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부끄러운 심정이다. 그도 다르지 않을 거다.”
아네테 샤반 독일 교육연구부 장관은 2011년 3월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국방부 장관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남의 글을 무단 인용한 사실이 드러나 물러난 뒤였다. 당시 독일 학자와 누리꾼들은 일제히 앙겔라 메르켈 총리 내각 인사의 논문 검증에 나섰다. 샤반 장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월 그가 33년 전 뒤셀도르프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학위는 취소됐고, 그는 장관직을 사퇴했다.
논문 표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표절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에는 온도 차이가 큰 듯하다. 독일에서는 최근 3년 동안 논문 표절로 메르켈 총리의 측근 장관 2명이 물러났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는 숱한 논문 표절 폭풍 속에서도 정작 자리에서 물러난 고위 공직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안하다. 그저 오래전 실수일 뿐”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논문 표절을 인정할 뿐, 스스로 논문을 철회하거나 학위를 반납하는 경우는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떠들썩했던 논문 표절 사건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한 문대성 국회의원은 지난해 초 총선을 앞두고 국민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12주간 PNF 운동이 태권도 선수들의 유연성 및 등속성 각근력에 미치는 영향’(2007)으로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남이 쓴 논문의 내용을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그대로 베낀 점이 상당 부분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그에 대해 자질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는 당선이 됐고,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 “표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동아대 교수직을 사퇴하고 새누리당도 탈당했다. 그러나 의원직은 버리지 않았다.
문 의원은 예비조사 결과가 나온 뒤인 지난해 5월 인터뷰에서 “(논문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한다” “박사학위를 다시 따겠다”고 말했다. “논문에는 문제가 있지만 표절은 아니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대응했다. 그러나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본조사 결과 “논문을 표절한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윤리위원장인 이채성 국민대 교수는 “본조사 뒤에 (문 의원의) 이의 신청이 들어와 이를 검토하고 있다”며 “조사 기한은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며 책임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건국대 행정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이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학술지 논문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표절 사실을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국민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 “최근 저로 인해 국민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특히 1999년 박사학위 논문 작성 당시, 논문 작성 방법이나 연구윤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연구윤리 기준을 충실하게 지키지 못한 점,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 비서실장은 보도자료를 낸 뒤 논문과 관련해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건국대 관계자는 “(논문 표절을 인정했으니) 직접 학위 반납을 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며 “현재 교원이 아니고, 논문 자체가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 세워지기 전에 쓰인 것이라 학내에서도 적극적으로 검증하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절 적발하고도 쉬쉬하는 대학들이성한 경찰청장도 ‘공허한 사과’만 한 경우다. 그가 동국대에서 받은 석사학위 논문(1984)과 박사학위 논문(2012)이 각각 10여 쪽 분량의 선행 연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점과 인용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됐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석사 논문에 대해 “(내용이) 같다면 잘못됐다. 지적한 내용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잘못을 따로 바로잡지는 않았다. 현재 동국대는 뒤늦게 그의 논문에 대한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한 본격적인 조사가 아니라, 언론에 드러난 지적사항을 실무자가 파악하는 수준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조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학은 고위 공직자의 논문 표절 의혹이 언론에 드러난 뒤에야 뒤늦게 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논문 짜깁기’ 의혹을 받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은 지난 3월27일 한양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했다. 한양대는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예비조사 없이 본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성균관대도 최근 언론을 통해 드러난 방송인 김미화씨와 배우 김혜수씨의 학위 논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논문 표절을 인정한 배우 김혜수씨는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를 거쳐 논문 철회 및 학위 취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표절이 드러난 논문은 어떤 취소 절차를 거칠까? 학술지 등에 발표된 논문은 학회를 중심으로 한 편집위원회를 통해 취소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대학 등에서 인정하는 학위 논문은 학교 내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를 거쳐 논문의 존폐를 가리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에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라 학위를 취소한 뒤, 해당 논문을 기증한 대학도서관·국회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등에 논문 철회를 알리는 공문을 보내는 게 통상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논문 표절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는 별다른 법적 강제성이 없어 대학 등에서 교육부에 제대로 된 현황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이상민 의원(민주당)이 확보한 ‘지난 5년 동안의 대학별 교수 논문 표절 사례 및 조치 결과’가 이를 미뤄볼 수 있는 자료의 전부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대학에 공문을 돌려 수집한 자료인데, 2008년 1월1일부터 2012년 6월30일까지 모두 83명의 교수가 논문 표절로 각종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의 공신력을 깎아먹는 내용이다보니 응답을 하지 않는 대학도 있어 정확한 파악이 힘든 게 사실”이라며 “올해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전반적인 연구윤리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려 한다”고 말했다.
표절 근절도 국가가 나서야 하나이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전반적인 연구윤리를 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용역보고서 ‘학문연구윤리법 제정 방안 연구’에는 현재 과학기술기본법, 학술진흥법,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등 연구 부정행위와 관련된 기존 법 규정을 한데 묶어 ‘연구진실성 확보를 위한 법’을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연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해 노르웨이나 덴마크처럼 국가 주도형 연구윤리 감독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과학 분야의 다양한 학문을 일관된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최근 불거지는 고위 공직자 등의 논문 표절은 복잡한 법체계도 필요 없는 ‘기본적인 양심’에 비춰야 할 문제다. ‘부끄러운 심정’을 안다면 말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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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교수는 한국국제정치학회에 제보를 한 뒤, 김씨가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한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는 “사임 소식을 접한 뒤에야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 표절이 맞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그 뒤로 내 논문이 추가로 표절됐다는 내용은 아직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가 한국국제정치학회에 발표한 논문 3편은 스미스 교수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철회됐으며, 한국정치학회에서도 스미스 교수의 책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논문 2편을 조사하고 있다.
스미스 교수는 이번 일을 “한 사람의 인생과 생계가 표절 때문에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 학교(예일대)에서는 늘 학생들에게 표절물이 만들어내는 연구윤리 문제, 그리고 인용한 출처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늘 지적재산권을 심각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김 교수를 만나본 적이 없고, 그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광범위한 표절에 가담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사례가 표절이 아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떠올려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