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까는 방법: 대선 나온다고 보도- 알아보니 부인했다고 보도- 다시 대선 나올지도 모른다고 보도- 또 안 나온다고 보도- 국민들이 짜증날 때까지 계속한다….”(@reiot)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관련해 트위터에서 리트윗(RT)이 많이 되는 내용이다. “…는 벌써부터 안철수 교수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 일찍 끌어내서 피투성이를 만들어 질질 끌고 다니려 할 것”(@youzine)이라는 내용도 있다. 이 신문이 4월16일 1면 머리기사(‘안철수 “대선 출마 마음 굳혔다”’)에서 안 원장이 야권 중진을 만나 출마 결심을 밝혔다고 보도한 이후 나온 트위터 반응이다. 안 원장 쪽은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정치권은 빨리 확실한 태도를 밝히라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면서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국민들 마음에는 (이미) 대선 후보”라고 표현했다.
“안 원장 영입, 당 대표 추대하자”
안 원장 등판을 요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박근혜 대선 후보 추대론’까지 나오고 있는 새누리당은 안 원장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검증’을 벼르고 있다. 친박 핵심인 이한구 의원은 안 원장에 대해 “백마 타고 나타난 왕자님 같은 모습이 계속 유지되길 원하는 애매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가 일을 담당하고 싶으면 이념과 비전을 분명히 하고, 급진 좌파세력과 손잡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도 분명히 하고, 언론 검증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의 속내와는 무관하게, 안 원장이 한국 사회의 어떤 계층을 대변하고 어떤 정치와 정책을 펼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 원장을 돕고 있는 인물들도 거의 안갯속에 있다. 김미현 서울마케팅리서치 소장은 “대선 출마와 상관없이 자기가 어느 색깔인지를 분명히 빨리 하는 게 좋다. 주식처럼, 정치권도 불확실성만큼 무서운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제 대세론이란 없다. 말하자면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가 있다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속내가 복잡한 쪽은 민주당이다. ‘대안부재론-외부인사 영입론’이 고개를 들었고, ‘민주당 선 강화, 후 단일
화론’이 맞서고 있다.
안철수 영입론은 주로 당내 비주류 쪽에서 나온다. 이종걸 의원은 아예 “안 원장을 영입해 당 대표로 추대하자”고 했다. 그는 친노 그룹을 겨냥해 “당내 그룹이 안철수를 막고 있다. 한두 달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안 원장은 민주당과 결합해서 같이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정치를 하려면 메인 스트림에 들어가서 하는 게 좋다. 민주당에 들어와 함께 경쟁하며 몸집을 키워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비주류 계파들은 친노 그룹과 달리 딱히 구심점 역할을 할 대선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친노-비노의 대립이 격화할 경우 당내에 ‘안 원장 지지 그룹’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와는 좀 결이 다르지만, 문성근 당 대표 권한대행도 안 원장의 민주당 경선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는 100% 국민참여경선으로 500만 명 이상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 원장과 단일화하려면 결국 여론조사로 해야 하는데, 이는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경선에 참여한)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어떤 방법이든 함께가는 게 중요”
안 원장에게 목매지 말고 당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영선 의원은 4월18일 트위터에 “지금 우리는 안철수 원장을 놓고 갑론을박할 때는 아니다. 민주당은 자성할 때이고, 갑론을박은 나쁜 보수 프레임에 걸려드는 것”이라고 썼다. 최재성 의원은 ‘억지 설정’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07년 고건 전 총리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애걸하듯 하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라든가 문국현 후보한테 구애하고, 그게 다 실패로 돌아갔다. 정당은 정당 이름으로 국민에게 수권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안 원장은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있을 것이다. 이게 자연스럽게 만나야지,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건 아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국민에게 수권 정당으로서 신뢰를 회복하며 안 원장과 합류를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내 유력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은 당선 뒤 첫 인터뷰(4월18일 문화방송 라디오 )에서 “안 원장과 힘을 합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방법의 선택은 안 교수 자신의 몫이고, 어떤 방법이든 함께 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원장과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려면 민주당 쇄신이 필수라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으면
안 원장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싶어도 잡기 어렵고, 손을 잡더라도 그 효과는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민주당의 문제는 후보가 없어서 난조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 당 자체가 자기 세력의 지지를 담아내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제자리를 잡고 그 위에 멋진 후보가 서야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지, 당장 안 원장이 들어온들 플러스 요인보다 마이너스 요인이 더 작용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총선 패배 이후 민주당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지도 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이고, 총선 패배에 대한 평가 작업도 없다. 5월4일 원내대표 선거를 거쳐 6월9일 새 지도부 선거 때까지 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가운데 당내 대선주자들은 사실상 레이스를 시작했다. 정치권의 눈길이 온통 안 원장에게 쏠리자 행보를 서두르는 것이다.
‘2007년 악몽’ 되풀이될까 우려
우선 문재인 상임고문의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 그는 4월18일 인터뷰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됐다. 가능한 가급적 빠르
게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서울 여의도에 대선 캠프 역할을 맡을 자치분권연구소를 냈고, 지역 조직을 규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김 지사가 5월에 보따리 싸서 올라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4월22일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의 노동·복지·교육 정책을 살펴보며 대선 정책 구상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다. 정세균 의원도 “내가 직접 (대선에) 나서는 방안도 열려 있다”(3월17일 평화방송 라디오 )고 출마 뜻을 내비쳤다. 이들의 지지율은 문 상임고문을 빼고는 현재까지 별 의미 없는 수준이다. 리얼미터가 4월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42.5%, 안철수 20.7%, 문재인 16.5% 순이었고, 손학규 3.2%, 정동영 2.0%, 정세균 1.1%였다. 당내에는 ‘2007년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당 밖의 백마 탄 왕자만 기다리다가 1월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4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고, 그 과정에서 정동영·손학규·이해찬 등 당내 주자들의 지지율은 ‘도토리 키 재기’ 수준으로 전락했다. 본선에서는 제3후보였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의 단일화에 실패했다. 당시 민주당(정식 명칭은 대통합민주신당)은 새로운 비전도, 정책도 보여주지 못한 채 530만 표 차이로 무기력하게 졌다. 문국현 전 대표는 4월18일 CBS 라디오 에 출연해 “절대 당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 원장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당을 만든다는 건 성 안에 갇히는 거다. 이미 지지 세력이 많으니까 국민운동 같은 걸로 잘 발전시키면 된다. 박원순 방식도 있고, 안철수 방식이 새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과 언론은 안 원장 얘기로 들썩이는데, 안 원장은 묵묵부답이다. 안 원장 쪽 관계자는 4월17일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 일부 사실도 있지만 추측이나 과장이 많다는 점을 안 원장이 우려하는 것 같다. 실제 많은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여러 분들의 조언을 얻는 것은 사실이고,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숙고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 보도와 관련해 안 원장과 전자우편으로 상의한 뒤 내놓은 말이다.
안철수 “내 선택 아니라 주어지는 것”
안 원장은 4월4일 경북대 강연에서 “창당을 했으면 나름대로 (총선에서 의석) 확보를 많이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게 안 한 이유는 사회발전에 도구로 쓰이겠다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주어진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길은 안철수도 모르는 것인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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