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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죄송하다 날 저물라

한-미 FTA 무기력 대응 이어 전당대회 난장판으로 거듭 사죄… 혁신과 인적 쇄신 없는 ‘낙관론’이 ‘비관론’에 덮일 수도
등록 2011-12-21 14:34 수정 2020-05-03 04:26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등은 12월16일 국회에서 통합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고 ‘민주통합당’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은 기존 민주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겨레 강창광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 등은 12월16일 국회에서 통합수임기구 합동회의를 열고 ‘민주통합당’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민주통합당은 기존 민주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겨레 강창광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게 보여드려서는 안 될 모습을 보여드렸다. 당 대표로서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12월12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머리를 숙였다. 전날 난장판 전당대회에 대한 사과였다. 손 대표는 지난 11월22일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날치기 직후 “막아내지 못해 국민 앞에 깊이 사죄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친노 세력 전면 등장에 불과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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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죄송한 일만 하는 제1 야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12월11일 전당대회에서 통합 반대파 당원들은 여성 당직자의 뺨을 때리고, 악취가 나는 액젓과 액체비료를 단상에 던졌으며, 곳곳에서 욕설과 주먹질을 했다.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 참사였다. 자신들의 입지만 걱정하는 무리들은 난동을 불사하거나 수수방관했고, 이를 제어할 지도력과 정치력은 부재했다. 한-미 FTA 날치기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무기력함은 무효화 투쟁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야권 통합과 한-미 FTA라는 야권의 두 가지 중대 사안에서 저지른 ‘죄송한 일’은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혁신과 야권 통합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줬다.

몇몇 당원들의 전당대회 무효 가처분 신청에도,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 협상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됐다. 12월16일 당 이름을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으로 확정하고 공식 통합 선언을 했다. 내년 1월15일 새 지도부를 뽑는다. 민주당 당헌에서 ‘당원주권’ 조항을 삭제해 개방형 정당 체제를 갖췄고, 이에 따라 새 지도부는 물론 총선 후보자도 국민경선으로 선출하게 된다. 강령 전문에 “부마 민중항쟁,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실현한 노동 존중과 연대의 가치, 2008년 이후 촛불 민심이 표출한 시민주권 의식 및 정의에 대한 열망”을 새롭게 계승해야 할 가치로 규정했다. 경제민주화 실현,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통일을 3대 목표로 설정했다.

이제 관심은 민주통합당이 기존 민주당과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줄 것이냐에 있다. 통합 과정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게 별로 없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이끈 시민통합당에 참여한 인물들 상당수가 ‘친노’라는 점에서 기존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으로 여기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과거의 한 식구가 다시 합친 것 외에 뭐가 달라졌는가 하는 국민들의 반감이 있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친노 세력의 전면적 재등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야권 통합의 의미를 대중이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충족시킬 신선한 세력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최재천 전 의원은 “통합의 가장 큰 목표는 단순히 선거용 정당, 명망가 정당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스마트 정당, 정책 정당이어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통합하면 무조건 승리 기대는 착각”

공천 혁신으로 감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18대 총선 당시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가 이끌었던 통합민주당의 공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호남 지역과 비례대표 나눠먹기 등으로 당의 보수화가 진행됐고, 진보개혁 성향 의원들이 대거 낙선해 보수성이 더 강화됐다. 18대 민주당 의원들의 ‘고령화’ 현상도 눈에 띈다. 12월16일 현재 국회 누리집에 실린 명단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니, 민주당 의원(87명)의 평균 나이는 만 57.7살이었다. 한나라당 의원(169명)의 평균 나이(만 56.2살)보다 1.5살 많다. 민주당 지지층에 상대적으로 ‘2040’ 세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늙은 민주당’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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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민주당’을 만드는 데는 일부 호남 기득권 세력의 지역주의도 작용하고 있다. 통합이든 혁신이든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호남뿐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낙관론’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맛보자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안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윤희웅 실장은 “2010년 6·2 지방선거 승리 이후 선거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져 당내 혁신에 대한 절박감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태평한 사이, 한나라당은 쇄신에 발버둥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인적 쇄신을 단행하며 대대적인 공천 혁신을 하고, 우리 당은 호남 다선 의원들이 대거 출마하는 상황이 오면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새정치모임’은 “여당인 한나라당은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려 하는데, 우리는 전당대회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구태를 연출하고, 통합의 감동은 온데간데없다”며 “통합만 이루면 무조건 승리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잇따르는 불출마 선언 등이 당 혁신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정장선(53·3선·경기 평택을) 의원과 장세환(58·초선·전북 전주완산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김부겸(53·3선·경기 군포) 의원이 불모지인 대구 출마를 선언하는 등 혁신의 물꼬를 트겠다고 나섰다.

인적 혁신은 의원들의 ‘자기희생’을 넘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문제다. 현재 지도부 경선에 나서려는 주자는 20명 가까이 된다. 12월26일 예비경선에서 9명을 추린 뒤 1월15일 전당대회에서 6명을 뽑는다. 애초 대세론을 형성했던 박지원 의원은 난장판 전당대회를 거치며 세가 꺾였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강자로 떠올랐다. 한 전 총리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양쪽에서 친노 그룹을 중심으로 세를 넓히고 있다. 이런 ‘한명숙 대세론’에 ‘세대 교체’와 ‘변화’를 내세운 주자들이 도전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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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의 혁신 경쟁 결과는

민주당 쪽에선 김부겸 의원, ‘486’ 대표인 이인영 최고위원을 비롯해, 이종걸·이강래·우제창 의원, 정대철 상임고문,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 신기남·정균환 전 의원 등이 나섰고, 박영선 정책위의장과 이낙연 의원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시민통합당 쪽에선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YMCA 대부’로 불리는 이학영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의장, 김기식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박용진 전 진보신당 부대표 등 4명이 출마한다. 당원이 아닌 국민도 내년 1월7일까지 선거인단으로 등록해 모바일투표(1월9~11일)나 현장투표(1월15일)에 참여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의 새 지도부가 한나라당과의 혁신 경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아무쪼록 ‘죄송한 일’을 더는 하지 않길 야권 지지자들은 바라는 듯하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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