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성매매법 때문에 경제 활력 잃었다?

등록 2013-03-03 14:55 수정 2020-05-03 04:27

이제 닻을 올리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정부 출범 초기에 향후 5년의 한국 경제를 전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상황과 함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나 경제 관련 장관 인선 과정에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살펴보면 향후 5년간의 큰 흐름을 전망해볼 수 있다.

시장주의자로 분류되는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중심이 경제민주화와 분배에서 성장으로 옮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2월20일 경제단체인 한국무역협회를 찾아 한덕수 협회장에게서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진기자단

시장주의자로 분류되는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경제사령탑인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중심이 경제민주화와 분배에서 성장으로 옮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2월20일 경제단체인 한국무역협회를 찾아 한덕수 협회장에게서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진기자단

시대적 과제 ‘경제민주화’ 팽해버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상황부터 살펴보자. 지난해부터 수출이 급감해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미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 내수 침체, 고용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이런 추세를 장기간에 걸쳐 악화시키는 고령화 충격이 빠르게 가시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곡된 형태로나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돼왔던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마저 사상 최장 기간에 걸쳐 둔화 내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장시간에 걸쳐 누적돼온 이런 추세를 단시간에 반전시키기는 어렵다.

이를 해결하려면 중·장기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단기적인 임시 미봉책과 재벌 등 기득권 위주의 정책과 제도로 서민경제를 계속 악화시켜왔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가계부채와 대외 수출 감소 등이 맞물리며 1~2년 안에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상당 부분 물이 엎질러진 상태에서 아무런 흔적 없이 물을 다시 주워담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이라도 국민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서민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켜온 수출 일변도, 재벌 편중, 부채 거품 문제 등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복지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고 하듯이 한국 경제에 닥쳐오는 이런 위기 상황이 오히려 그간 잘못된 정책 기조를 바로잡고 한국 경제의 균형을 회복하는 호기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위기에 대응하고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인수위와 경제 관련 장관 인선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큰 기대감을 갖기 어렵게 한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목표’에서 ‘경제민주화’가 빠져버린 것부터 그렇다. 복지 강화와 더불어 경제민주화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단순히 진보적 의제가 아닌 시대적 과제였다. 그런데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경제민주화 과제를 ‘팽’했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향후 어떤 길을 걸을지 시사한다.

건설 부패는 지적하지 않는 ‘시장주의자’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현 원장은 장기간 경제관료의 길을 걸으며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등 현재의 시대적 과제에 대해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보여준 적이 없다. 현 원장을 잘 아는 이명박 정부의 고위 인사는 그를 두고 ‘위에서 시키면 고분고분 따라하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영혼 없는 공무원 스타일’이자 ‘예스맨’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지명자는 향후 한국 경제에 닥쳐올 각종 위기를 적극적으로 또는 선제적으로 관리할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 더구나 간간이 드러난 그의 정책적 견해를 보면 단순한 예스맨을 넘어 한국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는 시대착오적 토건사업인 4대강 사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바 있다. 또한 한때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원인으로 민간 의욕 저하를 거론하며 성매매법과 접대비 상한제 탓으로 돌리는 등 시대착오적 인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도 정반대되는 인식이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경제위기 관리 능력도,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도 크게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화두인 부동산 정책을 총괄할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는 어떨까.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면 각종 부동산 규제로 주택 공급이 줄어 주택 가격이 뛰었다는 식의 진단을 해왔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이 많은 부분 투기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도외시한 시각이다. 유효수요가 넘치는데 그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발생한 가격 상승이라면 왜 그토록 가계부채가 급증했겠는가. 어쨌거나 규제 철폐론자에 가까운 그는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자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는 ‘시장주의자’라고 평가받았지만, 주택시장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선분양제를 폐지하자거나 건전한 시장경제의 적인 건설 부패와 담합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를 낸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가 총부채상환비율(DTI) 및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에 신중한 태도이며 주택 가격의 하향 안정화에 동의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인식으로는 향후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고 1인 가구 급증 등 인구구조 변화에 걸맞은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복지 재원을 확보하는 역량 부족해

복지 문제에 관해서는 기초연금 지급 문제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부의 재원 마련 의지와 능력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선 당시 제시한 공약을 실천하려면 향후 5년간 134조5천억원, 연평균 26조9천억원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런 재원 마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 단독주택과 대기업 보유 부동산의 과표를 현실화하고 양도소득세와 임대소득세 등을 제대로 거두면 연간 20조원 이상을, 재벌 대기업에 집중된 법인세 비과세 감면 혜택을 대폭 줄이면 연간 7조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또 OECD 평균 두 배에 이르는 광의의 토건 예산을 줄이면 연간 12조원 이상 쓸 돈이 생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기도 전에 재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결국 기초연금과 4대 중증 질환 보장 공약 등에서 당초 입장보다 후퇴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나 의지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는 분명히 진일보했다. 하지만 복지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실행하는 역량은 상당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이 정도의 의지와 역량으로는 이미 무너진 민생경제와 저출산·고령화 충격을 흡수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