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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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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이해찬 서바이벌’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순회 경선서 ‘대세론’ 안 먹혀… 수도권 대의원과 모바일 민심이 승부
가를 듯, 야권 대선 지형에 영향 불가피
등록 2012-06-01 12:13 수정 2020-05-03 04:26

‘이해찬 서바이벌’ 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날그날 성적이 발표되는 ‘가혹한 오디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순회 경선 얘기다. 5월20일 첫 경합지인 울산에서 이해찬 후보는 김한길·추미애·우상호 후보에게 뒤진 ‘뜻밖의 4위’에 그쳤다. 이는 그가 맞닥뜨릴 험난한 당권 레이스의 서막에 불과했다. 5월21일 친노의 아성인 부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체면을 차리는가 싶더니, 5월22일 당의 최대 기반 지역인 광주·전남에서 강기정·김한길 후보의 선전에 3위로 밀려났다.

일진일퇴 뒤, ‘이-박 합의’에 대해 “송구스럽다”

“막상막하 일진일퇴를 벌이고 있어서 전당대회가 흥행에는 성공적인데, 나한테 가혹하기는 하다. 이해찬-박지원 합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상당히 많이 있다는 걸 느낀다. 역시 민주적 사회에서는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후보는 5월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도식이 치러진 경남 봉하마을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뒤늦은 사과’였을까. 이날 하루 숨을 고른 뒤 5월24일 실시된 대구·경북 경선에서 김한길·추미애 후보에 이어 또다시 3위에 그쳤고, 누적 1위 자리도 빼앗겼다.

이튿날 자신의 고향에서 탈환에 성공했다. 충남·대전 경선에서 몰표를 받고 한숨을 돌렸다. 이날까지 누적 집계에서 이 후보는 1398표로, 김한길 후보(1193표)에 205표 앞서고 있다. 5월31일까지 경남, 제주, 세종·충북, 강원, 전북 경선에서도 뺏고 뺏기는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세론’은 이미 깨졌고, 최종 결과는 예측 불허다.

이 후보가 고전하는 이유는 ‘담합’이라는 비판을 받은 ‘이해찬 당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역할분담론’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원내대표 선거 때 박지원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는 등 담합에 대한 역풍 조짐이 보였다. 이번 경선은 1인2표제로 실시되고 있는데, 이 후보는 다른 ‘비노’ 후보들의 2순위 표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11 총선 공천을 주도한 친노 진영에 대한 반발도 엿보인다. 순회 경선과 함께 치러진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친노인 박재호 후보가 51표 차이로 간신히 당선됐다.

이 후보 쪽은 애초 ‘인물론’을 내세우며 당선을 자신했다. 대선 체제의 당을 이끌 적임자로 이 후보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김한길 후보가 “내가 진짜 선거 전략가”라고 맞붙어, 이 후보의 전략가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과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선거 등 큰 선거 대부분을 내가 기획했다”고 말하면, 김 후보는 “나는 1997년 대선 당시 언론이 뽑은 ‘3대 공신’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맞받는다. 1997년 대선 때 이 후보는 대선기획부본부장, 김 후보는 방송대책부본부장으로 활약했고, 2002년 대선 때는 각각 노무현 후보 선대위 기획본부장과 미디어특별본부장을 맡았다.

흥행 대박에도 국민 참여 열기 높지 않아

부담감은 이 후보 쪽이 훨씬 더 크다. 다른 후보들이야 ‘밑져야 본전’일 수 있지만, 이 후보는 당 대표가 되지 못하면 정치적 타격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2등 최고위원’은 그에게 애매모호한 자리인 것 같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이해찬이냐 김한길이냐’를 좌우할 변수로는 수도권과 모바일 민심이 꼽힌다. 이번 경선은 대의원 투표를 30%, 국민참여선거인단 투표를 70% 반영한다. 수도권 대의원(6065명)은 전체 대의원(1만2407명)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수도권 대의원 투표는 6월9일 전당대회 당일 경기 고양시 킨덱스에서 실시되고, 국민참여선거인단 모바일투표(6월5~6일)와 현장투표(6월8일) 결과도 이날 발표된다. 5월31일까지 실시되는 전국 순회경선에서 누가 ‘누적 1위’를 차지하느냐가 이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지만, 선거인의 규모가 워낙 커서 판을 단번에 뒤흔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국민참여선거인단은 80만 명에 이르는 흥행 대박을 이룬 지난 1월 전당대회 때와 달리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박근혜 벽돌공장에서 벽돌 찍어낸 것인데, 우리는 흥행 대박”(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라며 한껏 고무돼 있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에 대한 관심이 국민의 참여 열기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5월23~30일 신청을 받는 국민참여선거인단 수는 접수 초반 지난 전당대회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동원력이 강한 쪽이 유리하다는 점에서 이 후보가 우세할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는 반면, 김 후보 쪽은 ‘이-박 담합’에 비판적인 당원·시민들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 후보의 고전에 울고 웃는 건 다름 아닌 대선주자들이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이-박 담합론의 한 당사자로 여겨지며 이 고문과 함께 역풍을 맞고 있다.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문 상임고문 쪽은 “이 후보가 (당선)돼도 부담, 안 돼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곤혹스런 문재인, 웃고 있는 김두관

반대급부를 얻는 쪽은 김두관 경남지사다. ‘새로운 대항마’를 찾으려는 당내 여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김 지사는 5월24일 기자간담회에서 “유력 후보들에게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면서도 “대의원들이 잘 알아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태도와 달리 김 지사를 지원하는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이 김 후보를 돕는 등 김 지사의 ‘친김한길’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강철 전 수석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대구·경북 쪽 핵심 관계자고, 김한길 후보는 이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김 후보의 선전에 ‘김두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해찬-김한길 대결’을 ‘문재인-김두관 대리전’이라고 곧장 연결짓기는 어렵지만, 어떤 결론이 나든 문 상임고문에게는 부담이, 김 지사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당 대표 선거가 야권의 대선 지형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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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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