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08호 법정, 잔뜩 주눅이 들어 방청석에 앉아 있던 26살 여성은 포승줄에 묶인 오빠 유아무개(32)씨를 보고선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을 본 오빠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남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1년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오빠 유씨는 지난 2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와 2006년부터 수차례 밀입북하고 지난해까지 200여 명의 국내 거주 탈북자 정보를 북한 보위부 쪽에 넘겼다는 것이다. 유씨가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하고 있는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은 뜻밖에도, 여동생이었다. 이날 법정에서는 지난 4월12일 오빠 유씨가 동생의 인신을 자유롭게 해달라며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제기한 인신구제청구 심문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한국에 입국한 동생은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로 옮겨져 6개월 가까이 사실상 구금돼 있었다. 심문이 열리기 불과 이틀 전, 국정원은 유씨는 탈북자가 아니며, 비자 없이 입국해 체류자격이 없으니 5월23일까지 출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날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법정에 나온 동생은 선뜻 거취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한국에 거주하는 지인 등과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하고 나서야 국정원 직원 대신 오빠 쪽 변호인단을 따라나섰다. 4월2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폭행 및 회유, 협박을 당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유씨 남매가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해 강제 출국당할 수 있는 재북 화교라는 약점을 악용해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오빠 유씨는 2004년 부모와 여동생을 북에 남겨두고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입국한다. 그는 화교 신분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탈북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유씨는 북한 국적을 취득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자신이 모두 북한에서 나고 자라, 자신을 중국인이라기보다는 북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지난 4월29일 기자와 만난 여동생 유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지난해 10월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어머니가 숨진 이후 부녀는 중국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동생 역시 북한이탈주민임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 여권을 버리고 자신을 탈북자라고 신고한다.
모든 탈북자는 입국 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환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따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 수용돼 외부와 격리된 채 조사를 받는다. 진짜 탈북 주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절차다. 보통 2~3개월간의 조사 뒤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으면, 하나원으로 옮겨져 사회적응 교육을 받게 된다.
한국 땅을 밟은 동생도 합신센터에 수용됐다. 그가 생활한 곳은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있는 독방이었다. 방문은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다. 자유롭게 방문을 나설 수 없고, 방 내부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었다. 가족과 전화를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오빠 쪽 변호인단도 동생을 찾아갔지만 접견할 수 없었다. 유씨가 재북 화교임이 드러난 건 조사 보름 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오빠의 행적에 대한 추궁이 시작됐다.
“오빠가 여러 차례 북에 다녀왔느냐고 물어봐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증거가 있다며 왜 인정하지 않느냐, 똑바로 진술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했다.” 조사 과정에서 직원이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는 등 폭행이 있었다. 회유도 있었다. 국정원 쪽에서 “오빠도 다 자백했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해주면, 1∼2년만 형을 살고 나와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범)도 간첩이었지만 우리가 도와줘 잘 살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큰삼촌’이라고 부른 국정원 직원이 건네준 내용을 자신이 손으로 쓰는 방식으로 거짓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전했다. 그는 오빠를 간첩으로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CCTV를 보고 달려온 직원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거짓말을 다시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쪽에서 말을 뒤집으면 더 큰 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빠도 자백했어, 오빠 간첩 맞잖아?”수사 과정에서 유씨는 ‘오빠가 간첩’이라는 동생의 진술을 전해듣는다. 그는 동생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 같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국정원과 검찰에 동생과의 대질을 요구했지만, 끝내 대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동신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낀 건 유씨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 거주 북한이탈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펴낸 보고서 ‘북한이탈주민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172명(43.1%)이 ‘국정원 조사 기간에 직원의 언행에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지난해 이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통일부와 경기도가 경위 파악에 나선 직후, 연구원 누리집에 올려진 조사 보고서가 삭제되기도 했다.
보고서를 보면, 탈북자들은 성별로 10명 정도가 한방을 사용하다 조사 순서가 되면 개인별로 한 사람씩 독방에 들어가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조사관은 북한에서의 출생과 성장과정·가족관계·학교·직업·고향 등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서를 자세히 작성하며,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남한에 거주한 지 1년가량 된 한 50대 여성은 이런 상황을 ‘울어봤다 웃어봤다 별 생각 다 드는 힘든 일’로 기억한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조사 과정에서 기합을 받기도 했다. “사람이 이야기하다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말을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국정원 선생님이 화를 내시는 거예요. 서서 ‘일어서’ ‘앉아’ 막 이러더라고요. 죄인 취급을 하더라고요.” 보고서에는 “대부분의 심층면접 대상자들이 국정원에서의 조사 과정을 묻는 질문에 당시 일은 밖에 나가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며, 말하기를 주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2010년 합신센터 조사기간 180일로 연장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시행령을 보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은 입국한 날로부터 최장 18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를 근거로 동생 유씨를 6개월가량 합신센터에 수용했다. 이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서의 조사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서 규정한 대로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돼야 하는데, 유씨를 장기 구금하면서 다른 형사사건의 참고인 조사를 하는 것은 시설의 목적을 넘어선다”며 “간첩을 잡기 위해서도 필요한 적법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2010년 통일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을 2배로 늘렸다. 탈북자 신분조사를 강화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조처에 대해 탈북자 단체들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위장 탈북자를 가려내는 문제는 조사 기법 개선 등 역량 강화로 해결해야지, 일률적으로 조사 기간을 늘리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었다. 신낙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어 “조사 기간이 2배로 늘어나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며 “통일부가 조사 기간을 종전대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간첩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소 내용을 뒤집는 사진과 증언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소장에는 그가 지난해 1월21일 중국에 도착한 뒤 1월22일 밤 북한으로 넘어가 아버지를 만나고 회령시 보위부 사무실에 들른 뒤 1월24일 중국으로 나왔다고 돼 있다. 변호인단은 유씨와 여동생, 아버지가 지난해 1월22일 중국 옌지에서 찍은 사진과 1월23일 노래방에서 유씨가 직접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여동생과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다. 노래방에는 재중동포 지인도 함께 있었다. 지난 4월29일에 만난 이 지인은 공소장에 적시된 날짜에 유씨가 북한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진술 외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은 대부분 주관적 추측이나 전언이라고 변호인단은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런 주장에 대해 “회유나 협박을 통한 사건 조작이 있었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다. 민변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3일, 변호인단은 유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참고인의 직장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공권력의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적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재판에서 제기하면 된다”고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여성 탈북자는 약자 중의 약자”라고 지적하며 “민변과 국정원이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데, 둘 중 하나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민변 사과 없으면 명예훼손 고소”오빠 유씨는 화교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생활해왔다. 이 부분에 대한 법적 처벌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간첩만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5월1일, 구치소에 수감된 유씨를 접견한 김용민 변호사는 “유씨가 한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로, 간첩 누명이라도 벗어 하루빨리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살기만을 바란다”고 전했다. 합신센터에서 나온 동생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받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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