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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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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에 의한 막말을 위한 인수위?

등록 2013-01-01 17:52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12년 12월27일 차기 정부의 출범을 이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등 핵심 인사를 단행했다. ‘통합’과 ‘전문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보수적 색채가 강화됐다. 상대편을 끌어안는 신선한 파격은 없었다. 실질적인 권한은 오히려 친박 측근이 행사하는 구조가 됐다. 게다가 당선인의 입 노릇을 해야 할 수석대변인에는 저주에 가까운 망언을 쏟아내던 극우 인사가 기용됐다. 결국 자신을 지지했던 51%만 끌어안고 가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어 보인다.
 
실세는 ‘돌박’ 진영 부위원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2012년 10월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용준 선대위원장은 최근 인수위원장에도 낙점됐다. 한겨레 강창광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인 2012년 10월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용준 선대위원장은 최근 인수위원장에도 낙점됐다. 한겨레 강창광

인수위원장으로 낙점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서울 출신으로 19살에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고, 1960년엔 최연소 판사, 1988년 대법관, 1994년에 헌법재판소장이 됐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한 ‘스토리’도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전두환 처벌을 위한 특별법에 위헌 의견을 내는 등 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인물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언행도 그렇다. 4·11 총선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는 “가 젊은이들에게 쓴소리는 하지 않고 아첨하려고 한다. 반값 등록금이니 해서 달콤한 이야기만 들려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시 수정 논란이 거셌던 2010년 초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제출한 수도 이전 법안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면 그 위헌 결정을 피해가기 위해 만든 세종시법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종시 지킴이’를 자임하며 충청권에서 표를 쓸어담은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장에 세종시 반대론자를 기용한 셈이다. MBC 의 광우병 보도를 비판한 적도 있다.
대선 과정에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지만 사실상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일을 추진한 적은 없다. 새누리당에선 김 위원장이 74살의 고령이며 본인 역시 “여러 위원들과 논의해 인수위원장의 역할을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인수위의 실질적 권한은 진영 부위원장이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경제민주화’ 내부 갈등에서도 진영 부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김종인 위원장을 견제하고 박 당선인의 의중을 선대위 조직에 관철하는 창구 노릇을 해왔다. 진부위원장은 2004년 박 당선인이 당 대표를 지낼 때 비서실장이었다. 박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과 경쟁했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선 “현역 의원의 캠프 참여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외곽에서 박 당선인을 지원했다. 당시 그를 영입하려고 이 대통령이 적잖은 공을 들였지만 끝내 거절했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박 당선인이 그에게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된 계기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무늬만 친박’이라는 내부의 비판 속에서 ‘탈박’을 선언했다가 복귀한 ‘돌박’ 케이스다. 2012년 5월 이한구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박 당선인은 진 부위원장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박심’이 그에게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행보였다. 결국 그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 당선됐다.
 
인선도 조직도 “나는 모른다”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인수위 인선을 발표한 방식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대변인은 이날 테이프로 밀봉한 서류봉투를 들고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취재진들 앞에서 봉인을 뜯었다. 봉투 안에는 이날 발표된 인수위 명단 14명의 이름과 직책, 인선 이유 등이 적혀 있었다. 윤 대변인은 “당선인에게서 직접 받은 명단을 밀봉해 가져왔다. (발표하기 전까지) 저는 안 봤다”라고 했다. 인선의 배경과 의미 등과 관련된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그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앞서 윤 수석대변인과 유일호 당선인 비서실장 인선이 공개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은 그동안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내뱉은 윤 대변인의 인선이 박 당선인이 제시했던 ‘대통합’이라는 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답하지 못했다. 함께 발표된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특별위원회의 위상에 대해서도 인수위 산하 조직인지, 별도 기구인지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김용준 위원장조차 12월27일 연 기자회견에서 “나는 법률가 출신이라 잘 모른다”고 했다.
며칠 사이에 이뤄진 두 차례의 인사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친박 인사들 대부분 역시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반응만을 보였다.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 당선인이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인사 스타일도 그렇다. 실제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카드라고 해도 자천타천으로 사전에 언론에 보도되면 무위로 돌리기 일쑤였다. 결정은 오직 자신의 몫이었다. 그런 행태가 다음 정권의 5년을 좌우할 인수위 인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 당선인이 보고받는 정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언론 검증이나 여론의 검증이 더 정확할 수 있다”며 “철통 보안을 통해 좋은 인사가 나온 성공 사례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시스템 대신 박 당선인 본인의 선호와 극소수 측근들의 조언에만 의존하는, 검증보다는 보안을 중요시하는 인사는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창녀” “쓰레기 인간” “황위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최악의 인사’로는 단연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꼽힌다. 윤 대변인이 2012년 12월25일 기자간담회 도중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한겨레 강창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최악의 인사’로는 단연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꼽힌다. 윤 대변인이 2012년 12월25일 기자간담회 도중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한겨레 강창광

함께 발표된 다른 인사들도 ‘통합’의 의미보다는 선대위 조직을 그대로 흡수해 운영의 연속성에 방점을 뒀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에는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수석 부위원장으로는 김경재 전 의원이 기용됐다. 부위원장단은 인요한 연세대 교수,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장 등이다. 상식을 한참 벗어난 ‘막말 논란’의 당사자들이 포함됐다. 특히 김경재 부위원장은 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싸가지 없는 발언이나하고 호남 사람들을 한 맺히게 했다” “이제와서 문아무개라는 ×이 호남에 와서 또 표를 달라고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설화를 불러일으킨 당사자다. 그는 12월28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48%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지지해준 51.6%의 사람에게 우리 정권을 탄생한 데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중태 부위원장도 12월8일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낙선한 문재인 후보가 부엉이 귀신 따라저 세상에 갈까 걱정”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한광옥 위원장의 경우에는 대선 과정에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으로부터 “부정부패 연루 인사”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최악의 인사’로는 단연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꼽힌다. 언론계와 정치권을 오락가락한 이력은 애교에 가깝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개인 블로그를 통해 쏟아낸 수준 이하의 말과 글이 부메랑이 됐다.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 전 총리와 윤여준 전 장관 등을 싸잡아 “정치적 창녀”, 야권 전체는 “쓰레기 인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인파는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파티”로 매도했다. 문재인 전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을 두고는 “노무현이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환생해 못다 이룬 한을 풀어달라고 대신 스피치를 써준 것 같다”고 깎아내렸다. 2012년 9월에는 “정말 가증스러운 안철수와 ‘안빨’들이다. 대한민국을 졸로 보는 이런 기만극도 조만간 거대한 종말을 고하고야 말 것”이라는 칼럼을 썼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직후에는 “종북세력들이 점령군 완장 차고 몰려가 서울시청 요직은 물론 17개 산하 단체 모두 꿰찰 것”이라고 근거 없는 막말을 퍼부었다. 윤봉길 의사가 자신의 “문중 할아버지”라고 주장했다가 윤봉길 기념사업회가 부인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수석대변인 임명 직후 “제가 쓴 글과 방송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많은 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사과했지만, 여권내부에서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도 “이런 식이면 국민 여론이 갈려서 또 한판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며 “윤창중씨 본인도 깊이 생각해서 사양할 줄 알아야 하는데 덜컥 맡아서 박근혜 정부에 처음부터 큰 어려움을 줬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윤창중 대변인은 문재인 후보를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비난했고 문재인 후보 지지 국민을 ‘국가 전복 세력’이라고 선동하는 등 심각한 분열주의적 행태를 보여왔던 문제의 인물”이라며 “이런 인물에게 국민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기는 것은 박 당선인의 국민대통합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윤창중 신뢰하는 이유는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런 논란 속에서도 인수위원장 인선을 윤 수석대변인이 발표하게 했다. 신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박 당선인은 윤창중 칼럼의 애독자로도 알려져 있다. 선대위 대변인을 지낸 조해진 의원은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기회를 줘봤으면 좋겠다.(윤 대변인이) 이후에도 과거의 관점을 갖는다면 재고해봐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해왔던 일들을 초월해서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반대자까지 대변하는 인수위 대변인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양해를 해달라”고 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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