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핵심 실세인 최룡해 조선인민군총정치국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은 2011년 1월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에 견줄 만하다. 군대 실력자의 방중이라는 점과 국면 전환의 계기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것은, 지난 1월부터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의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2011년 게이츠 장관의 방중 이후 곧바로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다. 2011년 1월 버락 오바마-후진타오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부상 이후 긴장 상태에 있던 미-중 관계는 유화기에 접어들었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중국은 연례 전략경제대화를 비롯해 100여 개의 다양한 양자협력채널을 통해 상호협력 증대를 모색했다.
이뿐만 아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2011년에 ‘평화발전백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주변 국가와 평화적 관계 및 주변 환경의 안정이 자신의 경제발전과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미국 내에 만연한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은 2011년 미-중 정상회담 뒤 중국이 취했던 태도를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미국과 대화를 희망했듯, 북한도 북-미 관계 정상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이미 지난 5월23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대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북한은 전력을 집중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며, 평화로운 외부 환경을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font size="3">북한의 ‘2011년 중국’ 따라하기</font>
이런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발언은 2011년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평화발전백서’를 통해 대외적으로 표명한 입장과 비슷하다.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려는 것이 당시 중국의 의도였다면, 최룡해의 발언은 지난 1월부터 북한이 국제사회에 ‘말폭탄’을 던지면서 위기를 조성했던 것을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5월22일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중국 방문이 전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이미 북한의 의도는 간파됐다. 북한이 대화 쪽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최룡해는 김정은 제1비서의 최측근일 뿐 아니라, 북한군의 ‘핵심 중의 핵심’인 총정치국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북한군에서는 총정치국장·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이 ‘삼두마차’다. 총참모장은 군에 대한 명령과 용병 기능인 군령권을 가지고 있다. 인민무력부장은 행정과 양병 기능인 군정권을 쥐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에는 군대에 대한 정치사상 지도를 하는 기능이 따로 존재한다. 총정치국장이 그런 임무를 수행한다.
보통 사회주의국가는 당 우위의 국가다. 군대도 ‘당의 군대’라고 한다. 이런 특성에 따라 군에 당의 지도를 관철하는 기관이 총정치국이다. 북한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군대에서 총정치국을 없앴기 때문에 총소리 한 방 울리지 못하고 공산당이 해체되고 소련이 붕괴됐다’고 보고 있다. 군사력 강화보다 군대에 대한 당의 지배를 강화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총정치국은 이런 체제 유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총정치국장은 공식 의전 서열과 상관없이 사실상 2인자다. 오진우·조명록 등이 북한의 역대 총정치국장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진우는 김일성의 오른팔이었고, 조명록은 김정일 체제의 기둥이었다. 김정은 체제에서 오진우와 조명록이 바로 최룡해다.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북한이 군사위기를 조성했던 정책을 군대의 실세가 나서서 ‘전환’하겠다는 뜻을 중국에 전달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최룡해의 방중을 밝히면서 김정은의 ‘특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최고통치자의 의지를 담아 중국과 중대 결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font size="3">미-중 회담 디딤돌 삼아 북-미 대화로?</font>
최룡해의 방중 시점에서도 북한의 의도가 읽힌다. 4월까지 한반도 위기를 조성한 이후, 6월7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4월과 같은 위기 조성을 의도했다면, 굳이 김정은의 특사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도 그런 특사라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오바마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해 중국에 ‘아웃소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미 본토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한 협상이 필요하지만, 미국 내부에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강한 거부감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시리아 사태의 악화는 오바마 정부의 우선순위를 다시 중동으로 돌리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보낸 의도는 명확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통해 북한의 대화의지를 미국에 전달하려는 것이다.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앞둔 시진핑에게 대화 복귀라는 ‘선물’을 주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중국이 중재역을 해주는 것을 그 대가로 받으려는 것이 북한의 속셈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던진 메시지가 미-중 정상회담을거쳐, 다시 북-미 대화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정은 제1비서가 시진핑 주석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역할론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중국이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북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자산론’과 중국이 국제사회의 의무에 동참한다는 ‘책임국가론’ 두 가지 사이에서 결정된다. 책임국가론 측면에서 중국이 대북 제재에 나서는 모습만 본다면, 중국 대북정책에서 한쪽만 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북한이 중국의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생각은 군부와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를 중심으로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지난 5월22일 방중 첫날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인 왕자루이를 만났다. 북한의 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방북 다음날인 5월23일치 1면에 특사단의 평양 출발과 중국 베이징 도착, 왕자루이와의 면담 등 관련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지난해 8월 장성택 국방위부위원장이 방중했을 때 4면에서 단신으로 처리한 것과 대비된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왕자루이를 만나고 이 이를 대서특필한 것은, 북한과 중국이 최룡해 방중 이전에 이미 상당한 교감을 이뤘음을 뜻한다. 6·15 공동선언 실천북쪽위원회는 최룡해가 특사로 중국을 방문하는 날, ‘6·15 공동선언 발표 13돌 민족공동 통일행사를 개성 또는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이 전방위적으로 대화 공세를 시작할 것임을 분명히 내비친 것이다.
<font size="3">한반도 정세 변화 못 읽는 박 대통령</font>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던 이지마 이사오 관방장관도 지난 5월23일 “북-일 수교 협상 재개 등과 관련해 사무적 협의가 모두 끝났다”고 밝혔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시점인데, 같은 날 서울 상황은 좀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은) 계속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그런 도박을 했고, 경제발전과 핵개발을 동시에 병행하겠다는 새로운 도박을 시도하고 있다.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한반도 정세 변화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세 변화기에 한국의 주도성이 보장될 때 국익이 실현된다. 지난 5월7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 위기의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이 정세를 주도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있으니,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자꾸 정세와 엇나가는 것이다. ‘늦었다고 판단할 때가 빠른 것이다’라는 격언을 새기며, 청와대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changsoo@outl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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