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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MH로 안 불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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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01-07 10:55 수정 2020-05-03 04:26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영문 이니셜(MH)로 불리지 않았던 걸까요?(독자 김재용)

노무현 전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열린 지역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진영/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열린 지역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진영/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독자 JY님 반갑습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이니셜은 라틴어 ‘이니티알리스’(Initialis)에서 유래합니다. ‘맨 앞에 서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챕터나 단락 맨 앞글자를 아주 크게 표기했던 것이 이니셜 용법의 시작입니다. 3~4세기께 시작되죠. 사람이나 동물 그림으로 이니셜을 장식하기도 했답니다. 고대 성경 그림 이니셜을 보니, 뭔가 있어 보이는군요. 하긴 의미심장합니다. 챕터의 첫 글자였던 이니셜처럼, 정치인도 집단의 우두머리이니 이니셜로 불리게 된 걸까요?

일단,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민주통합당 당직자에게 전화부터 걸어봤습니다. “(정치인 이니셜의) 시작은 독재정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 탄압받던 인물을 은어로 부르며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탄압하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니셜이 없잖아요. 언론에서도 쓰고 (지지자들) 자체적으로도 쓰기 시작한 거죠. ‘김대중’ 이렇게 쓰면 지면을 많이 차지해서 줄인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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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니셜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1985년 한 종합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논설위원께 물었습니다. “글쎄, 기원은 나도 모르겠다. 나 기자 생활 시작할 때부터 언론이 DJ·YS·JP라고 써왔는데. 3김에 대한 애칭이지 뭐.”

정치인 이니셜 문화의 시작이 ‘3김’이라는 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그 시작이 애칭인지 탄압인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어쨌든 역사는 오래된 를 검색해봤습니다. 1978년 11월21일치에 ‘JP “최 총리에게 많이 배웠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의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DJ는 1988년 4월7일치(‘DJ 바람 점화 성공’),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YS는 1988년 4월10일치에 처음 등장합니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 때 기사 제목에도 ‘김대중 후보 유세’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뒤 잠시 언론 자유의 숨통이 트였던 1980년 5월6일치 신문을 봤습니다. 여전히 제목에 김종필·김영삼 등 풀네임이 사용됩니다.

두 가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첫째, DJ·YS·JP 가운데 JP가 먼저 사용됐다. 둘째, 1987년 뒤 널리 사용된다. 민주화 이후엔 정치인들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스스로 이니셜을 쓰기 시작합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이니셜 HQ가 행복지수(Happiness Quotient)를 의미한다고 선전했죠.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자 모임은 ‘MJ21’입니다.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시 민주통합당 당직자의 말입니다. “독재가 지난 뒤 이니셜 문화가 바뀌었죠. 노 전 대통령은 이니셜을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굳이 영문으로 쓰면 Roh로 썼지.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도 (정치인) 이니셜 문화에 부정적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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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엠에이치’에는 받침(종성)이 있어서 발음이 불편합니다. ‘치읓’도 썩 듣기 좋은 음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노짱’이라는 애칭이 있었습니다. ‘엠에이치’와 ‘노짱’을 비교해보세요. 이상, 1등 주간지 기자 NM이었습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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