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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의견이 신문의 자유”는 틀렸다

<한국일보> 8월1일 법정관리, 5일 장재구 회장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여부 결정되면서 5일치 신문부터 정상 발행 예정
등록 2013-08-07 18:14 수정 2020-05-03 04:27
장재구  회장이 지난 7월17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장재구 회장이 지난 7월17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항시 권력을 감시하면서 민중 보호에 극력 대변하고, 자유경제사회의 옹호를 자각하면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상업 신문의 길을 개척한다.”(장기영 전 회장의 1954년 6월9일 창간호 창간사설)

“신문의 역사가 오랜 서구 언론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신문 제작·발행을 통해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도록 보장하는 신문의 자유가 언론 자유의 핵심이다. 발행인의 의견과 주장을 담은 신문으로 시장에서 경쟁, 사회적 영향력과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이 신문의 자유의 본질인 것이다.”(강병태 주필의 지난 7월30일치 칼럼 ‘언론의 자유, 신문의 자유’)

직원 201명의 신청 받아들여져

59년 전 실렸던 창간사설과는 전혀 다른 글이었다.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장재구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강 주필은 “언론의 자유는 곧 발행인의 자유”라는 내용을 담은 주장을 지면에 펼쳤다. 그의 칼럼은 이른바 ‘ 사태’의 책임을 묻는 편집국 기자들과 언론 등을 겨냥한 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독특한 언론의 자유’는 유통기한이 짧았다. 장 회장이 독단적 경영을 이어오던 에 사실상 법정관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2부(이종석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8월1일 에 대해 재산보전 처분과 동시에 보전관리인 선임 명령을 내렸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들은 편집국 기자·경영직 등 전·현직 직원 201명이었다. 이들은 채권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퇴직금·수당 등 이른바 ‘임금 채권’이 모두 95억여원이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7월24일 주식회사 의 채권자 자격으로 기업회생을 법원에 신청했다.

이날 법원의 명령으로 는 법원 허가 없이 재산 처분이나 채무 변제를 할 수 없고, 채권 가압류나 가처분·강제집행 등도 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은 현재 경영진 대신 회사를 맡을 보전관리인도 임명했다. 과거 가 (워크아웃)을 겪을 때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서 파견돼 채권관리단장을 지냈던 고낙현씨가 보전관리인을 맡게 됐다. 앞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는 2007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법정관리는 장 회장이 경영권을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법원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그를 포함한 경영진은 인사·재무·신문발행 등의 모든 경영권을 잃었다. 그동안 용역을 동원한 편집국 폐쇄, 임금 체불 등 자신을 고발한 기자들을 상대로 강공을 펴온 장 회장의 신병도 풍전등화에 놓였다. 장 회장은 8월5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노조 비상대책위원회가 장 회장이 중학동 사옥의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개인 빚을 갚아 회사에 200억원대의 손해를 끼쳤다(배임)며 고발했는데,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그가 계열사인 의 자금 13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130억원 횡령 추가 확인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사태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8월5일치 신문부터 제작도 정상화된다. 그러나 앞으로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임금 삭감, 구조조정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그래도 중요한 건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던 창간사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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