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더욱 궁금해진 안철수의 다음 행보

총선 맞춰 강연 나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정치라도 감당” 한 걸음 나아가…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그는 총선 이후 ‘앵그리 버드’와 함께 어디로 갈까
등록 2012-04-13 10:40 수정 2020-05-03 04:26

시나브로 한발 한발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재개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이뤄진, 안 원장 특유의 ‘타이밍 정치’다. 안 원장이 석 달가량의 침묵을 깨고 대중 앞에 선 것은 3월27일 서울대 강연이었다.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불과 이틀 전의 일이다. 이어 그는 여야의 텃밭인 광주(전남대)와 대구(경북대)를 각각 방문해 강연을 이어갔다.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관전평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4일 대구 북구 복현동에 위치한 경북대 대강당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은 이날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판단한 다음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찍어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종식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4일 대구 북구 복현동에 위치한 경북대 대강당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은 이날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판단한 다음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찍어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종식

강연에서 조금씩 제시한 ‘가이드 라인’

강연장마다 수천 명의 대학생이 빼곡히 들어찼고,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인기 게임 캐릭터 ‘앵그리버드’ 인형을 질문자들에게 나눠주며 이렇게 설명했다. “상징성이 있는 게임입니다. 돼지가 착한 새들의 알을 훔쳐먹고 자기들의 견고한 얼음성으로 들어가요. 거기에 온몸을 던져 물리치는 순진한 새들이 앵그리버드입니다.”

일련의 강연은 ‘소통과 공감’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 ‘안철수가 본 한국 경제’ 등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이뤄졌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여야 정치권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의 입장을 취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는 총선이라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기존 정치권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셈이다.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고도 담담한 어조로 밝혔지만, 민간인 사찰 파문 등 첨예한 현안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하지만 대안주자로서 자신의 경쟁력은 강조했다. 안 원장은 서울대 강연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올라가야지, 승리에만 집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리 사회에는 갈등을 풀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계층 간 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국민은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의 여야가 쇄신 노력을 잘하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며 정치 참여에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는 “만약 (정치에) 참여한다면 특정한 진영 논리에 기대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는 언급까지 했다.

4월3일 전남대 강연에선 이번 총선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안 원장은 “정당이나 정파보다는 (후보자) 개인을 보는 게 맞다”며 “진영 논리에 빠져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정치를 하지 않는 사람과 국민·국익을 생각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과거보다는 미래 이야기를 하는 분이 있으면 적임자”라며 “단순하게 대립과 분노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온건하고 따뜻한 분들이 좋다”고 했다. 그는 “영호남, 충청, 서울 강남은 어느 당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며 “시민의 선택으로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다는 의사를 정치권에 표명해야 한다”고 거듭 ‘변화’를 주문했다. 이에 앞서 민주통합당의 고 김근태 고문의 부인 인재근 후보(서울 도봉갑)와 ‘촛불 변호사’로 잘 알려진 송호창 후보(경기도 과천·의왕)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 의사도 밝혔다.

안 원장은 경북대 강연에서도 “선거니까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과 방향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라며 네거티브 공방을 이어가는 여야를 함께 비판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12월 3당 창당을 안 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을 텐데 창당을 했으면 나름대로 많은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창당을 안 한 이유는 사회 발전에 쓰이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3지대’ 역할론 설파에 반박도 잇따라

이런 안 원장의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일자리 창출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누구나 다 하는 얘기”라며 “안 원장은 그런 일반적인 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개별 정책을 들고 나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와 같은 구체적인 정책은 진보와 보수가 다르다”며 “새로운 정치 세력의 대선 후보로 논의되는 안 원장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개별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안 원장이) 정당보다 사람을 보고 투표하자고 했는데 정치학자로서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라며 “자꾸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제를 약화하려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안 원장이) 정치를 할 거면 과감하게 세력을 선택하는 게 사회 발전의 도구로 쓰이는 데 합당한 길이 될 것”이라며 “도덕이 위기에 봉착한 시기엔 양비론이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3의 지대’에 머물고 있는 안 원장에게 ‘정치적 선택’을 압박한 발언이다. 앞서 유 대표는 안 원장을 두고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사람을 위해 예약돼 있다는 말이 있다”며 “이런 시기에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곧 악을 편드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안 원장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정치적 역할론’은 현재까지는 변화를 위한 촉매제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내가 정치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떤가. 그동안 긴장한 양당은 옛날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디에 참여한다고 해봐라. 그때부터 서로 싸우고 공격할 것이다. 그러면 사회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지금까지 머문 이 자리에서 있으면서 양쪽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쇄신 노력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3월27일 서울대 강연)

이른바 ‘제3지대’에 위치한 자신의 존재가 여야 정치권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고, 그런 변화가 본인의 직접적인 출마 여부보다 우선한다는 판단이다. 최근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방송 3사의 연대파업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독자적인 행보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총선 시점까지 더 이상의 공개 강연은 없지만, 정치권 주변에선 안 원장이 지지하는 후보를 추가로 밝히거나 격전지의 특정 후보를 직접 방문해 지원 유세에 나설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앵그리 버드’와 함께 성을 점령할까

한 정치평론가는 “총선 이후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넘어설 수 있는 야권의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안 원장이 대안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안 원장도 최근 강연을 통해 그 가능성을 열어놓은 게 아니냐”고 해석했다. 안철수 원장은 자신의 몸을 던져 얼음성을 깨는 ‘순진한 새’ 앵그리버드들의 맨 앞줄에 서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세력과 조직을 규합해 그 성을 점령하겠다고 선언할 것인가. 그 해답의 실마리는 4월11일 투표소를 향하는 유권자들의 손이 쥐고 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