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8318다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국가방사성폐기물통합정보시스템이 집계한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 규모다. 무게로 따지면 5800t이 넘는다. 핵연료봉 1다발에는 지르코늄 합금으로 만든 200개가 넘는 핵연료봉이 촘촘히 박혀 있다. 핵연료봉 안에는 우라늄 원료를 가공한 소결체가 채워진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자료를 보면, 경북 울진 3~4호기의 한국표준형 원자로에는 모두 177개의 다발이 필요하다. 16~18개월마다 전체 다발의 3분의 1을 갈아끼운다. 다 쓴 핵연료 다발은 핵발전소 안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곧 포화 상태가 될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분할지를 두고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는 가운데, 최근 핵연료봉에도 휘발유·액화천연가스(LNG)처럼 에너지 관련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른바 ‘핵연료세’다.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화석연료에 환경부담금 차원의 세금을 매기는 탄소세와 마찬가지로,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로 그 위험성이 알려진 핵발전에도 이른바 ‘위험부담금’ 성격을 띤 핵연료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의가 수면 위로 등장한 건, 지난 5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였다. 이날 토론회를 연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 의뢰한 ‘탄소세 도입을 위한 정책 방향 및 설계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탄소세와 핵연료세를 합친 이른바 ‘기후정의세’를 만들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탄소세를 둘러싼 논의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온실가스 30% 감축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선 2010년 기획재정부가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고자 한국조세연구원에 구체적인 연구용역을 맡기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이 탄소세 모델을 바탕으로 핵연료세 항목을 추가해 환경세로 운영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온실가스를 만드는 에너지원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가 도입된다면, 핵발전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해 핵발전 시설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핵발전 과정과 사용후 보관·처리 과정에서 핵사고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과 복구에 쓸 재정이 필요하다”며 핵연료세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핵연료세는 생산 단계에서 전력사업자에게 매기거나,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방법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핵연료세 도입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핵발전소가 들어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오래전부터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왔고, 실제 지역자원시설세를 통해 핵연료세에 해당하는 세금을 걷고 있다. 영광 핵발전소가 있는 전남, 고리 핵발전소가 있는 부산, 그리고 월성 핵발전소가 있는 경북 등 3곳은 1999년부터 핵연료를 지역개발세(현 지역자원시설세) 부과 대상에 포함하도록 하는 지방세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2006년 핵발전이, 2011년에는 화력발전이 부과 대상에 포함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핵발전소에서는 1kWh당 0.5원의 세금을 내고 있다.
<font size="3">후쿠시마 사고 배상비만 34조원</font>그러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기후정의세의 핵연료세 개념은 지역자원시설세와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자원시설세에서 걷는 핵연료세는 핵발전소 지역 주민의 보상금 성격으로 사용되지만, 기후정의세에서 걷는 핵연료세는 핵발전 사고 대비와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직접적인 탈핵 정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환경 특별회계를 만들어 핵발전소에서 거둬들인 세금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핵연료세로 마련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산으로 핵사고 관련 비용을 들었다. 현재 한국수력원자력 등 핵발전소 사업자는 보험회사와 사고에 대비한 손해배상보험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자연재해 등은 제외되기 때문에 정부와 원자력 손해보상계약을 별도로 맺고 배상조치 금액을 미리 정해두고 있다. 그 금액이 부지별로 약 500억원 정도로, 해외의 10%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뒤 도쿄전력은 2011년에만 34조2800억원에 가까운 배상 비용을 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핵연료세로 핵사고 관련 비용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순간에 멈출 수 없는 핵발전소의 특성을 감안한 폐로 비용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사용후핵연료와 중저준위폐기물 처리 비용 등을 제외한 핵발전소 한 기당 폐로 비용을 약 3300억원 수준으로 산출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학계 등을 중심으로 이 비용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핵연료세 도입 가능성을 따지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보고서에서 기후정의세 도입을 가정하고 산출한 세금 체계를 보면 그렇다. 현재 에너지원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원자력의 경우, 10~30%의 세율을 적용하면 1kWh당 2.5~7.5원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강만옥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입 취지가 좋다고 해도 실제 세금이 전기를 쓰는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설계된다면 과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연료세를 도입한 해외 사례에서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핵연료세가 양날의 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알려진 핵연료세 도입 국가는 독일, 핀란드 그리고 일본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2010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연료봉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의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듬해 탈핵 과정을 거치면서 전력회사들이 이미 낸 핵연료세를 환급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현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핵연료세의 위헌성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 밖에 핀란드는 우라늄 원료에 일본은 사용후핵연료에 과세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font size="3">핀란드는 우라늄 원료에 세금 부과</font>2015년에는 국내의 대표적 에너지 관련 세제인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일몰법으로 수명을 다하게 된다.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 관련 세제를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석유 에너지를 중심으로 걷고 있는 복잡한 세금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핵연료세 논의가 여전히 ‘꿈의 에너지’에 머무른 핵발전의 꿈을 깨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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