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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차관과 친구들, 정말로 깨끗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국회 국정감사에서 “총리실 직원에 CNK 주식 사라” 권유 의혹…
CNK 주식 의혹에 대한 청와대 내사 사실로 드러났지만, 박 전 차관은 부인으로 일관
등록 2011-10-13 15:34 수정 2020-05-03 04:26
»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10월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10월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국무총리실 직원들에게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업체 CNK인터내셔널(이하 CNK)의 주식을 사도록 권유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CNK는 다이아몬드 개발권 획득 과정에서 박 전 차관의 지원을 받았고, 이에 바탕해 외교통상부 등 출신 고위 공무원이 연루된 주가조작으로 세차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CNK 주식 의혹으로 청와대 내사

신건 민주당 의원은 10월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총리실 근무자들로부터 제보를 몇 건 받았다. 박 전 차관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재직 당시) 과장급 인사들을 방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무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을 벌겠냐’며 CNK 주식을 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차관은 자신의 자원개발 경험을 모아 최근 펴낸 책 (중앙북스 펴냄)에서 지난해 5월 카메룬 방문 당시 동행한 대표단에게 “돈 몇 푼 벌려고 주식투자를 한다거나 하는 욕심을 부린다면 반드시 다치게 될 것”이라며 “친구든 친인척이든 누구든 이 회사(CNK)의 주식을 단 한 주도 사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의원의 주장은 박 전 차관의 이야기와 정반대다.

이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 전 차관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신 의원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고, 위증(으로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주식을 산 총리실 직원들은 이 문제가 불거질까봐 전전긍긍한다”며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박 전 차관이 (CNK 주식 매수를) 권유했는지 총리실 공직복무관리실이 자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사실 규명을 촉구했다.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도 “(CNK 관련 의혹은) 민간이 선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한 자원개발이 아니라, 민간이 기획하고 정부가 홍보한 주가조작의 성공모델”이라며 “박 전 차관이 카메룬 방문 대표단에게 주식을 사지 말라고 당부한 건 주가가 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이 총리실·외교부 직원 중 CNK 주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은 이 정부 들어 온갖 의혹의 중심으로 거론되는 ‘왕차관’이 증인으로 출석한 탓에, 질의 대부분이 그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일부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고, 흐릿하던 밑그림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도 있었다.

박 전 차관이 CNK 주식 불공정거래 연루 의혹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내사를 받은 사실은 박 전 차관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868호 줌인 ‘영화 같은 추측, 영화 같은 사실?’ 참조). 신건 의원은 “권재진 법무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민정수석 재직 당시)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보고하며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보고했다. 민정수석실은 2월께부터 내사를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 전 차관은 “내사가 아니고”라며 ‘내사’라는 단어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사실 확인 차원에서 부탁하길래 (카메룬에 동행한 김은석 외교부) 에너지 자원대사를 보내서…(답변했다)”고 말했다.

조중표씨는 폭등 직전 주식 전환

박 전 차관은 2009년 CNK 주식 12억7천만원어치를 유상증자받은 방송사 간부 김아무개씨와의 친분도 추궁당했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은 “김씨와 박 전 차관은 동향 출신이고,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도 활동했다.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며 “(김씨가 보유한 주식의) 현재 가치는 2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신건 의원도 “오덕균 CNK 회장은 사업을 도와준 박 전 차관도 알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김씨와도 친한 사이다. 오 회장 소개로 김씨와 접촉하거나 만난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박 전 차관은 “김씨는 잘 모르는 인물이다. 전혀 (김씨를 접촉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CNK 고문으로 재직 중인 조중표 전 총리실 국무조정실장과 그의 가족이 이 회사 전신인 코코엔터프라이즈의 신주인수권 26만여 주를 1억5천만원에 인수해 주식으로 전환한 사실도 확인됐다. 신주인수권은 언제든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다. CNK 쪽은 한국농어촌공사 자회사인 농지개량을 2009년 인수할 당시 외부 차입이 불가능해 회사 임직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조 전 실장도 고문 자격으로 회사에 1억5천만원을 빌려줬다고 설명한다. 조 전 실장이 받은 신주인수권은 이 돈의 ‘대물변제’라는 것이다. 농지개량 매각은 기획재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민영화 1호였고, 매각대금은 51억원이었다. 그런데 인수대금조차 마련하기 버거운 업체에 정부가 자회사를 넘겼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또 오덕균 CNK 대표는 지난 9월19일 국감에 출석해 “조 전 실장에게 주식을 준 적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조 전 실장은 외교부가 CNK 다이아몬드 개발권 획득 사실을 알리는 첫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열흘 전인 지난해 12월8일 자녀 명의의 신주인수권을 주식으로 전환했다.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낸 직후 CNK 주가는 폭등했다. 현재 조 전 실장은 모든 신주인수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했지만, 매각 시점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신건 의원은 “조 전 실장 자녀들이 고가에 주식을 매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외교부 출신인 조 전 실장은 김은석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와 총리실에서 같이 일했고, 김 대사는 오 회장을 조 전 실장에게 직접 소개했다. 조 전 실장이 김 대사 등 외교부 지인을 통해 보도자료 배포 소식을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오히려 “입증된 사실이 있느냐?” 반박

한편 이날 국감에선 일본에서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의혹과 관련한 박 전 차관의 답변 태도를 놓고 여야 간 설전이 벌어졌다. “정권 말이 돼서야 드디어 증인으로 모셨다. 권력 무상에 대한 소감은 어떠냐”며 박 전 차관을 비꼬았던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SLS 관련 의혹을 따져물었다. 박 전 차관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채 “에너지자원 증인으로 (국감장에) 나왔다. 이 사건은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상 고소를 한 상태”라며 “(SLS 관련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자신과 관련한 의혹들이 “입증된 사실이 있느냐? 확인된 사항이 있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질의에 답변을 못하겠다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것”(신건 의원), “권한 남용을 따지기 위해 증인으로 출석하게 한 것”(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법에 따라 보낸 질문 요지는 ‘해외 자원개발 관련 의혹’이지 ‘의혹 등’이 아니다”(이진복 의원), “검찰이 수사 중이고, 본인 방어권도 있으니 해외 자원개발에 관련한 것에만 질문을 한정해야 한다”(이성헌·권택기 의원)고 반박했다. 결국 정무위원장인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의 중재로 박 전 차관은 “말투가 다소 거칠었던 점은 사과하겠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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