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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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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 실세’에 쏟아지는 야당 서치라이트

저축은행 정·관계 로비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 채택 두고 여야 기싸움…이명박 정권 창출에 앞장선 이영수 KMDC 회장 관련 의혹이 관건 될 듯
등록 2011-07-28 09:52 수정 2020-05-02 19:26

국회 저축은행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가 꾸려진 지 20여 일 만인 지난 7월21일 국정조사 실시계획서가 통과됐다. 문제가 된 부산·보해저축은행 현장 방문, 감사원·금융감독원·검찰 등의 문서 검증과 국무총리실·감사원·금융감독원 등의 기관보고가 7월25일~8월3일 이어진다. 하지만 국정조사의 핵심인 청문회 일정과 증인 채택은 합의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신청한 증인을 한나라당이 거부한 탓이다. 양쪽이 계속 기싸움을 하다 보면 국정조사는 저축은행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접근도 못한 채 끝날 수 있다.

“김진표·박지원 나와” vs “박지만·홍준표 나와”

한나라당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우제창·박선숙 의원 등 30여 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박지만씨, 박씨 부인 서향희 변호사,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이상득 의원 등 50여 명을 불러야 한다고 신청했다. 보해저축은행 구명 로비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지난 7월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은 어떤 국조에도 성역 없이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는 원칙이다. 저는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삼화저축은행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만씨 부부도 “떳떳하게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박선숙 의원도 7월21일 특위에서 “(김진표) 원내대표, 우제창 의원, 저까지도 증인석에 서겠다. 야당은 어떤 증인도 빼지 않겠다. 여당도 빼지 말고 다 내놓고 확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치공방, 특정 정치인 흠집내기, 주요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특정 증인을 내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거 환경을 만들려는 것으로 본다”(이종혁 의원)고 반박했다.
특히 기관보고에 청와대 대통령실을 포함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요구에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탓’이라며 맞서고 있다. 7월21일 합의에선 대통령실이 기관보고 대상에서 빠졌지만, 민주당은 증인 채택 상황에 따라 ‘추가’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5월4일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이 저축은행 감사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권재진 민정수석이 배석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월15일 문화방송 라디오 에서 “대통령실을 (기관보고에) 포함해야 한다면, 과거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실을 포함해야 한다.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은 저축은행을 통해 증발된 서민 돈 수천억원을 찾아내고, 이것을 서민들에게 돌려내는 것”이라며 “그 돈이 빼돌려진 시기는 주로 참여정부 시절이다. 그런데 시간을 뛰어넘어 현정부를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여야당의 이런 줄다리기 속에서도 야당이라는 처지 덕분에 공격은 주로 민주당 몫이다. 지금까지 민주당 쪽의 주요 공격 대상은 홍준표 대표와 이영수 KMDC 회장이다. 특위 민주당 간사인 우제창 의원이 제보를 근거로 한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영수 회장은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의 소개로 신삼길 부산저축은행 명예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신 명예회장에게 24억원을 받았고, 이 돈이 지난해와 올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흘러갔다. 이 회장은 두 차례 전당대회에서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했는데, 이 ‘특정 후보’는 앞서 2008년 8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이 회장을 상임특보로 임명했다. 또한 이들은 올해 버마(미얀마)를 함께 방문했고, 비공식 일정도 있었다. 이 회장의 KMDC는 자본금 16억5천만억원에 불과한데도 버마에서 수조원짜리 유전개발권을 따냈다. 두 사람은 최근에도 한나라당 당사 앞 일식집에서 식사하는 게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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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의원이 ‘특정 후보’로 에둘러 표현한 이는 홍준표 대표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자료를 보면, 홍 대표는 지난 5월 말 대한태권도협회장 자격으로 버마를 방문해 양곤의 미얀마국립극장에서 태권도 공연을 관람했다. 이 회장은 태권도협회장 특보 자격으로 동행했다. 이 공연은 ‘태권도 월드투어 공연단’의 올해 13개국 21개 도시 투어 공연 가운데 처음으로 열린 것으로, 한국과 버마의 문화교류 차원에서 성사됐다. 한편 이 회장이 전당대회에서 지지한 후보 역시 홍 대표다.

우 의원이 제기한 ‘홍준표-이영수’ 관련 의혹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이 회장이 삼화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아 홍 대표에게 건넸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와 관련해 홍 대표는 지난 7월14일 ‘이 회장에게 돈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너, 그러다 맞는 수가 있다. 버릇없이 말이야”라고 폭언을 쏟아냈다. 그 질문 하나로, 평소 “돈과 여자 문제에서는 깨끗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홍 대표의 자부심에 상처가 난 것일까?

우 의원은 7월14일 특위에서 “이 회장이 신삼길 회장과 호텔신라 중식당에서 자주 만나고 골프도 자주 친다. 신 회장과의 관계는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밀착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돈이 오갔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우 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한나라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우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회장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우 의원을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에 저축은행 돈 건네고, 국외 이권사업까지”

둘째 의혹은 이 회장의 KMDC가 버마 해상 광구 4곳의 탐사개발권을 따내는 데 홍 대표가 도움을 줬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 의원이 말한 버마에서의 ‘비공식 일정’은 유전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가 탐사개발권을 따낸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은 이미 지난 6월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최 의원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KMDC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배후 지원설’이 나오는 건, 유전개발엔 엄청난 돈과 기술이 필요한데, KMDC는 지난해 설립된 신생 회사로 자본금이 16억5천만원에 불과한데도 단독으로 개발권을 따낸 사정 탓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의원실 등 유전개발 사업을 잘 아는 인사들은 한결같이 “광구 하나 개발하는 데 보통 300억~400억원은 들어간다. 그래서 대기업도 석유공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부에 성공불융자를 신청한다”며 KMDC의 유전개발권 획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혹의 중심에 선 이 회장은 한나라당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인사다. 이 회장은 홍 대표뿐만 아니라 ㄱ·ㅅ·ㅇ·ㅂ 의원 등과도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회 지도위원장,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청년위원장,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유세지원단장,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는 홍준표 대표를 도왔다고 한다.

2007년 대선 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의 선진국민연대 못지않은 외곽조직 ‘국민성공실천연합’(지난해 ‘뉴한국의 힘’으로 이름을 바꿈)을 박창달 전 의원과 함께 이끌었다. 현 정부 들어 요직을 차지한 게 선진국민연대 쪽이어서, 겉보기에 국민성공실천연합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단체 회원 35만 명도 만만치 않은 수인데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 대의원만 3천 명을 확보하고 있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선진국민연대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성공실천연합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고, 이 단체 송년회에 이상득 의원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국민성공실천연합에 있던 젊은 친구들은 이 회장이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 말해 수행비서 일자리도 많이 줬다. 당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의원들과 친분이 두터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그늘 속 실세’라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돌았다. 박영준 전 차관이 국내에서 공직을 통해 ‘영화’를 누렸다면, 이 회장은 주로 국외에서 정권을 배경 삼아 사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선거 때 외곽조직을 이끈 공을 인정받고 나름의 ‘보상’을 받은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지인이 버마에서 자동차 판매대리점을 하려고 했는데, 이 회장이 관여한 회사에 밀려 사업을 접었다”며 “외국에서 이 회장이 정권 창출 공신으로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어 그런지, 그쪽(버마) 정부도 지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저러다 사고 난다’고 우려를 많이 한다. 여기저기서 사람들 끌어모으고, 호가호위하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증인 채택 샅바싸움에 시간만 흘러가고

이 회장이 국민성공실천연합을 뉴한국의 힘으로 개편한 뒤 힘을 쏟고 있는 대상은 국외 조직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발대식 등에선 이 조직 간부가 동포들에게 기금 모금을 강요하고, 이 회장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의 국외 조직 정비를 놓고선 재외국민 투표가 가능해진 내년 총선·대선을 겨냥한 행보가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투표권을 가진 재외국민은 모두 240만여 명으로, 정치권에선 이들이 누구를 지지할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재외국민에 대한 영향력은 곧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의혹은 꼬리를 문다. 곁가지처럼 보이지만 몸통과 곧장 연결될 수도 있고, 몸통처럼 보인 게 실은 그림자일 수도 있다. 국정조사를 제대로 벌여 이를 가려야 억울한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국정조사 1차 시한은 8월12일까지다. 증인 채택에 한 세월을 보내면, 청문회는 맹탕이 된다. 민주당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국정조사 기한 연장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특위 위원장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연장 불가’를 못박은 상태다. 국회가 의혹을 풀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 하나?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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