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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예상 투표율 20% 뒤로 위기감 느끼는 한나라당… 설령 성공해도 오세훈 시장에게 득 될 게 별로 없다는 분석 다수
등록 2011-08-24 15:21 수정 2020-05-03 04:26

8월22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중단 가처분 사건 판결에서 큰 이변이 없다면 이틀 뒤 투표는 정상적으로 치러진다. 24일 밤이면 판가름 날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결과는 둘 중 하나로 예견된다.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해 투표가 무산되거나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되거나.

오 시장 뽑은 유권자+70만 명=개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겨레 김태형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겨레 김태형

투표율이 33.3%를 넘어설지를 가늠하는 잣대로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표 계산 방식이다. 8월5일 현재 서울 인구수는 1033만4860명이고, 이 가운데 19살 이상 유권자는 838만7278명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3분의 1인 279만5761명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를 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8만6127표를 얻었다. 당시 오 시장을 선택한 유권자가 모두 투표장에 나오고 70만 명가량이 더 투표하면 투표함을 열 수 있다. 또 다른 숫자와의 비교도 가능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에서 얻은 표는 268만9162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진 현 여권 후보 중 서울에서 이 대통령은 가장 높은 득표력을 보였다. 여권의 인기가 최고조이던 때의 성적에 10만여 표가 더 붙어야 개표가 가능하다.

직접 투표율과 비교해볼 수도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임시공휴일인 대선이나 총선보다는 평일에 치르는 재·보궐 선거 투표율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 이후 재·보궐 선거는 모두 21차례 치러졌다. 이 가운데 2007년 대선과 동시에 치러져 이상적으로 높았던 한 차례를 뺀 20차례의 평균 투표율은 32%였다. 강원도, 경기 분당, 경남 김해 등 세간의 주목을 끈 지역의 투표율이 40%를 넘겼을 뿐, 지난 4월 치른 재보선의 평균 투표율도 39.4%에 그쳤다. 여야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총동원했을 때의 투표율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나쁜 선거’로 규정해 투표 거부를 독려하는 상황인 만큼, 최대치에서 절반을 덜어내면 투표율이 20%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게 객관적 전망이다.

투표율을 가늠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잣대는 투표 의향에 관한 여론조사다. 가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8월13~14일 이틀 동안 서울 유권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투표율을 전망할 때 기준으로 삼는 적극 투표 의사층(투표에 꼭 참여하겠다)은 37%였다. 는 ‘웬만하면 투표할 생각’이라는 소극 투표 의사층까지 합치면 66%라고, 주관과 기대가 섞인 보도를 했다. 적극 투표 의사층이 37%인 만큼 커트라인 33.3%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역대 선거의 적극 투표 의사층과 실제 투표율의 간극을 고려해 보정해서 볼 필요가 있다. 총선과 대선의 경우 적극 투표 의사층이 60%를 웃돈다. 실제 투표율과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눈여겨볼 대목은 응답자의 31.1%가 ‘투표할 생각이 없다’(별로 16.7%, 전혀 14.4%)고 답한 점이다. 투표 참여는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인식이 강해 일반적으로 선거 전 여론조사의 투표 거부 의사층이 10% 선인 데 비춰보면 높은 수치다. 투표율 33.3%를 낙관하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다.

“투표 결과로 한나라당 위기에 빠질 것”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참을 호소하는 배옥병 ‘나쁜투표거부 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한겨레 김태형

무상급식 주민투표 불참을 호소하는 배옥병 ‘나쁜투표거부 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한겨레 김태형

게다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에 투표 유입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참여로 이어지려면 해당 정책과 이슈가 유권자 자신과 상관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직접 정책 대상자인 학부모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에 더 우호적이고 나머지 계층은 직접 정책 대상자가 아니다. 공약이 많은 일반 선거에 비해 자신과 연결된 이슈가 하나쯤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요구가 적을 수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의 말이다.

이 때문에 중앙당 차원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한나라당 안에서도 ‘8·24 후폭풍’을 경계하며 거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민투표일을 일주일 앞둔 8월18일 오전 최고위원회 자리에서다. 주민투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유승민 최고위원은 “지금이라도 중앙당이 거리를 두는 게 맞다”며 “주민투표에서 지면 지는 대로, 이기면 이기는 대로 우리 당은 상당히 곤란한 위치에 처할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날 작심한 듯 격정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오세훈 시장이 대선 불출마다, 시장 사퇴다 하는데 당내 정치적 사태로 비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단순히 서울 시민들에게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로 치부하고 그 정도 선에서 나가면 될 일을 왜 온 당이 나가서 이 난리를 피우면서 스스로 당내 분란을 만드나. 경기도에서 무상급식을 하고 있는 김문수 도지사는 민주당 도지사인가? 영남 지역에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향해 가는 광역단체가 있다. 그런 거 무시하고 16개 광역단체 중 1개 단체장이 정한, 중앙당과 상의 없이 정한 게 무슨 당론인가?”

그의 격정은 이날 오전 보도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인터뷰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는 나 최고위원이 “주민투표에서 지고 나면 한나라당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친박과 소장파는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거나 “일부 지도부는 오 시장을 비판하거나 불만을 터뜨리고 어떻게 하면 주민투표에서 발을 뺄까 하는 궁리만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유승민 최고위원과 나경원 최고위원의 결론은 다르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로 인해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은 같은 셈이다.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투표율 제고를 목표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시장이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건다→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해 주민투표가 무산된다→오 시장의 사퇴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패배한다→한나라당 내에서 책임론 공방이 벌어지면서 홍준표 대표 체제가 흔들린다.

물론 이는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한 시나리오지만 한나라당 내에 실재하는 우려다. “오 시장이 사퇴 카드로 당을 압박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르면 주민투표 뒤, 늦어도 내년 4월 재보선 전까지는 시장직을 사퇴할 것이다. 주민투표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당연히 책임론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홍준표 대표, 황우여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중진의원의 전망이다. 오 시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패할 경우 궤멸적 타격 입을 것”

지난해 6·2 지방선거와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내년 4월 서울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지역은 없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무상급식이 최대 쟁점이던 6·2 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구 기초단체장(구청장) 가운데 강남·서초·송파· 중랑구를 제외한 21개 구청장의 소속이 민주당으로 바뀌었고, 지난 4월 재보선에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 텃밭인 경기 분당을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오는 배경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에 패배하고 나면 이어질 총선과 대선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유승민 최고위원은 주민투표의 파급효과를 최소화하도록 중앙당이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고, 나경원 최고위원은 총력을 기울여 오세훈 시장의 승리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는 서울 금옥초등학교. 8월24일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소득 상위 50%’에 속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다시 급식비를 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겨레 박종식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는 서울 금옥초등학교. 8월24일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소득 상위 50%’에 속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다시 급식비를 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겨레 박종식

반대의 경우도 가정할 수 있다. 복지 포퓰리즘 논란으로 정치쟁점화한 이번 투표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무상급식 논쟁의 본질이 ‘보편적 대 선별적’에서 ‘단계적 대 전면적’으로 뒤틀린 주민투표일지언정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겠다는 시민들의 참여에 힘입어 투표율이 33.3%를 넘을 경우다. 오 시장의 의지가 실린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이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하는 안에 비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최선의 상황에서 오 시장과 한나라당의 실익이 무엇인지, 최악의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손실에 버금가는 이익이 있는지 따져보자.

오세훈 시장은 지난 8월12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의 토론에서 “우리 주변에 과잉 복지의 망령, 포퓰리즘의 광풍이 불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가 제정한 조례대로 무상급식을 시행했다가는 재정이 파탄 날 것처럼 엄살을 떨기 때문에 오 시장이 선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실익을 살펴봤다. 서울시의회와 교육청 안대로 실시하면 내년부터 매년 초·중학교 85만여 명 분으로 예산 4092억원이 든다. 반면 소득에 따른 선별적 무상급식안이 통과되면 초·중·고 60만여 명에 대해 2014년 기준으로 3037억원이 필요하다. 차액은 대략 1천억원이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분담액을 고려하면 이번 투표 결과에 따라 오 시장이 아낄 수 있는 예산은 695억원이다. 서울시 예산 21조원의 0.3%다. 그런데 주민투표에 소요되는 예산이 대략 200억원이다. 오 시장이 승리할 경우 500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겠지만 돈 아끼자고 달려든 싸움이 아닌 만큼 손익계산을 따지는 데 별 의미가 없다.

한나라당과 오세훈 시장이 얻을 정치적 실익이 있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며 동시에 두 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복지 의제에서 보수세력의 논리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선봉장’을 자임한 오 시장은 낮은 대선주자 지지율에 변화를 꾀하며 차기 혹은 차차기를 내다보는 보수세력의 새 아이콘으로의 부상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오 시장이 실패할 경우 입을 궤멸적 타격에 비하면 성공한다고 해도 얻을 게 별로 없을 것”이라며 “강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라는 존재 때문에 오 시장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수금’하기 힘들 테고, 정치권에서 경쟁처럼 일고 있는 복지 드라이브에 제동을 거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 시장에게는 ‘반복지’라는 이미지가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를 재연하고 싶은가

결론적으로 오 시장 처지에서 주민투표 결과가 좋을 경우 얻을 것은 분명치 않은 반면, 나쁠 경우엔 설령 그가 시장직을 내걸지 않더라도 식물시장이 되어 사퇴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오세훈의 오판’이라고 입길에 오를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여야 모두에서 나온다. 어쩌면 그는, 대선 불법자금 수사 등의 여파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2004년 1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떠났다가 2년 뒤 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과거를 재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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