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자의 실업 문제가 심각한데도 언제부터인지 중소기업은 기피하는 일자리가 되어버렸다.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져왔고, 이제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대기업은 경제성장을 시작한 이래 최고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데 중소기업 사정은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난 속에서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은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 간 양극화의 실상을 보여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의 주된 원인은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대기업보다 크게 낮은 데 있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 제조업 중소기업의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업의 50% 수준으로 일본과 비슷했다. 그런데 이후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현재 대기업의 30%에 불과하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면서 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줄어든 이웃 일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크게 낮은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이 대기업에 비해 부진한 탓이고, 양극화의 원인도 대기업과는 무관한 중소기업 내부의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고 기술개발 투자가 부진한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중소기업 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 중 43%가 하도급업체이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대기업에 직접 납품하고 있다. 시장지배력이 높은 대기업은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에서 교섭력이 우위에 있다.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통해 협력업체의 이윤을 관리할 수 있고, 단기적 이익을 위해 협력업체의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납품단가가 중소 협력업체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이 되어왔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내리면 중소기업은 기술개발비 회수는커녕 인건비조차 제대로 지급하기 어렵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납품단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제값을 받을 수 없고 부가가치 생산성도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기업이 우월한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투자가 위축된다.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투자를 하면 대기업의 수익성은 좋아지지만 정작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좋아지지 않았다. 기술투자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면 중소기업은 투자할 동기조차 사라지게 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고 기술개발이 부진하다고 해서 이를 중소기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협력업체와 성과 공유하는 도요타대기업이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인하하면 그 영향은 중소 협력업체 전체에 미친다. 납품단가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된 1차 협력업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2, 3차 협력업체에도 그 부담을 요구한다. 단가 인하 부담이 하도급 관계로 맺어진 모든 중소 협력업체로 확산되면, 결국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임금 상승 억제와 비정규직 고용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이 계속 나빠지면,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기술인력이 빠져나가 기업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얼마 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기업 간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대기업이 목표를 초과한 이익을 협력업체와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다른 기업과 이익을 나누자는 것은 반시장적 발상이고, 대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익 공유가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측면에 주목하면, 이는 전혀 반시장적 발상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단순히 개별 기업끼리의 경쟁이라기보다 기업이 소속된 생태계 사이의 경쟁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은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이 얻은 수익을 임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에 재투자해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협력업체와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도요타는 오래전부터 협력업체와 모든 정보와 지식, 혁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구축해왔다. 공동체 내에서 도요타와 협력업체가 성과공유제를 통해 협력 성과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협력업체와 신뢰의 공동체를 구축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한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유리하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협력업체의 노력에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면 신뢰는 깨지고 동반적 협력 공동체는 이룰 수 없다. 협력 공동체에서 나오는 이익은 기대할 수 없고 대기업도 그만큼 손해다. 기업이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협력업체와 호혜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이익은 줄어들더라도 장기적 이익을 위해 협력업체를 지원하고 신뢰와 협력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투자한다. 협력업체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으면 기술개발 투자가 활발해지고 대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게다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협력업체는 대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는 것이다.
양극화냐, 동반성장이냐초과이익공유제는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단기 수익성보다 장기적 경쟁력을 중요시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이며, 오늘날 글로벌 경쟁에서도 그 유효성이 입증되고 있다. 물론 초과이익공유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섭력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기업의 과도한 지배력 행사로 약화된 기업 간 신뢰 관계를 회복하고 협력 공동체를 구축하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 기업 간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을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초과이익공유제가 충분히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단기적 수익 추구로 양극화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초과이익공유제 제안을 계기로 공동 번영의 협력 공동체와 동반성장의 해법을 찾는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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