가 계약직을 핵심 생산활동에 장기간 고용해, 마나우스 공장의 계약직 노동자는 터무니없이 많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감시관의 설명이다. “(계약직 노동자가 많은 상황에서) 누군가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회사는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그를 해고해버릴 것이다. 그것이 쉽고 비용이 덜 드니까.”

근골격계 질환이나 우울증 호소

브라질 노동검찰이 삼성전자 공장을 조사해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1년 9월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브라질 법정에 섰다가 50만헤알(약 3억3천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한 바 있다. 브라질 남부 도시인 상파울루에서 100km 떨어진 캄피나스 공장의 삼성전자 노동자들도 비슷한 증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에 한 여성 노동자가 한 말이다. “관리자들이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밖에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하루 10시간씩 서서 쉬는 시간도 없이 휴대전화를 조립하며 개처럼 일했다.” 다른 노동자도 1시간 할당량이 80개인 휴대전화를 90~100개까지 조립했다며 “거의 우울증에 걸릴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이 노동자는 과 인터뷰한 다음날 해고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인터뷰한 사실을 몰랐다”며 “그 직원이 근무지를 이탈해 해고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전직 노동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한 여성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왼팔에 마비가 왔다며 “머리도 빗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목 수술을 받아야 할 상태가 됐다고 30대는 말했다.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일해 팔과 목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당시 근무환경을 조사했던 노동검찰은 삼성전자의 노동강도가 높아 근골격계 질환이나 우울증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전자는 “사규를 위반하거나 격투기 중 부상을 입어 그만둔 노동자들로 착취 논란과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브라질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데자뷔가 나타났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중국노동감시’(China Labor Watch)가 2012년 9월 발표한 ‘중국 내 삼성 조사 보고서’를 보면, 중국 공장에서도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월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한다. 는 그 해 8월24일 삼성전자의 하청업체인 인탑스에서 일하는 왕청타이(23·가명)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터뷰는 밤 11시 공장 근처에서 이뤄졌음에도 그는 “1시간 전에 퇴근했다”고 했다. 이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 일했단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정상 근무시간이지만 빨라야 저녁 7시에 퇴근하고 늦어지면 밤 10~11시에 끝난다.” 그나마 그는 4년제 대학을 나온 기술자라서 나은 편이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생산하는 여공들은 하루 12시간씩 맞교대로 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케빈 슬래든 중국노동감시 간사는 당시 “브라질과 중국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고통은 비슷하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서서 일하고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고…”라고 전했다. 한 해 전 논란이 일었을 때 삼성전자는 중국 공장 250곳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으나, 슬래든은 “아직까지 공장 절반만 조사해 발표했을 뿐”이라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제외하면 브라질 노동검찰이 요구하는 노동환경 개선책은 비교적 소박하다. 노동 피로에서 회복할 휴식시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인체공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노동자가 50분 일하고 10분간 쉬도록 권장하는데 이를 법원이 삼성전자에 강제해달라고 청구했다. 이번 브라질 노동검찰의 수사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고소장을 직접 받지 못해 어떤 문제인지 잘 모른다. 문제가 있으면 빨리 개선해 좋은 사업장을 만드는 게 우리 바람”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경찰에 불려갈 수도

만약 브라질 노동검찰과 삼성전자, 미국 NGO와 삼성전자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느닷없이 프랑스 경찰에 삼성전자가 불려갈 수도 있다. 프랑스 시민단체 3곳이 지난 2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고발장을 낸 까닭이다. 이유는 허위 광고로 소비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세계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건강과 안전, 복지,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한다고 광고했지만 중국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드러나 허위로 밝혀졌다.” 고발에 참여한 프랑스 시민단체 세르파의 소피아 라흐다르 사무총장은 “검찰이 예비조사를 경찰에 맡겼다. 출발이 좋다”고 평했다. 브라질에서, 중국에서, 프랑스에서 삼성전자의 비인간적 노동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지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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